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그램> 글 하국주/ 그림 서울비
작품성에 비해 초반 흥행이 매우 저조했을 때 속칭 '영혼 보내기(특정 영화를 지지하기 위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표를 예매하는 행위)' 현상이 일어나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있다. 아동학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미쓰백>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학대를 겪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여주인공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를 만나 서로를 구원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는 호평 속에서 전국 72만 관객을 동원했다. 주연 한지민은 제3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필두로 제55회 백상 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상,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3회 런던 동 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 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법정 의무 교육' 이란 게 있다.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의 사업장이라면 연간 1회 이상 실시해야 하는 교육으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개인정보 보호 교육, 퇴직연금 교육,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 종류도 많다. 그리고 그중에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교육도 있다.
이 교육에 따르면 아동 학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직종(예를 들면 교사, 의료인, 공무원...)의 종사자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서 학대 사실을 알게 되거나 그러한 의심이 들 경우 아동보호 전문기관이나 수사 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의무 대상자를 지나치게 좁게 한정하고 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의무'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 직군이 무엇이든지 간에 스스로 '사람'이라 생각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이 '의무자'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인 우리는 이와 같은 의무에 충실하게 매일을 살고 있을까. 남의 집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다, 매일 그런 것도 아니다, 버릇 고치려면 어쩔 수 없다... 같은 합리화 뒤에 무력하게 숨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처절한 목소리로 '미쓰 백' 하고 부를 때 기꺼이 차를 돌려 달려갈 용기가 있을까.
영화는 묻는다.
너는 어떤 핑계를 찾는가.
• '손' 모바일 배경화면은 아래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rafolio.com/works/907065
• 매거진 <모노그램>은 하국주 님의 글과 서울비의 그림이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입니다. 2019년 하반기 (9월~12월) 서울비의 브런치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