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호남의 고부(현재 정읍) 군수의 조병갑의 수탈로 인해 발생한 농민봉기는 오늘날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당시 가혹한 농민 수탈로 인한 봉기였음에도 당시 집권자이던 고종은 이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당시 고종이 행했던 실책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데 자국 군대로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고종은 외세인 청나라를 개입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청나라의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게 되자, 일본은 1885년 청나라와 체결한 '톈진조약'을 근거로 조선에 무단으로 침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골 때리는 상황에 조선 조정은 일본과 청나라의 동시 퇴군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호남에서 발발한 농민혁명을 같이 진압하는데 두 외국군의 힘을 빌리게 된다. 이후 동학혁명의 우두머리인 전봉준을 한양으로 압송한 것도 일본군이고 그 이후 청군과 일본군의 '청일전쟁'으로 이어져 그 후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일본제국은 조선반도를 본격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뒤 1875년 운요호사건을 시작으로 다시 한반도를 집어삼키기 위한 야욕을 차례대로 진행시킨다. 웃기게도 조선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라는 막대한 전쟁을 치른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자인 고종 스스로가 또다시 대놓고 외세를 자국 영토에 끌어들이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오늘날 일본의 우익들이 주장하는 '고종 조선 할양론'의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이후 헤이그 특사 파견 등을 근거로 항일운동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세계의 여론은 조선국의 무능한 지배층이 나라를 열강에 갖다 바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한일병합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정규군이 일본제국군과 전투를 벌인 경우가 없으며 오히려 민중에서 병합에 반발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이 그 증거라고 하겠다.
이후 2차 대전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 우리나라는 비록 반쪽짜리이긴 하지만 신탁통치에 의한 독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독립 또한 나라를 빼앗긴 기득권층에서 발발한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같은 민중들이 주축이 되어 일구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 저항 없이 나라를 고스란히 바치고 막대한 은사금으로 떵떵거리며 살던 조선의 기득권 층은 이회영 일가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곧바로 친일파로 태세를 전환하였고 오히려 수탈과 탄압의 대상이던 백성들이 공화국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항일투쟁에 나섬으로써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합국에 의한 독립으로 인해 한반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현재까지도 그 상황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때 이조 놈들이나 왜정 놈들이나 별차이가 없었어. 수탈당하는 건 똑같았거든 오히려 왜정이 들어오고 나서 시골에 수도관 하고 보건소가 들어왔었고 어린애들은 전부 학교로 보냈어."
당시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던 할아버지의 육성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왜정이라고 하는 것이 일제강점기라는 것을 몰랐었는데 나중에 성장하고 나서 그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상당히 장수하셨던 할아버지는 안성과 평택에서 평생 동안 농사일을 하셨었는데 연세가 많이 드셔서 평소에는 말씀이 어눌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말씀을 하실 때에는 매우 뚜렷하게 본인의 의사를 드러내셨었다. 그 외 말씀하신 전체적인 맥락을 되새겨 보면 당시의 지배계층이 달라졌다고 해도 양민들의 삶은 똑같이 피폐하고 고된 삶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근대사를 다룬 역사책과 드라마, 다큐멘터리, 박물관을 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느낀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이 행한 야만적인 행위는 분명한 사실이며 반드시 기억하고 지속적으로 항의해야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악의 상황으로 몰아간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회피하거나 당시 집권층을 무조건 적인 피해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미래세대의 역사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앞에 놓인 모든 사실을 온전히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러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다시는 무고한 민초들이 역사의 희생양으로 소모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15일 오늘, 국권침탈 115주년, 광복 80주년이 되었다. 이제 와서 어느 누구를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를 관통하는 사실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고 그 여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풀어내야 할 용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