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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길길 Nov 04. 2024

비주류의 일상

20대와 30대를 거쳐갈 때에는

2010년대 중반 즈음,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다다르는 나의 인생에서 마땅히 거처가 없어서 자취생들의 첫 입문 지역으로 잘 알려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으로 왔다. 마침 사법고시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신림동 월세도 많이 저렴 해졌고, 가성비 최고로 알려진 신림동의 고시식당도 이 동네를 찾게 한 큰 이유이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1만 원, 5평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방에서 매우 작은 침대 때문에 몇 번씩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래도 전기세 포함이라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고 겨울에는 전기난로를 두대 사서 침대 곁에 두고 자고는 했다. 보통 침대와 방바닥에서 번갈아 일어나며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오늘의 고시식당 메뉴를 보는 것이다. 푸짐하게 차려질 고시식당의 밥과 반찬을 생각하면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매일 새벽부터 여는 고시식당에 들어가면 일하는 사람부터 식사하는 사람들까지 다들 분주하게 움직인다. 각자 취업준비와 시험을 준비하며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몇몇 보이고 학원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밥을 급하게 먹으며 전화를 돌리며 학원에서 배정된 자리를 확인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 사이에서 제육볶음과 잡채들을 큼직하게 퍼서 까만 점점이 박힌 흑미 밥과 함께 맛있는 아침을 먹는다. 흑미의 낱알이 이빨에 걸리면 '뽀직' 소리를 내며 아스러진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6~7가지 반찬 식사를 할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장소이다. 


아침을 먹고 오락실에 가서 게임 몇 판 해보다가 동네 한복판에 가면 교회에서 주는 무료 커피하고 빵을 먹는다. 무료로 주는 커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맛있다. 교회에서 주는 커피를 받은 뒤 고시식당에서 얻은 얼음을 넣어서 마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다. 


가끔 신성초등학교 앞을 가면 설탕 뽑기를 할 수 있다. 오백 원을 내면 두 번 기회를 줬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몇 번씩 뽑기를 하고 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 둘이 어느 날 나한테 물었다. 


"아저씨 백수예요?"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아무 말이나 했다. 


"가디에서 공장일 했는데 문 닫아가지고........"  


* 가디 : 가산디지털단지 줄임말


애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거지 코스프레를 하면 뽑기라도 하나 줄까 싶었는데 몇 초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달려간다. 


가디에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택배 및 각종 기업 창고 알바가 많아서 평일 아침 9시에 가서 빠렛뜨와 박스를 4시까지 옮기면 하루에 5~6만 원은 벌었다. 그리고 대림동 근처에 대림도서관에서 취업준비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대략 10시 반,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대학동에서 자전거를 중고로 샀다. 신림동을 떠난다는 그분은 자전거 외에도 기타 자전거 용품하고 자취 용품까지 같이 건네주었다. 이 자전거를 타고 도림천을 따라 신도림 영화관에 가서 심야영화를 보기도 하고 보라매공원 - 여의도까지 넘어가서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문래동의 철강단지도 가보았다. 여기서 보고 들어봤던 내용들이 내 직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줄 몰랐다. 원래는 여의도를 바라보며 저런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삶의 반경은 여의도가 아니라 문래동이 되었다. 그 문래동도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그때도 나의 삶이 딱히 비전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낭만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방도 아늑했고 매일 정성스럽게 밥과 반찬을 해주시는 고시식당도 항상 그립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너본다. 한강대교와 노들섬에서 바라보는 이곳저곳 어딘가에 내가 갈 곳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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