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2

by 서울길

"최수연 이 새끼야 네가 뭣도 없는 게 잘난 척이나 하고 부모 시키는 일에 매일 싹수없게 한소리 하니까 니 동생들도 똑같이 그러는 거 아니냐고? 어?"


쥐새끼조차 숨죽이며 지켜볼 삭막한 광경, 안 그래도 추운 날씨에 창고 안에 들어오면 더 으시시한 한기가 서리고, 창고의 모서리 사이로 바퀴벌레와 그리마가 꿈틀거리며 기어 올 때면 그 소름 끼치는 기분이 몇 배는 올라서는 느낌, 우리 가족의 불쾌한 모임은 집 앞의 어두 컴컴한 천막 창고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준비된 물건을 빨리 배송해야 하거나 납품한 거래처로부터 돈을 당장 받기 힘든 상황이 오면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갈라지고 튀틀려졌다. 그리고 아까 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캐물으며 우리 세 남매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곤란한 상황은 창고 안에서 아빠의 심기가 특히 더 불편해졌을 때의 일이다.


"니가 서울에서 공부하는 것도 이 애비가 못 입고 못 먹어서....... 씨팔 내가 이런 소리하는 것도 지겹네. 야 너네들 잘 들어? 이 년처럼 말대답 따박따박 쳐하고 부모 하는 일 우습게 보면 너네들은 학교 전부 자퇴시킬 줄 알아. 알았어!?"

"부모 하는 일 우습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요?"

"아 씨발 것 좀 보소 또 말대답이네?"


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는 눈이 뒤집히며 더욱더 맹렬하게 반응한다. 동생은 눈물을 찔끔씩 내보였고 나는 별수 없이 동생을 끌어안고 더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생결단 낼 아빠의 표정, 어떻게 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데 갑자기 아빠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 형님 ~ 잘 지내셨고요? 아 수연이? 아이 뭐 내가 뭐 해준 것도 없는데 공부는 뭐........ 하하 그리고 다들 방학 때 와서 도와주고 그래요. 아 우리 와이프 닮아가지고 다 착한가 봐요. 형님 애들도 잘하겠죠 뭐~ 담주에 시간 되면 식사하시죠 네네~."


아까 전의 그 살벌한 표정에서 180도 바뀌어 세상 좋은 미소를 띠는 우리의 최태수 사장님은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며 창고를 나간다. 귀가 찢어질 듯 퍼지던 소름 돋는 장면에서 다시 적막이 흐르는 창고, 언니는 바닥에 박힌 고목나무와 같이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다.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저 새끼는 매일 하는 말이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방학 때 와서 일이나 도우라는데 저 새끼도 돈 못 벌고 있는 거 같은데? 나 간다. 잘 있어. 선용이 잘 챙기고."


언니가 뒤돌아 가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한 번 더 말한다.


"그리고 엄마 데리고 안과도 가봐야겠더라 이제 눈까지 안 좋아지는 거 같은데. 눈까지 안 보이면 엄마는 진짜 가축신세야. 미안한데 좀 챙겨줘."


언니는 창고 뒤에 짱박아둔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미 푸닥거리 끝나자마자 바로 뜨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나도 선용이를 감싸고 도망치듯 창고를 나왔다. 뒤 돌아 창고를 보면 끝없는 어둠 속이 마치 블랙홀 같다. 저 검은 동굴 안에서 수많은 일이 있었다. 저기에는 우리를 먹고살 수 있게 했던 것들이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들도 수두룩 하였다. 고맙기도 하지만 소름 끼치기도 한 100평 남짓한 어둠 속의 창고는 나의 기억을 잡아먹는 블랙홀과도 같다.


선용이를 반쯤 둘러업고 바깥의 골목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는 언덕 위의 성당, 믿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언덕길 너머에 보이는 저 십자가로 향한다.


"누나 또 성당가?"


선용이도 아마 알 것이다. 저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찬찬히 언덕 넘어 성당까지 도착하면 한눈에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여기서 선용이와 함께 해가 질 때까지 앉아있는다. 아빠는 낮에는 날뛰었다가 밤에는 어디론가 가서 없거나 마루에서 TV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기 때문이다.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랬다. 밤이 오면 몸이 불편하신 엄마가 우리를 찾으러 다녔고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 01화자각(自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