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 신주쿠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한 시간 반쯤 갔을까 지하철 LED 안내판에 선명하게 '高麗'라는 한자가 들어온다. 진짜 왔다는 생각도 잠시, 하차하는 사람들에 이끌려 역사에서 역 앞 대로변으로 걸어 내려온다. 같이 내리는 일본사람들은 그들의 목적지를 찾아 분주하게 이동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 나는 혼자서 역 앞 간판을 멍하니 쳐다본다. '高麗川' 한글로 풀면 고려천역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봤던 이름을 1,000 km 이상 떨어진 외국에서 보니 살짝 떨떠름한 느낌도 든다.
고마신사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구글 지도를 보니 걸어서 20분이면 간다고 하니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갔다. 일본에서는 하루 평균 거의 10km씩은 걸었으니 20분 정도야 큰 무리 없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역 앞으로 지나고 주택가 또한 넘어가니 유튜브에서 보던 일본의 한적한 시골마을이 펼쳐진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망국의 한을 짊어진 채 도일(渡日)한 고구려 부여계 유민들도 똑같은 산과 들의 풍경을 보았으리라. 백제, 신라계 도래인들이 많이 정착한 오사카 간사이 지방을 넘어서 간토 지방으로 올라온 그들은 지금 정돈된 사이타마현의 한 시골이 훗날 고려씨의 오랜 정착촌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까? 거의 1,500년이 흐른 후 그들이 정착한 간토 지방의 고려촌은 도쿄를 중심으로 거대한 수도권과 맞닿게 되었고 당나라에 의한 멸망에서 일본의 버블 시기를 지나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을 감내해 온 아득한 서사를 지니고 있다.
표지판을 보며 꽤 걸었을까, 용인과 제주도의 민속촌에서 보던 장승이 보인다. 신사 주변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제법 한국의 감성을 꽤 풍기고 있다. 옛 비석 곳곳에는 고려 말고도 조선이라는 글자도 많이 보이고 띄엄띄엄 한국말로 간이 간판도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니 한국 사람들도 어떻게든 존재를 알고서 간간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실제로 경내에 들어서면 한국의 정치인들과 재일 한국 동포들이 식수한 기념 표지가 곳곳에 있다.
신사 경내는 흔히 보는 일본의 신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 모시는 신이 다르더라도 양식은 같기 때문이다. 다만 고마신사는 고구려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남기며 고려계 족보 보존과 전통 복식 재현을 하며 다양한 문화 행사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예전 조선통신사들이 에도 막부를 방문할 때 평균 3개월이 걸렸다고 들었다. 그 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이주하고 정착한 뒤 타국에서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지하는데 힘썼을 고구려 유민들의 노고에 감탄한다. 각각의 전시물을 보며 돌아다니니 고구려 전통 의상을 입은 신사의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웃으며 안내를 해주신다. 파파고를 켜고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라고 말하니 따로 한국어로 된 안내문도 보여주신다. 일본 신사양식과 일본어 안내판만 없다면 경기도 구리시의 고구려 대장간 촌에 온 거 같은 착각도 해본다. 살짝 해본 나의 상상이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 일본 열차를 계속 환승하면서 찌들었던 나의 표정은 은은한 흐뭇함으로 바뀐다. 왕족 출신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천몇 백 년 전 멸망한 국가와 아무 관련 없지만 아무 이유 없이 한참을 머무른다. 살짝 더위가 가시고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2시간 정도 다시 JR 열차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야 한다. 도쿄의 높고 세련된 빌딩 숲을 지나 시골마을에서 고려를 찾아온 길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느낀다. 한반도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꼭 추천해주고 싶은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