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른한 오후, 게임을 하는 것도 슬슬 지겨워져서 인스타, 네이버카페, 당근마켓을 돌아보던 중 슬적하니 눈에 띄는 당근 마켓 구인 게시글이 보인다.
" 30분 정도 걸리는 일입니다. 간단한 가구를 차에 실으면 되고 끝나면 30분 안 돼도 즉시 2만 원 드립니다."
위치도 보니 가깝고 30분 정도 일하고 2만 원을 준다니 시급이 4만 원이나 되는 일이다. 오래간만에 힘 좀 써볼까 하고 지원을 해봤더니 먼저 자기소개글을 작성해서 업로드해야 지원이 된다고 한다. 간단하게 써서 올렸다.
자기소개 : 체력 좋고 무거운 거 잘 처리하고 시간약속 잘 지킵니다.
그렇게 지원하고 지원자 현황을 보니 시급이 높은 알바이다 보니 지원자가 눈 깜짝할 새 수십 명이 모였다. 안 되겠거니 하고 다른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찾아보던 중 갑자기 메시지가 온다.
고용주 : 안녕하세요. 힘이 좋으신 분인가요?
알바 모집자한테 메시지가 왔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힘이 좋냐고 묻는다. 뭔 일을 하길래 그럴까 싶다가도 눈앞에 2만 원이 아른거려서 바로 대답했다.
나 : 네 힘도 좋고 짐 날르는 거 많이 해봤습니다.
고용주 : 시간약속도 잘 지키신다니까 잘 됐네요. 7시까지 XX동 XXX-X로 오세요.
일이 끝나면 받은 돈으로 맛있는 저녁이나 사 먹어야지 생각하고서 퇴근 후 약속장소로 갔다. 작업용 장갑까지 준비하고 도착하니 강남 모처의 어떤 미용실이었다. 이미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 학생 두 명이 먼저 와 있었고 고용주에게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중년의 어떤 여성이 나오더니 인사를 한다.
고용주 : 안녕하세요. 다들 잘 맞춰오셨네요. 미용실인데 다른 데로 이사를 해야 돼서 큰 가구 몇 개만 용달에 실으면 돼요. 금방 끝나요. 올라오세요.
어느 정도 이사가 끝난 2층 미용실에 들어가니 미용도구로 썼던 각종 소모품과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서 수납장 몇 개와 미용실 의자, 안마의자를 1톤 트럭에 올려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대충 인부들과 작업 분량을 보니 정말로 금방 끝날 거 같았지만 미용실 의자와 안마의자는 결코 간단한 가구는 아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엘리베이터를 사정상 못쓰고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작업 강도를 머릿속으로 저울질하며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작업자 1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묻는다.
작업자 1 : 네 어느 거부터 하면 될까요?
사장님 : 이거부터 해주세요.
작은 서랍장을 지목하자 나를 제외한 두 명의 남자가 빠르게 다가가서 서랍장을 드는데 작은 서랍장이 정말 무겁다. 보통 이런 사이즈는 성인 남성 두 명이면 금방 드는데 정말 의외였다.
작업자 2 : 사장님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요? 안에 뭐 들어있는 거 같아요.
사장님 : 어 그러게요 안 무거운 건데 왜 이렇게 무겁지?
낑낑대며 서랍장을 옮기다가 그 순간 맨 하단에 서랍이 밀리면서 작업자 1의 복부를 쳤다. 깜짝 놀라서 다가가니 벽돌 사이즈만 한 납덩이가 몇 개 들어있었다. 사장님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사장님 :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이거 뺐어야 됐는데 죄송해요. 이거 빼야 돼요.
작업자 1,2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고 나 또한 하단 서랍을 가득 채운 납벽돌을 보며 경악하였다. 이걸 쳐 넣고 사람들 보고 들으라고 하다니 이건 일부러 엿 먹인 수준이다. 불과 십 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작업자 1,2는 중 노동을 한 것처럼 쩔쩔매고 있었다. 서둘러서 납벽돌을 제거하고 나오니 사장님이 죄송한지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와 간식을 사 오셨다. 납벽돌은 미용실과 관련된 게 아니고 다른 용도로 가져온 건데 서랍장에 넣어놓고서 까먹고 있었다고 하였다. 잠깐 숨 돌리고 서랍장들을 용달차에 금방 올려놓고 들어오니 본격적인 미션인 미용실의자와 안마의자가 남았다.
나는 빳빳하게 고무 코팅된 작업용 장갑을 끼고서 다른 두 명의 작업자들과 미용실 의자를 들었다. 세 명이서 나름 들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들려진 의자 아래로 보니 작업자 2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살짝살짝 신음소리도 들린다.
작업자 2 : 저 죄송한데 조금만 앞으로 더 더 엌!
사장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거들어서 다같이 삐그덕 대며 나와서 트럭에 올리려는데 기사님도 쓰러지기 직전의 우리를 보고 다가와서 합세하였다.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1인이 앉는 의자에 4~5명이 붙어서 옮기고 있으니 효율이 날리 만무 했다. 여기저기 휘청거리면서 간신히 의자 하나를 용달 트럭에 올려놨다.
사장님 : 아휴 우리 학생 힘 좋다면서요.......
사장님이 오묘하게 원망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작업자 2를 쏘아본다. 작업자 2는 민망한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사장님께 묻는다.
작업자 2 : 사장님 이거 의자들 전부 실어 가야 돼요?
사장님 : 당연하죠. 그래서 힘 좋으시냐고 물어본 거예요. 6개 이거 전부 해야 돼요. 용달도 또 올 거예요.
작업자 2 : 사장님 저 화장실 가고 싶은데 어디에 있죠?
사장님 : 건물 가운데 계단 올라가면 중간에 있어요. 비밀번호는 2580*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다음 작업할 의자로 다가가고 있는 그때, 뒤를 보니 작업자 2가 두리뭉실 혼잣말을 하더니 화장실 방향 반대쪽으로 간다.
나 : 저분 다른 곳으로 가는 거 같은데요?
사장님 : 놔둬요 ㅋㅋㅋ 오면 오는 거고 가면 가는 거지
예전에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몇 번 봤던 알바추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나 작업자 2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장님과 다른 사람들도 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예상한 거 같다. 작업자 1은 아까 타격받은 복부를 어루만지며 사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작업자 1 : 사장님 저 사람 갔는데 저희 일당 좀 더 챙겨주시면 안 될까요.
사장님 : 그래야죠. 아까 다치게 해서 죄송했는데 당연히 더 챙겨드릴게요. 빨리 끝내죠!
사장님도 직접 합세해서 무거운 의자들을 옮기기 시작한다. 용달 기사님도 사장님과 딜을 했는지 올라와서 같이 실어 날랐다. 의자를 옮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니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작업이었다. 그래도 중량물이라 이마에 땀이 금방 맺히기 시작했지만 돈 받고 쇠질 한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작업하였다.
사장님 :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바로 입금할게요.
사장님께서 추노 한 알바 몫까지 더해서 3.5 만원씩 계좌이체를 해주셨다. 그리고 자기가 사업장 몇 개를 하고 있으니 이렇게 금방 끝나는 일이 생기면 연락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셔서 연락처도 전달하였다. 일을 마치고 어두워진 강남의 밤거리를 나오니 밤공기가 상쾌하였다. 30분은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하나의 과제를 달성한 느낌이랄까. 작업자 1 과도 인사한 뒤 헤어지고 길을 잠깐 걷는데 건너편에 수제버거집이 보인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들어가서 세트 메뉴를 시켰다. 역시 힘쓰고 배고플 때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
일을 했다는 면죄부가 있어서 그런지 노란 치즈가 올라간 감자튀김도 죄책감 없이 먹었다. 가끔 나의 식성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도 종종 이렇게 소소한 일을 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