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고양이의 하루

고양이의 일탈

by 서울길

제주도 여행을 하기 전 저렴한 숙소를 찾고자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제주도에 유명한 해장국집 있는 동네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나는 국밥빌런이라서 매일 아침마다 다양한 국밥을 먹을 생각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고 그 행복함이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방도 나름 넓고 목표로 했던 해장국집도 가까운 건 사실이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바로 젊은 청춘이 모이는 게하 파티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게하 주변을 맴도는 청춘들의 목소리가 호텔 복도를 수놓았고 숙소 복귀 후 바로 침대에 누웠어도 바로 잠에 들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나가서 음료수나 사 먹자고 나왔는데 게하와 숙소 사이에 있는 편의점 입구 앞에 사람들이 다수 모여있었다.


청년 : 삼색이 이리 온나 ~ 착하다~

소녀 : 귀엽네 ㅎㅎ 츄르 가지고 있는 사람?


다수의 사람들이 편의점 앞에 있던 이유는 물건을 사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있는 한 삼색 냥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신기하게 고양이는 어딜 움직이지 않고 편의점 입구 앞에서 고정자세로 한참을 버티고 서 있었다. 편의점 안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사장님을 보는 것인지 아님 편의점을 오가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고양이의 존재만으로도 이목을 끌며 가끔 츄르 같은 조공을 하고 있다. 나도 삼색이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봤는데 미동도 없이 편의점의 입구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문 강한 인상의 사람들이 고양이 앞에 서서 시야를 가릴 때면 삼색이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포지션을 이동하여 다른 방향에서 편의점 정문을 바라본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우리의 삼색이는 담배 냄새나는 것을 싫어하는 거 같다. 아무렴 사람들도 싫어하는데 고양이도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가 삼색이의 궁둥이를 쓰다듬을 때마다 삼색이는 환영인지 기피인지 모르겠지만 자기 양다리 사이에 넣어놨던 꼬리를 꺼내서 살랑살랑 흔든다. 그 모습에 고양이를 특히 좋아하는 소녀들은 갸르릉 소리를 내며 고양이의 애교에 동기화가 된다. 나도 삼색이에게 잘 보였으면 해서 게맛살 한 봉지를 사서 일부 조각내어 삼색이에게 제공하였다. 삼색이가 입맛을 다시면서 조그마하게 찢어진 맛살을 시식해 본다. 내 뒤편으로 삼색이의 팬들이 된 사람들의 나지막한 감탄사가 들려온다. 2~30cm가 될까 말까 한 이 작은 동물이 끌어오는 트래픽이 대단하다.


다음날 어설픈 수면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숙소 로비로 나온 길, 이번에는 로비 데스크 앞에서 삼색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름 구면이라고 야옹하며 반겨준다. 무심결에 인사할 겸 삼색이를 들어서 데스크 위에 올려본다. 로비에 계신 직원도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


호텔직원 : 얘(삼색이) 하고 많이 친해지셨나 보네요.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면서 잘 얻어먹는데 살이 엄청 쪘어요. 호호호


직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삼색이가 처음부터 이 동네에 살았던 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조공을 받으니 금세 과체중이 된 거 같은데 게하의 젊은 사람들의 공이 큰 거 같다. 상상외로 게하의 손님들은 고양이를 살뜰하게 챙긴 거 같았다. 며칠 동안 제주의 숙소에서 출퇴근을 할 때 관리를 하는 실장님처럼 삼색이는 주변 2~30m 반경을 돌며 사람들과의 눈도장을 찍는다.


4일째 아침, 갑자기 혼자서 어느 유명한 해수욕장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서 길을 나서는데 삼색이가 로비에서 인사를 한다. 또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어서 물어봤다.


나 : 너도 해수욕장 가볼래?

삼색이 :.....


묵묵부답이길래 그냥 내 갈길을 가는데 삼색이가 슬며시 따라온다. 차 앞에서까지 오길래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손짓을 휘휘 젖자 삼색이가 겁도 없이 랜트카에 확 몸을 싣는다. 까짓거 한번 가보기로 했다.


운전할 때 방해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던 것처럼 꽤 긴 시간을 또 망부석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다. 다만 신호대기 때 대시보드로 몇 번 올라가서 만류하느라 살짝 힘들기는 했다. 해수욕장에 도착해서는 내가 안고 가기로 했다. 목줄도 없는데 잘못하다가 동네의 명물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늘의 빛과 바다의 물결이 조화를 이루는 해수욕장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삼색이가 도망갈지도 몰라서 삼색이를 안고 천천히 해수욕장을 걷기 시작했다.


잠깐 삼색이를 모래사장에 올려주면 삼색이는 몸과 다리를 모래바닥에 이리저리 휘두르며 까끌한 모래의 감촉을 즐긴다. 시(市)에 살던 고양이가 갑자기 짧은 여행을 오게 되었으니 신나는 건지 당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독특한 경험을 선물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가지고 온 귤을 깐다음 삼색이한테 내밀었는데 삼색이는 자기 취향이 아닌 거 같았다. 삼색이의 취향을 존중하며 삼색이를 안고 다시 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삼색이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서 기분이 좋은지 계속 냥냥 거렸다.


삼색이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데려다줬다. 고양이와 함께한 짧은 외출, 까고 남은 나머지 귤을 가지고 올라가며 가끔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지로 오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일지 대략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도 삼색이는 게하와 편의점 앞으로 출근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동문시장을 들렸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쳤다. 그렇게 저녁에 한 번 더 마주쳐서 삼색이와 나는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 숙소 열쇠를 반납하고 짐을 정리하려 로비 앞 의자에 앉아 있는데 삼색이가 다가온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가는데 삼색이가 숙소 입구까지 마중 나와준다. 살짝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에 삼색 냥이와의 짧은 여행을 한 장의 추억으로 남기고 공항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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