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다리 어디까지 가 봤니 ① 사연있는 한강의 다리들
1950년 6월 28일,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3일 뒤, 한강다리는 엄청난 섬광과 폭음과 함께 폭발합니다.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철교와 인도교 일부가 폭파 되었는데요.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강다리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시는 전란 등으로 1917년 당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변형됐지만,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다리인 한강대교를 서울시 등록문화재 1호로 선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강대교 외에도 서울에는 30개 다리가 있습니다. 그 중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한강다리만 21개인데요.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한강다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한강다리의 역사와 뒷이야기는 물론, ▲서강대교 안전점검 현장, ▲개통을 앞두고 분주한 월드컵대교 현장과 ▲월드컵대교 개통 소식까지 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한강다리가 가진 사연과 기록들을 모아봤습니다. 단순히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구조물이 아닌 오랜 세월 묵묵히 우리 삶과 함께 해 온 한강의 다리들을 소개합니다.
한강대교는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도록 건설된 1,005m의 교량으로 1917년 10월에 준공했다. 한강인도교, 제1한강교로 불리다 1984년부터 한강대교로 바뀌었다. 1925년 대홍수로 중간 둑이 유실돼 위험해지자 연장 459m의 대교량 가설공사를 실시, 1929년 9월 완공했다. 6·25전쟁으로 일부 구간이 파괴됐고, 아직도 다리 하부엔 다수의 탄흔자국이 선명하게 존재한다.
지금은 차와 사람이 모두 통행할 수 있다. 서울 도심과 여의도 동부의 노량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대교는 규모가 크고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를 말하고, 철교는 철도가 부설돼 있어 열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다리를 말한다.
용산과 노량진 사이를 연결한 한강철교는 하나가 아닌 총 4개의 개별철교로 구성되어 있다. 강 상류부터 B교, A교, D교, C교로 불린다. 그 중 A교는 한강에 가설된 모든 다리 중 최초의 교량이다.
1896년 3월 미국인 모스(James R. Morse)는 조선정부로부터 경인철도부설권을 얻어냈지만, 자금난으로 부설권은 일본 철도 회사로 넘어갔다. 완공은 1900년 7월로, 개통당시에는 노량철교로 불렸다.
이후 6·25전쟁의 발발로 1950년 6월 A·B·C 3선이 모두 폭파되어 임시복구해 사용하다가 1957년 7월에 C선을 복구하고, 1969년 6월에는 3선이 모두 완전 복구되었다. 1995년 D선을 건설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인선 및 한강철교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서울에서 인천까지 육로로 12시간, 배편으로 8시간이 걸렸으나, 완공 뒤에는 1시간에서 2시간이 걸렸다.
성수대교는 강북의 성수동과 강남의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한강교량으로, 서울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1979년 준공했다.
성수대교는 붕괴사고가 일어난 다리로 기억되고 있다. 1994년 10년 21일 기존교량의 일부구간이 붕괴되어 32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전반의 시설물 안전관리의 중요성과 안전의식을 크게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붕괴된 후 1997년 새롭게 복구 되었으며, 복구된 성수대교는 통과하중이 1등급으로 향상됐고, 진도5의 강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가 됐다.
2004년에는 확장 및 램프구간 설치되어 사통팔달로 진출입이 가능한 새로운 교량으로 탄생했다.
1970년 5월 준공한 마포대교는 강북의 마포동과 강남의 여의도동을 연결하는 한강교량으로 처음에는 서울대교로 불렸다. 당시 길이 1389.65m에 너비 25m로 양쪽에 2m의 인도를 낀 6차선다리로, 마포대교라는 이름은 1984년 11월부터 사용됐다.
또 이곳은 영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2013년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에서 범인의 표적이 되어서 폭발사고가 일어난 곳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2014년 3월에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촬영장으로 쓰여 주목을 받았다.
길이 795m에 너비 18m인 잠수교는 1976년 7월에 완공됐다. 수면 위 2.7m에 설치, 홍수 때 교량이 잠기면서 한강 유속 감소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유사시 기갑부대(전차, 장갑차 등)가 빠르게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교량의 높이를 낮춘 것이며 일명 ‘안보교’라고도 불렀다.
잠수교는 2층의 반포대교와 붙어있는 한국 최초의 2층 교량으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바지선이 다닐 수 있게 승개 장치를 썼다가 나중에 유럼선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다리의 한 쪽을 영구적으로 들어 올려 지금의 모습이 됐다. 특히 잠수교는 홍수시에 한강의 수위를 알려주는 큰 구실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다리다.
올해 잠수교는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보행 중심 공간으로 전환키로 한 것. 보행과 자전거, 개인형 이동장치(전동킥보드 등)가 어우러져 소통하면서, 공연·휴식·친수(물과 접촉) 공간을 갖춘 새로운 다리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포대교에 설치된 달빛무지개분수는 세계 최장 교량분수로 2008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분수는 반포대교 570m 구간 양측 총 1140m에 380개의 노즐을 설치해 수중펌프로 끌어올린 한강물을 20m 아래의 한강으로 1분당 190t씩 내뿜도록 설계됐다. 2009년 처음 가동했으며, 밤에는 200개의 조명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쉽게도 달빛무지개분수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올림픽대교는 광진구 구의동과 송파구 풍납동을 연결하는 너비 30m, 길이 1,470m의 다리로, 1989년 11월 15일에 개통했다. 제24회 서울올림픽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으며, 주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12가닥씩 도합 24개의 사장케이블을 교량 중앙선을 따라 배치했다.
탑의 높이를 88m로 하여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뜻을 내포했다. 탑은 횃불 모양 상징물 아래 네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는데, 동북쪽 첫 번째 기둥 안에 점검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다. 가로 세로 모두 135cm, 높이 186cm 크기의 매우 작은 승강기로, 공간이 협소해 보통 2명, 많게는 3명까지만 탈 수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안전검검이 중요해지면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점검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다리 위 약 60m 상부(지상에서 88m 위) 조형물과 케이블 등을 살피는 일을 한다. 참고로 엘리베이터가 없던 14년 동안은 점검반이 60m 위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했다고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한강다리 위로 자동차가 지나간다. 사람들은 다리 위를 달리거나, 이곳에서 남몰래 눈물도 훔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이제 한강다리는 서울사람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우리가 오래도록 한강다리를 이용할 수 있는 건 다리를 진단하고 살펴보는 이들이 있어서다. 서울시는 시민 누구나 안전하게 한강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밀안전진단 및 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월드컵대교는 8월 개통하고, 노들섬과 노량진을 잇는 보행자 전용교인 백년다리는 올해 안에 공사에 들어간다. 이 다리들도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시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한강다리로 기억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