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4
팡팡
폭죽 소리에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멀리 보이는 어떤 건물 위에서 누가 폭죽을 쏜 거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편의점 의자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것이다. 골목 사이로도 밝게 빛나던 불빛들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었고 너무 피곤했는지 불편한 편의점 의자를 침대 삼아 잠시동안 자버린 것이다. 서둘러서 정리한 후 기숙사로 돌아와서 침대에 눕자마자 주호 씨한테 카톡이 온다.
"안녕하세요. 아까 일하시는데 지나갔는데 안 보여서요. 오늘은 쉬시나 봐요. 시간도 늦었는데 갑자기 메시지 보내서 죄송해요."
아이폰으로 바꾼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적응이 안 돼서 안 읽으려고 했는데 그만 메시지를 보고 말았다.
"네 오늘은 스터디를 해서요. 매일 일 하지는 않아요. 좋은 밤 보내세요."
무슨 메시지인지 바로 답장이 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보지도 못하고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정신없는 마음을 추스르고 수업에 가려고 준비하였다. 기숙사 같은 방 옆 침대를 쓰는 룸메인 유경 언니는 오늘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온 쿨한 언니인데 진로고 뭐고 스트레스받으며 재수를 했으니 신나는 1학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란다. 그녀의 책상 위에 옷과 노트북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술을 안 마셨는데도 숙취처럼 살짝 머리가 띵했다. 어제 너무 많이 고민을 했을까.
전공 수업 시간 중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메시지를 보았다.
"혹시 내일모레 금요일에 시간 괜찮으시면 카페 어떠세요. 커피 좋아하신다고 하셔서요."
금요일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신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나같이 미천한 사람한테...... 딱 봐도 학군에서 곱게 자라셨을 거 같은 학생분이, 하지만 커피값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없다. 별로 사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짧게 '죄송한데 커피 마실 시간은 없네요.' 하고 짧은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그날 밤 매장 영업시간이 끝나는 시간, 바깥에서 누군가 안쪽으로 기웃거리며 들어온다. 주호 씨였다. 갑자기 머리 뒤로 불쾌한 기운이 엄습한다. 이 시간에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알고 온 건지 모르고 무작정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번호를 달라고 할 때처럼 어깨를 들썩거리며 들어오며 우물쭈물 입을 연다.
"밤이라 커피는 힘들 거 같고, 그냥 와봤어요. 일하시는데 방해될 거 같아서 지금 온 거예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매장 마감을 도와준다. 청소도 해주고 쇼케이스도 정리하고 어디서 봤는지 간절하게 나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마감을 준비한 거 같다. 마감을 도와주니 분명 고마운 것인데 왜 이렇게 생각보다 더 심하게 불쾌할까? 매장의 문을 닫고 주호 씨와 나는 매장 앞에서 나란히 서 있는다.
"감사해요. 근데 앞으로 이렇게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일이에요. 그리고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죄송합니다. 제가 오버했어요. 이거 전해드리려고요."
주호 씨는 나에게 디카페인 카페라테를 주고 황급히 사라진다. 컵에 조그마하게 리본을 장식으로 묶어둔 1회용 컵, 그래도 나름 선물이라고 가만히 가지고 있어 본다. 고향에 있을 땐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건 부활절날 성당을 갔어야만 해당되는 일이었고 지금처럼 속세에 절어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대학에 와서 선배 언니들 하듯 머리도 정리하고 아주 가끔씩 새 옷도 사 입으니 발생하는 효과일까.
근데 주호 씨한테 미안하지만 나 같은 '하여자'를 알면 알수록 질릴 것이 뻔했다. 그리고 상처도 받을 것이다. 왜냐면 연예 유튜브를 보니까 한쪽이 퍼주는 사랑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했고 여자에게 계속 맹목적으로 퍼주는 남자는 하남자라고........... 난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줄 여유가 없는데 계속 받고만 있을 수는 없고 주호 씨는 날 찾아오면 이렇게 뭔가를 주려고 하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나에게 호의를 줘봤자 이상하게 나는 불쾌한 기분이 들면서 왠지 받아들일 수 없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머리 뒤쪽부터 시작하는 이상한 느낌. 처음 주호 씨가 나에게 다가와서 연락처를 물어봤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거기서 바로 거절했다가는 바로 울 거 같은 표정에 연락처를 주긴 했지만 사람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닌데 주호 씨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수록 계속되는 그 떨떠름한 기분은 왜일까?
그 이후 주호 씨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면 찾아와서 멀리서 쳐다보다가 자기 갈길을 간다. 자기 나름대로 숨어서 본다고 하는 거 같은데 유리창 밖에서 다 보인다. 그는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숨어 있으면 진짜 숨겨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느 날 그 반복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나도 디카페인 커피를 사서 주호 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호 씨 이거라도 마시면서 해요."
주호 씨가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내가 갑자기 커피를 들고 매장을 나와 주호 씨에게 다가가자 주호 씨는 깜짝 놀란 듯 뒤에 쓰레기 봉투에 걸려 넘어질듯한 포즈로 바라본다. 나에게 받은 커피를 들고 말없이 쪽쪽 마신다. 정말 말없이 나를 보기만 하러 온 거 같았다.
"감사합니다. 다 보고 계셨군요. 앞으로 일하는 곳에는 오지 않을게요."
주호 씨가 방긋 웃으며 빈컵은 자기가 버리겠다며 가지고 간다. 주호 씨의 웃는 모습에서 고향에 있는 선용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의 사뭇 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다. 나에게 오는 관심만큼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주호 씨는 가게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주호 씨의 카톡이 왔다.
"저도 아르바이트해보고 싶어서 제가 사는 동네에서 해보고 있어요. 시간 날 때 놀러 와요. 저 그리고 곧 군대 가요."
나도 주호 씨가 마감할 때 찾아가서 같이 마감을 해줘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주호 씨의 동네는 생각보다 멀어서 쉽게 가기가 힘든 위치에 있었다. 군대 무사히 잘 갔다 오라는 말로 주호 씨와의 대화를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