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3
언니는 창고에서 마지막으로 본 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봐도 전혀 받지도 않다가 나중에는 착신 정지가 되었다. 이미 언니는 오래전부터 이 집안에 미련을 버린 거 같다. 자연스럽게 집안의 우환의 씨는 나에게로 전가되었다. 언니가 나간 원인부터 아빠의 사업이 안 되는 이유까지, 언니의 빈자리가 커지는 만큼 나에게 들리는 험담의 강도도 거세졌고 언니한테 연락해 보라는 강요도 심해졌다. 그 와중에 아빠는 외부에서 언니의 안부를 묻는 말에는 장학생으로 선발돼서 외국으로 유학 갔다는 적절한 거짓말도 잊지 않았다. 전에는 쓸모없는 밥버러지라더니 역시 바깥에서는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실한 아이들로 변해 있었다.
돈을 모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읍내에 나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해도 금방 소문이 났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푼돈 벌생각하지 말고 공부해서 제대로 취업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아빠의 맞는 말이다. 다만 내가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을 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디 갈 곳이 없으니 자습시간에 인강을 들으며 대치동의 1타 강사들과 심심치 않게 수다도 떨고 고민상담도 한다. 실제 내가 대치동에 가서 그 선생님들을 뵈면 원래부터 아는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다만 그분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인 줄 알겠지만
이 동네는 워낙 사람들이 없어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이미 이 동네에 오래 산 애들은 아빠가 본래 성격이 지랄 맞은 줄 잘 알고 있었고 그 자식들도 성깔을 닮아 썩 좋지 못한 성격에 항시 꾀죄죄함을 알고 있었다.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데면데면하며 서로 무관심한 사이, 특출 나게 잘난 나의 언니를 제외하고는 나와 선용이를 좀 더 불쌍하게 쳐다보는 거 같은 느낌이다. 언니까지 서울로 나가버린 이상 나와 선용이를 정서적으로 대우해 줄 사람은 거의 전무하였다. 우리는 매일 축사에서 던져주는 여물을 퍼먹는 말할 줄 아는 짐승, 그게 나의 정체성이고 앞으로의 미래인 듯 보였다.
"농어촌전형으로 대학도 많이 가고 지역에서 운영하는 학사도 있을 거야. 그런데를 가. 왜 그 집에서 그러고 있어? 내 생각은 그 집에 있어봐야 아무런 희망이 없어, 수연이도 안 들어온다면서."
어느 날 저녁 띄엄띄엄 일하며 친해진 점장 언니와 영업이 끝난 매장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함경도에서 탈북한 점장 언니는 생사를 넘나드는 곳에서 뚫고 나온지라 생존력이 강했다. 동네에 진상 아저씨들이 개념 없이 장사를 훼방 놓으면 확실하게 본때도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 같은 불우한 이웃들이 있으면 조금씩 도움을 주기도 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하도 친구가 없으니 우연히 털어놓은 가정사에서 꽤나 많은 신경을 써준 분이기도 하다.
"자식한테 상습적으로 폭언이나 욕설을 내뱉는 부모는 자격이 없어. 그 주변인도 마찬가지야. 나중에는 그게 대물림된다고."
이 동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옥에서 탈출한 점장님은 우리 집의 답 없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선용이가 가끔씩 내뱉는 상스러운 말은 분명 아빠가 물들게 했을 것이다. 문제는 나도 가끔씩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후에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나도 자식이나 가족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 집안의 내력을 드러낼 것이 뻔했다. 점장언니로부터 최대한 학비나 생활비 정도는 고분고분하면서 받아내라는 말을 듣고 셔터를 내린 매장을 나왔다.
'학비가 싸면서 취업이 잘되는 대학교와 학과'
'혹시나 혼자 살 때 버틸 수 있는 방법들'
뭔가를 생각을 해보아도 나에게 뾰족이 생각나는 건 없어서 유튜브를 검색해서 알아보았고 전문대를 포함해서 농어촌전형이 가능하고 학비가 싸거나 장학금을 잘 주는 대학교를 진학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이렇게 알아보는 모습을 생각보다 좋아했고 아빠도 의외로 격려까지 하면서 알아보라고 하셨다. 언니의 등록금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나름의 생존 방식과 근성에 하늘도 도와준 것인지 2학년 막바지쯤 시작한 정시파이터 생활이 나쁘지 않게 끝나게 되었다. 저 멀리 원격강의를 도와주신 선생님들의 도움도 있었고 뒤돌아 볼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정신 없이 달려와서 그런지 몸무게도 10kg 가까이 더 빠지게 되었지만 대신 목표하던 대학교 합격장을 받을 수 있었다. 선용이는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몇 번 삐지기도 하였지만...... 서울로 가서 일도 하면서 용돈을 많이 챙겨주겠다는 말로 달래주었다. 간혹 큰 행사가 있을 때 몇 시간에 걸쳐서 갔었던 서울에 내가 살게 되다니 긴장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였다. 나는 앞으로 자유를 찾아갈 거니까.
지원한 대학의 입학 허가증을 프린트 한 날 언니에게 문자를 하였다. 오지 않을 답장인 것을 알지만 나도 언니와 좀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그리고 기숙사를 나오게 되면 같이 살자는 메세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