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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노그램

4. 마지막 종지기

<모노그램> 글 하국주/ 그림 서울비

by 미혜 Seoul B
190922_마지막 종지기_800.jpg illustration by Seoul B (c) 2019 서울비



120개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5층 높이의 종탑.

청년은 성호를 긋고 기도를 마친 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잠시 후 정오를 알리는 시그널이 시작된다.

청년은 잔뜩 긴장한 채 밧줄에 매달려 있는 힘껏 종을 당긴다.

3개의 종이 번갈아 울리며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대전 구도심의 곳곳이 성스러운 종소리에 감싸인다.


어제저녁 TV 뉴스에서 이름도 생소한 '종지기'로 평생을 근무한 한 사람의 은퇴 소식을 들었다. 1969년,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에 찾아온 스물셋 청년은 어느새 백발이 성성했다. 지난 50년간 변변한 저녁 약속 한 번 잡지 못한 분이었다고 기자는 설명했다. 매일을 하루같이 평일 두 번(정오/ 오후 7시), 주일(오전 10시, 정오, 오후 7시) 세 번 종을 쳤다고 한다. 언젠가 한 번은 무슨 신학생이 대신 종을 쳤었는데 민원이 들어왔단다.

종소리 이상하다고.


이제 모레 오전 10시 타종을 끝으로 종지기는 은퇴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종소리가 벌써 아쉽고 그리워지는 이상한 느낌.

앞으로는 전자식 타종으로, 그것도 8개의 작은 종을 추가해서 칠 것이라는 성당 측에 누가 얘기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이 땅의 마지막 종지기 조정형(73) 님의 종소리 음원 좀 남겨달라고.

그걸로 매일 2번, 주일 세 번, 세상 좀 계속 안아달라고.








• 매거진 <모노그램>은 하국주 님의 글과 서울비의 그림이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입니다. 2019년 하반기 (9월~12월) 서울비의 브런치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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