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동행

제주도 운전연수

by 서울길

동행 : 혹시 원래 왼손잡이 이신가요?


제주도 여행 중에 운전하면서 옆 좌석 동행에게 갑자기 질문을 받았다.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제주도 여행을 혼자 온건 처음이라 차 안에서 조용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말없이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그녀가 침묵을 깨고 물어본 것이다.


동행 : 아까 렌터카 사무실에서 글 쓰실 때는 오른손으로 쓰셨는데 지금 운전은 왼손으로만 하고 계셔서요.


비로소 갑작스러운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동행도 운전은 가능 하지만 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핸들 조작이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아서 양손으로 잡고 하는데 운전대를 왼손하나로 잡고 있는 내가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고 한다.


나 : 차선 변경이나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 방향등을 넣을 때 왼손으로 핸들을 움직이면서 하면 편해서요. 오른손잡이여도 익숙해지면 이게 더 편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그녀가 의욕이 충만하다. 이번 휴가가 끝나고 돌아가면 바로 차를 살 거라서 여행 중 주행 연습이 가능하면 잠깐 시간을 내도 괜찮겠냐고 물어본다. 나도 남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제주 남쪽 서귀포에 관광지를 몇 군데 둘러보고 한적한 도로를 따라서 연습할 공간을 찾아본다. 옛날에 일제시대 때 일본 군대가 비행장으로 썼던 부지 근처였다. 지평선이 펼쳐진 시계(視界)가 선명한 공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의 동행은 내가 알려준 대로 왼손으로 핸들을 이렇게 저렇게 돌려보면서 방향등도 동시에 넣는 연습을 하였다.


동행 : 너무 어려워요. 방향등을 자꾸 앞으로 밀어요.


계기판에는 동행이 잘못 넣은 상향등 표시가 연신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안간힘을 쓰며 시행착오를 겪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속으로만 웃는다는 것을 그만 못 참고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동행 : 뭐예요 왜 그렇게 웃어요? 지금 무시하는 거예요?

나 : 죄송합니다. 일부러 웃은 게 아닌데......


그녀도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운전석 방향으로 등을 푹 꺼뜨리며 한숨 섞인 웃음을 짓는다. 나도 첫 운전할 때가 생각난다고 솔직히 말하고 시원하게 웃었다. 작은 소형차 안에서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창문을 여니 옆에 유채꽃이 가득하다. 거듭된 시행착오 치고는 그래도 과정이 낭만적이다.


계속 왼손으로만 연습을 해서 팔이 아프다고 해서 나머지 일정은 계속 내가 운전하였다. 길가에 귤을 파는 노점들이 곳곳에 있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레드향을 몇 개 사서 나눠 먹는다. 그녀는 아까 일이 앙금이 남았는지 귤을 먹으면서 계속 나를 흘겨본다. 그 모습이 또한 웃기다.


동행 : 서울 가서 혼자 연습할 거예요. 굳이 왼손만 안 써도 되잖아요. 내식대로 할래요.

나 : 그게 맞습니다. 자기 편한 대로 하면 돼요. 이제 갈까요?


이제는 내가 계속 운전을 하고 있다. 운전 중에 곁눈질을 하며 옆을 보니 그녀는 아직도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속도와 신호위반에 특히 신경 쓰면서 운전을 하게 된다. 어느덧 그녀를 의식하지 않고 갈길을 향해 운전하는 도중 그녀가 한 번 더 말했다.


동행 : 그래도 쉬러 오신 건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카페 가면 커피 제가 살게요.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서 서로가 묻고 답한다. 여행을 혼자 오게 된 자세한 이유부터 하는 일, 여행 스타일 등등.... 그녀도 내 직업과 삶의 방식을 알고서는 나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고 하였다. 어차피 눈 코 입 다 똑같이 달린 사람 아닌가. 처음에야 어색하지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런 분위기가 적응이 된다.


다음 날도 동행의 숙소로 찾아가서 그녀를 픽업하고 여행지를 돌았다. 제주도에서 정말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만 합의하에 찍은 뒤 나머지는 도로가 이어진 곳 어느 곳이든 가보았다. 그녀도 첫날에만 살짝 어색함이 감돌았지 이제는 운전 중에 옆에서 쿨쿨 잠도 잘 자고 있다. 그녀는 내일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나는 이곳 제주도 풍경이 좋아서 동행을 더 구하지 않고 그냥 혼자 이틀정도 더 돌아보기로 했다. 제주도는 생각보다 정말 크고 그 이국적인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날씨도 따뜻하고 왠지 긴 휴일에는 서울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공항에 내려다 주고 혼자 길을 나섰다. 동행이 있을 때는 눈치 보여서 못 갔는데 제주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 국립제주박물관도 가고 몇 군데 제주를 특성화하는 전시관도 가보았다. 인적이 더 드문 오름도 올라가고 저녁에는 동문시장에 가서 먹을거리를 잔뜩 사다가 맥주와 콜라와 같이 먹었다. 돈 많은 백수가 되면 이렇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제주의 마지막날 밤, 근처 게스트 하우스의 소란을 뒤로하고 잠을 청하려는데 카톡이 날아온다. 며칠 전 동행했던 그녀였다.


동행 : 안녕하세요. 제주도 여행 잘하고 계신가요? 혹시 서울 오시면 운전 연수 더 가능해요?

나 : 서울에서 연습은 쉽지 않은데 괜찮겠어요? 저 아르바이트비 챙겨 주세요.

동행 : ㅋㅋ 저 돈 없어요. 커피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커피 두 잔 사드릴게요.


나는 다시 일어나서 한문철TV 몇 개 영상을 보내주고 이런 큰 실수만 안 하면 문제없이 운전 가능하다고 하고 서울에서 약속을 잡았다. 긴 연휴가 끝나기 전에 제주 동행했던 그녀를 다시 한번 서울 강남에서 보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 차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새 운전실력이 또 꽤 늘어서 왔다. 이번에는 계속 잘한다고 칭찬해 줬더니 너무 칭찬만 하지 말라고 한다. 여행 중에 뜻하지 않게 재능기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이 맛에 계속 동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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