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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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교양수업에서, 나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같은 조 친구들이 할 말을 잃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잠시 후 살짝 방향을 잃어버린 제스처까지....... 그들은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의 반응, 이렇게 충격을 줄만한 이야기를 풀어내고도 내가 아닌 제삼자의 모습처럼 교실의 바닥과 우측에 보이는 칠판을 번갈아서 태연하게 쳐다보며 ' 괜히 말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 잠깐의 적막을 깨고 같은 조 한 친구가 우물쭈물 대답한다.
"믿기지가 않네.... 그게 진짜라면..... 힘내, 이렇게밖에 말 못 하는 게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말한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말아 줘 내가 오히려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같은 조 친구는 안쓰러운 듯 살짝 눈물도 지어 보이고 연신 나의 눈치를 살핀다. 안 그래도 되는데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말한 거 같아서 내가 더 미안했다. 남은 시간에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에세이를 쓰라는 교수님의 말에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조용히 눈을 떨구고 모았던 책상을 돌려서 다시 원위치시킨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태연한 척 하지만 갑자기 쏟아낸 나의 TMI에 이제까지 나를 알지 못했던 그들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겨진 기분마저 들었다. 하필 '억압받는 자들의 교육학'이라는 주제로 수업 중 자기 고백을 하다 보니 '억압'이라는 단어에 급발진한 것이다. 남은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점점 내 머리 위에서 나를 통째로 빨아가려는 무엇인가가 떠 있는 거 같아 매우 불편해졌다.
' 다음 시간에 또 같은 조 하면 어떻게 하지? 모른 척하고 있어야 되나?'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르르 떠밀리듯 강의실을 빠져나온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시간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며 캠퍼스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이었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금방 붉은 눈물을 터뜨릴듯한 태양이 정문을 나서는 나의 오른쪽 어깨에서 일렁인다. 어차피 똑같은 하루의 마무리인 것을, 오늘은 인턴 면접 준비를 해야 해서 빨리 지하철역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상당히 긴 거리를 재촉하며 나는 잠깐의 꿈을 꾸듯 오늘의 마지막 수업을 잊으려고 노력하였다.
면접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억압자라는 정의와 의미에 내가 왜 집착하게 되었는지 계속 생각했다. 당연히 스터디를 진행할 때에도 그 생각으로 둘러싸여 연습 중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선주님 오늘 많이 피곤해요? 혹시 너무 힘들면 먼저 들어가서 쉬어요."
나의 어지러운 마음속을 알아챘는지 같이 스터디를 하는 팀원이 살짝 귀띔해 준다. 나도 굳이 내 상태를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술을 마신 것 마냥 머리가 어지럽다. 같이 스터디하는 분들이 괜찮냐고 한바탕 분주해지며 물어본다. 부축해 주겠다는 사람, 연신 "괜찮아요?" 하는 사람, 괜찮다고 하며 다가오는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한 채 스터디룸에서 나왔다. 바깥공기를 쐬며 안정을 취하고 몇 시인지 휴대폰을 꺼내서 보니 동생한테 카톡이 와 있었다.
"누나 잘 지내고 있어?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궁금해서, 엄마가 많이 물어보셔."
메시지를 보니 안 그래도 어지러웠는데 이제는 쓰러질 거 같다. 주변에 보이는 편의점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서 허공을 바라본다. 대학가의 화려한 불빛과 띄엄띄엄 번져가는 하늘의 별빛 속에서 나의 존재감은 희미해 보인다. 나의 주변은 온통 왁자지껄 웃음꽃이 피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나 혼자만 땅 끝으로 사그라져가는 느낌일까? 단지 수많은 수업 중에 하나를 받은 날인데 유독 오늘은 왜 더 힘이 빠지는 걸까? 너무 피곤하다. 스르르 잠시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