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모노그램

7. 빛의 벙커 : 클림트

<모노그램> 글 하국주/ 그림 서울 비

by 미혜 Seoul B
191014_클림트 전시_2_800.jpg '빛의 벙커: 클림트'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_illustration by Seoul B (c) 2019 서울비


2018년 11월 제주 성산에 상설 전시관이 생겼다. 통신 시설용 폐 벙커를 활용해서 만들어진 '빛의 벙커(Bunker de Lumières). 그곳에서는 개관 첫 작품으로 '클림트(Klimt)' 전을 시작했다. 이번 달 27일이 마지막 날이라며 여행 일정의 필수 방문지로 그곳을 선택한 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원래 여행이란 것을 소 닭 보듯 하는 입장이지만 국내외 안팎으로 가장 대중적인 여행지를 두루 섭렵한 친구의 추천이라 굳이 딴지를 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딸을 동반한 다른 동창까지 합류해 총 4인이 토요일 아침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50만 관객이 다녀갔다는 인기 전시회 표를 끊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명화 전시가 아니라 '아미엑스(AMIEX : Art & Music Immersive EXperience)' 라고 불리는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였다. 고성능 스피커가 쏟아내는 웅장한 클래식 음악 속에서 수 십 대의 빔프로젝터를 통해 새롭게 구현된 클림트의 명화들이 벽, 천장, 바닥 할 것 없이 전시실 전체를 역동적으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애쓸 일이 전혀 없었다. 그저 가만히만 있으면 음악과 그림들이 다 알아서 바뀌고 흐르니까. 보이지 않는 전시 기획자들과 그들의 미다스의 손이 만드는 황금빛 감흥의 프레임. 그렇기에 나를 위시하여 미술에 비전문적인 일반인들, 특히 궁금한 것을 포탈 검색창이 아닌 유튜브 동영상으로 확인하는 세대들이 반색할 수밖에.


예민한 아이라면 잠시 귀를 막을 커다란 배경음악 덕분에 관람객들은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고 제각각 자유롭게 바닥에 앉거나 서서 부지런히 핸드폰을 치켜들었다. 그들을 따라 나도 연신 핸드폰의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클림트에 비해 비교적 짧게 다뤄진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화가이자 건축가)' 작품에서는 갑자기 빨라진 화면 흐름 때문에 전시관 건물 자체가 달려가는 것 같아 흠칫했다. 급히 핸드폰 화면에서 고개를 드니 의도된 특수효과에 다들 태연하기만 해서 다소 머쓱했다. 대략 40~50분 동안 관람한 후 전시관을 나왔다. 출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전시 관련 상품점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참을 둘러본 후 결국 자그마한 기념품을 집어 계산했다. 클림트의 유명작 '키스(The Kiss)'가 프린트된 자석이었는데, 죄다 떠먹여 준 편안한 전시를 추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 매거진 <모노그램>은 하국주 님의 글과 서울비의 그림이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입니다. 2019년 하반기 (9월~12월) 서울비의 브런치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