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온건책 어디까지 허용가능한가
아주 오래전 2008년 여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나는 당시 이명박 정권의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였다. 당시 학교에서 시위 인원을 모으던 선배들은 우리 보고 물이 잘 빠지는 옷을 입고 오라고 하였다. 어차피 여름이라 다들 가볍게 입을 테지만 왜 그럴까 하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되었다. 시위를 통제하는 경찰들이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청와대 방향 펜스로 다가오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쐈고 그 물대포는 극렬 시위대를 넘어 비교적 온건히 항의하는 시민들한테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시 사상자가 나왔다던 뉴스와는 달리 거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생각보다 시원해서 맞을만했던 기억이 난다.
MB아웃, 미친소수입반대 등 여러 플래카드가 띄워져 있는데 내 두 눈을 의심할 배너 문구가 보였다.
'주한미군철수' , '대북평화협상재개' , '금강산관광재개'
비슷한 시기에 한 시민이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북한 군인들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뉴스에도 크게 보도가 되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다. 근데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고 나온 시위에서 그런 문구를 보자니 다소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날 시위가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길, 저런 멘트가 시국 시위에 왜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자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할 뿐 뭔가 명확한 답변은 서로가 서로에게 내지를 못하였다. 그 이후로 몇 번 더 참여했던 시위에서 북한 편에서 이야기할 법한 저 배너 문구는 계속하여 시위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종로 근처에 직장을 다니면서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 탄핵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과 관련하여 시위 현장에 한두 번 즘 지나갈 때 즘 저런 배너는 어김없이 항상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2010년에 벌어진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내 마음속에 반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던 터였다. 연평도 사건 때 북한은 한국의 영토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포사격을 하였고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은 사건이었다.
그 이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데, 당시의 내정(內政)의 이슈에서 적국에 대한 온건책을 설파하는 그들의 정체가 무엇일까에 대한 반감이었다. 시위하는 주최 측에서 순수하게 국가의 미래를 위한 시위활동이라면 저런 단체를 쫓아내거나 시위 장소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할 텐데 저렇게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 일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신기하게도 북한은 우리 민족이고 우리와 함께 평화롭게 대화해야 할 상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과 얽힌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입을 닫거나 어떻게든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햇볕정책이 진행된 이후에도 북한은 군사 도발로 수십 명의 한국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였다. 금방 사그라들 이야기이거나 대중적인 공감을 받지 못할 대화 주제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지금 당장 코앞에 놓여있는 안보위기는 북한에서 비롯한 것이다. 일본과의 과거사와 영토 분쟁 또한 있으며 이를 대비해야 하겠지만 미국과의 삼각동맹 체제로 비롯한 현 상황에서 더욱 심각한 위협은 북한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문장을 한국 근, 현대사에 적용하자면 일본과의 관계도 물론이거니와 당연히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표현이다.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만들고 미래 협력적 구도로 가기 위해서는 전쟁과 군사 도발에 대한 사과 및 재발 방지와 함께 호혜적 상호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계를 개선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이 국가의 시급한 위기가 다가올 때마다 슬며시 다가오는 반국가단체들이 있다. 과연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