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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습관

끼리끼리 모이고 찢어진다.

by 서울길

진상손님 : 뭐라고 했냐? XX놈아?


어느 날 저녁, 강남 어느 술집에서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단단히 화가 난 남자의 샤우팅이 들린다. 뒤이어서 들리는 또 다른 남자의 거친 욕설은 순식간에 모든 이목을 두 남자에게로 집중시킨다.


술집직원 : 손님들 싸우시려면 나가서 해결하세요!


관록이 다소 느껴지는 술집 직원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딱히 놀란 건 아니지만 짜증 난다는 투로 난잡하게 얽힌 두 남자와 그 주변의 친구들에게 일갈한다. 싸움이 난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은 "야야" 소리와 "그만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 둘을 억지로 떼어 놓았고 난장판이 된 테이블을 지나쳐 가게를 빠져나갔다. 뒤이어서 일행 중 한 명이 들어와 가게 직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같이 깨진 술병과 그릇을 치우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의 혼란이 가셨을까 가게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술 손님들의 북적이는 소리로 다시 침묵의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친구 : 나 저 사람들 싸울 거 알고 있었다. 아까 저 테이블 술 들어갈때마다 계속 서로 욕부터 박더라


후배 : 평소에는 찐따지만 술 먹으면 센척하는 XX들 ㅋㅋ


나와 같은 테이블에 있는 일행들도 짜증이 났는지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을 씹어대기 시작한다. 나도 놀라서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음식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아까 전의 즐겁던 분위기도 깨진 상황이라 별로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다.


가게 밖을 나서니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도착해 있었고 아까 봤던 서로 사고 친 두 남자가 비틀거리면서 경찰들 앞에 서있다. 저 남자들의 친구들이 감당하기에는 벅찬가 보다. 술집 거리를 지나가는 많은 인파는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흘깃 쳐다보고 간다. 그렇게 서로 험한 말을 내뱉던 강한 남자 둘은 그렇게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싸움이 난 두 사람들은 앞으로도 서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이미 싸우기 이전부터도 좋은 관계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서로 보기는 힘들 거 같다.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그 주변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가 무르익기 전에도 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썩 듣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 비속어를 쓰며 그들끼리의 리그를 형성하였다. 저 사람들이 전부 기분이 좋고 쿨한 성격이라면 모를까 누구 하나가 속된 말로 야마가 돌아버리면 그들의 관계는 말 그대로 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곳에 와서 하는 그들의 언변의 수준은 싸구려 강냉이의 가치만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어느 기분 좋은 날을 기념하며 왔을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들의 기분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그나마 일행 중 한 명이 와서 가게 직원들에게 사과는 하였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사고 친 사람들 전부 가게 직원 말고도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죄함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도 그날의 기분을 잡치게 한 그 진상들을 속으로 씹으며 집으로 왔다.


자기 직전에 침대에 누워서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까지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손절을 하거나 아니면 손절당했던 인연들을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나와 그들의 언행이었다. 헤어졌던 연인과 친구들은 발단이 어떻든 간에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말과 행동에서부터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늘의 나는 술집의 진상들을 욕했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을 되새겨 보면 나 또한 손절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으리라.


다시 한번 화제를 돌려서 10년 이상 꾸준히 연락하는 몇 명의 친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모였던 무리들 중 누군가가 험담의 대상에 올랐다면 멀찍이 떨어져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10명이 넘었던 모임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본인의 사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진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언변이 거칠고 술이 들어갈 때마다 그 정도가 점점 세졌던 친구는 여지없이 좋지 않은 풍문과 함께 사라졌다. 학생의 신분에서 모인 그들은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지닌 교양의 수준과 함께 준거집단도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이 어렸을 적 술이 들어가면 센척하고 허세를 부렸던 과거를 반성한다. 그래도 아까 전의 술집의 개 진상까지는 아니었으니 좋은 친구과 선, 후배들이 아직 많이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련 업계의 후배들과 후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이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으라는데 오히려 입은 열고 싶고 지갑은 닫고 싶어서 큰일이다. 그래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본능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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