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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노그램

5. 첫 단편 ‘소설창작반’

<모노그램> 글 하국주/ 그림 서울비

by 미혜 Seoul B
mono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_완_사인_800.jpg illustration by Seoul B (c) 2019 서울비



소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강산이 바뀔 정도로 긴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푼돈이나마 정기적으로 손에 쥐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건 일종의 취미였는데, 온갖 센터들을 다니며 뭐라도 좀 재밌겠다 싶으면 무턱대고 배우러, 더 정확히는 놀러 다니곤 했다.


수업의 목표는 매우 분명했다. 현직 소설가의 가르침에 따라 작법을 익히고, 개성 넘치는 한국 소설들을 읽고, 수업 종료 전까지 1인 1 단편을 완성해서 문집으로 엮는 것. 그런 진지한 강의를 어린 시절 동화책깨나 읽었다는 자부심만으로 덜컥 신청했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고작 두어 번쯤 수업을 들었을까. 말로만 듣던 창작의 고통이 시작됐다. 철저한 자료 조사, 충분한 숙성, 참신한 기법 사용 등과 같은 조언을 듣고 머리를 끄덕였지만 그게 다였다. 당장 자신이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는 한심한 상황이었으니까. 동생의 노트북을 빌려 책상 앞에 앉으면 A4 한 장을 채우기도 전에 해가 저물곤 했다.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화들짝 깨어나 되는대로 끼적이고, 다시 얼마 못 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문장을 죄다 지웠다. 동의어들을 돌려가면서 넣고 빼기를 무한 반복하는 지루한 일상이 이어졌다. 입맛이 뚝 떨어져 커피만 연신 들이켜기도 했고, 때로는 식욕이 폭발해서 냉장고를 싹쓸이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이었다. 그런 스트레스가 싫어서 진작에 잠수를 탄 사람들이 그저 부럽고, 할 말이 넘쳐 2~3개를 동시에 쓴다는 사람들이 마냥 불가사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은 문집에 실렸다. 마감 당일 가까스로 완성한 탓에 오타 몇 개 놓치고 적은 분량 때문에 여백을 엄청 줬지만 어쨌든 인생 최초의 단편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소설이란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능숙한 거짓말이어야 한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 거짓말 어느 것 하나 영 야무지질 못하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상의 얘기를 다룰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나온 자구책이 첫 단편 <소설창작반>이었다. 얼떨결에 소설 창작 수업을 듣게 된 한 수강생이 주인공인데, 문집에 실을 단편을 가까스로 완성했으나 늦잠을 자서 제출에 실패한다는 줄거리이다. 주인공이 완성한 단편 소설 <변비> 역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면서 글이 써지지 않아 좌충우돌하는 화자에 대한 것이다.


종강 후 등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작당하여 스터디가 만들어졌다. 직접 손을 들었는지 누가 등을 밀었는지 여하튼 운 좋게 동참할 수 있었다. 스터디는 미니 단편을 쓰고 서로 합평하는 방식이었는데 다들 성의를 보이며 참석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대부분의 모임이 그러하듯 오래가지는 못했다. 각자의 사정과 사정이 충돌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금씩 축소되더니 어느 날 남아있던 몇몇 회원들 간의 무심한 전화 합의로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한참을 잊고 지냈던 문집을 뒤적이며, 우리가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것이라던 소설가 선생님의 얘기를 떠올린다. 아마도 그것이 내면의 결핍을 자극해서 매주 읽고 쓰고 출석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게 했을 것이다. 매번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해서 꼬박꼬박 스터디에 참여하도록, 한참이 지나서도 이렇게 쭈뼛거리며 브런치 주위를 맴돌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괜찮다면 새롭거나 오래된 작은 얘기들을 모아 소개하고 싶다. 계산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들에게도 세상 한 귀퉁이 머물 곳이 있었으면 해서. 종이 낭비라는 손가락질 없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브런치가 아닐까 해서.







• 매거진 <모노그램>은 하국주 님의 글과 서울비의 그림이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입니다. 2019년 하반기 (9월~12월) 서울비의 브런치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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