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 : 여기가 공주의 무덤인지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겨울이 깊어가는 어느 날, 경주 쪽샘 유적 발굴지에서 같이 동행한 일행이 유적 해설사에게 묻는다.
해설사 : 부장품의 구성과 배치를 봤을 때 10살 내외의 고위 계층의 어린 소녀가 매장됐다고 추측이 돼서 신라 공주의 무덤일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해설사가 답하였다. 결론인즉슨 100퍼센트 증거로 신라 왕족 출신 공주라고 정할 수는 없지만 부장품의 상태를 봤을 때 신라의 공주일 것이라 추측을 한다는 것이다.
나 : 무령왕릉처럼 지석이 있었으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무령왕릉은 무덤 통로에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지석을 같이 매장해서 무덤의 주인공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근데 경주에서 발굴된 수많은 신라시대 무덤은 수장자의 기록이 없다 보니 아무리 발굴을 해도 누구의 무덤인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쪽샘유적지를 나와서 신라시대 고분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을 방문했다. 운 좋게도 진짜 역사 덕후가 동행으로 참여해서 그런지 가이드 투어를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동행에 같이 참여한 역덕의 친구는 문화재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 계속 황리단길 구경을 가자고 눈치를 준다. 하지만 역덕 친구는 같이 온 친구에게 조금만 더 둘러보자고 설득한 뒤 나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가야 할 곳을 찍어주고 있다. 경주월드 같은 곳을 가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는 신라 유적지를 계속 보게 될 것이다.
경주 시내에서 크던 작던간에 작은 동산이 있다면 그것은 100퍼센트 신라시대 무덤이다. 후대로 가면 갈수록 무덤 주변에 둘레석을 쳐 놓아서 더 확실해진다. 과거 신라의 도성과 궁의 일부인 월성과 안압지가 근처에 있다. 망자의 무덤을 시민들이 사는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뜨린 현대와 달리 고대에는 죽음 자체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경주 시내는 신라의 도시 구획을 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근처의 카페나 김밥집 바로 옆에 고대 무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낮이나 밤이나 그 무덤길을 따라서 수많은 인파가 오가고 있다. 경주를 보면 외국과 같이 무덤군이 꼭 혐오시설로 분류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도 싶다. 도시 주위로 둘러쳐진 신라 왕족들의 캐리커처가 오히려 무덤으로 둘러싸인 경주의 전경을 더욱 친숙하게 만든다.
동행 2 : 와 저거 뭐야?
역사에 관심이 없던 다른 동행이 신라의 큰 무덤을 보고 감탄한다. 안내판을 찾아보니 봉황대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무덤이다. 위에 역시나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무덤인데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과장을 좀 더 보태면 내가 이집트에 갔을 때 봤던 기자의 피라미드 중에 하나인 멘카우레 피라미드 정도 되는 거 같다. 도대체 저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지에 대해 역덕 친구와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다. 예전에 이 근처에 혼자 왔을 때는 잠깐 생각하고 금방 다른 곳을 향해갔는데 이번에는 상당한 지식을 보유한 역덕과 함께 하니 그럴듯한 가설까지 나오고 있다.
그날 마지막 일정으로 경주 박물관을 갔다. 박물관의 전시품을 보니 아까 전에 보았던 경주 벌판의 고분들도 상당수 발굴되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신라인들의 무덤 부장품들은 물론 황금 왕관으로 대표하는 금제 장식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유리잔, 바늘, 놀이도구 등 상당히 일반적으로 쓰였을 법한 소장품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도굴이 쉽지 않은 무덤 구조 덕분에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후대 사람들이 당시의 생활상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박물관을 나와 황리단길에 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동행은 나와 비슷한 처지로 사학 전공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가지고 기회 될 때마다 유적지를 찾아보려 한다고 하였다. 연신 하품하는 다른 친구는 학창 시절 역사 수업이 너무 재미없어서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 : 저도 남는 시간에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처음 접한 겁니다.
그리고 경주 관광지도를 동행에게 건네주자 그 친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지도를 받아 들었다. 관광안내도를 보며 아까 신라 공주와 관련된 유적지는 생각해 보니 꽤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는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렇게 한 명을 역덕의 세계로 전도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