조금은 힘겨운 하루였다.
아직 일을 배우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오늘도 싫은 소리를 몇 번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고, 긴장과 초조함에 손톱만 자꾸 뜯고,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삼키며 웃었다. 퇴근을 할 때쯤이면, 늘 그렇듯 땀으로 온몸이 젖어있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내린다. 사실, 조금이 아니라 꽤, 힘겨운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그냥 집에 가려다가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저녁도 못 먹고 일했으니 꽤 허기가 졌다. 사실, 배고픔보다도 축 처진 내 몸에게 뭐라도 먹여야 할 듯 싶었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편의점 햄버거와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과자를 샀다.
자그마한 방 한 칸인 나의 집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보다 만 미드를 틀어놓고, 배를 채우고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오늘 참 고생 많았다고, 잘 견뎌냈다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누가 네게 뭐라고 하더라도, 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효과는 꽤 크다. 우울함에 빠질 수 있는 것을 막아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샤워를 마치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선물로 받은 크랜베리 향초를 켰다. 따뜻한 샤워 덕분인지, 노란 빛과 편안한 향을 내는 캔들 때문인지 이 작은 집도,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리고 몇 주 동안 피지 않은 드로잉 노트를 피고 내키는 대로 색연필을 집고, 잘 그리려는 생각도 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냥, 내키는 대로.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그림은 엉망진창이 따로 없었지만, 다 그리고 나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내 마음의 우울은 모두 빠져나와 드로잉 노트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딱, 작년 이맘 때, 혜연이와 오키나와에 있었다. 그곳에서 투명한 바다 속 물고기를 보았고, 쏟아질 듯한 많은 별들도 보았다. 참 다행이다. 힘겨워 마냥 쓰러지고 싶을 때에도, 즐거웠던 추억들이 붙잡아주어서. 인생이란,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라서. 행복한 기억들이 내게 꽤 많아서.
좋아하는 과자, 따뜻한 샤워, 사랑하는 사람과의 통화, 달콤한 크랜베리 향초, 편안함을 주는 음악,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릴 수 있는 색연필과 노트, 내 마음을 적어 내려갈 수 있는 글,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들.
오늘, 나를 위로해준 것들. 참 고마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