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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현장

건물도 사람도 수고하셨습니다

by 서울길

나대지가 아닌 이상 도시에서 하나의 건물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기존에 자리하고 있던 낡은 건물을 철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끔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서 그리 오래된 건물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철거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찾아가는 현장은 주로 빨간 벽돌로 된 오래된 빌라나 상가건물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매끈하게 빛나는 주로 커튼월 (빔으로 구조를 세우고 통유리로 외장을 한다. 대표적인 게 63 빌딩) 방식이나 베이지색 또는 회색 빛의 외장석으로 마감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올라간다.


찾아간 현장에는 이미 철거용 가벽을 치고 포클레인 한대와 함께 건물을 해체하고 있었다. 건물 벽이 부서질 때마다 '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대지가 울린다. 주변의 행인들은 그때마다 깜짝 놀라고는 한다.

가끔 미처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쥐와 고양이가 건물 속에 남아있다가 놀라서 부서지는 건물에서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저 멀리서 봐도 저들 눈에 엄청나게 놀란듯한 표정이 보이는 거 같다. 저들도 이 건물에서 자리 잡고 살았을 텐데 저 주황색의 무지막지한 포클레인이 미울 법도 하다.


해체되는 건물 속으로 방과 거실, 화장실로 쓰였던 공간들이 외부로 노출된다. 아직 다 수거되지 않은 가재도구와 사용감이 있는 문과 벽장을 보면 저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저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잠깐이든 오래든 저 깊숙한 공간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이 건물이 부서지면 어떤 생각을 해볼까도 생각해 본다. 나도 예전에 살던 저층 아파트를 재건축으로 해체되기 직전에 몇 번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아파트 벽에 낙서했던 흔적부터 베란다에서 금붕어를 키우던 기억까지, 단지 콘크리트 건물 한 채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건물을 전부 해체하면 건축 폐기물과 골조로 쓰였던 고철을 수거차들이 와서 가져간다. 요즘은 환경 보호를 위해 콘크리트 잔해도 재활용한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모르고 철근이나 빔 스크랩은 최종적으로는 다시 제강사로 가져가서 전기로로 녹인 다음 다시 제품으로 생산된다. 금속은 이렇게 열로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혹시 모른다 저 스크랩들이 다시 H형강과 철근으로 만들어져 다시 세워질 건물에 쓰일지도


예전 몇 군데 철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안전 수칙을 잘 준수하고 진행하지만 그래도 철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예전에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의 해체 작업 일수를 외국인 손님들한테 알려줬더니 매우 빠르다고 놀란적이 있었다. 다시 빈 공터가 된 다른 현장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대체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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