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그램> 글 하국주/ 그림 서울비
미용실 원장이 살을 뺐다.
못해도 족히 15킬로그램.
특유의 하이 솔톤 멘트들도 살과 함께 사라졌다.
어멋~오랜만에 오셨네용~도
커피나 녹차 좀 드릴까용~도
언니~(... 엄니였나) 꼬옥 찬물로 머리 감으세용~도
없다.
이곳은 미용의자 2개와 원장 1명이 전부인 작은 미용실이다.
어차피 서너 달에 한번 커트와 염색을 할 뿐이라 이렇다 할 실력이나 옵션은 필요치 않다.
그래서 제일 가깝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벌써 수년째 다니고 있다.
보통 미용의자에 앉으면 간단한 요구사항을 말하고 곧장 눈을 감는다.
다른 손님들과 미용사의 두런대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얕은 잠을 청한다.
미용실 특유의 호구조사나 지상파 상식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문제는 이번엔 좀처럼 손님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소와는 다른 원장이기에 어색한 침묵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살 많이 빼셨네요, 좋아 보여요... 같은 가벼운 인사치레라도 던져야 하나, 혹시 안 좋은 일 때문에 빠진 거면 굳이 언급을 할 필요가 있나, 뭐 그런 하찮은 딜레마 속에서 혼자만 불편한 2시간을 보냈다.
스펀지가 얼굴을 대충 훑고 나서 염색보가 풀렸다.
결제를 마치고 돌려받은 카드를 지갑에 꽂으면서도 순간 망설였지만 그도 잠깐.
수고하세요, 무난하게 한마디만 웅얼거리고 가게 문으로 향했다.
타인에게 말을 붙이는 것이 왜 이렇게 항상 까다롭고 조심스럽게만 느껴질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로 안녕히 가시라는 푸석한 인사가 들렸다.
평소처럼 대꾸 없이 앞만 보며 나왔다.
• 매거진 <모노그램>은 하국주 님의 글과 서울비의 그림이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입니다. 2019년 하반기 (9월~12월) 서울비의 브런치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