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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Dec 21. 2022

세상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부제:시간

세상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부제:시간 도둑질4)



※미리 알림 

본문에 다소 불편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 인상 찡그릴 수 있습니다. 가슴 다독이는 말랑말랑한 글이 아니며, 다소 거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버스 승객들의 30%는 '쓰레기'


버스를 하면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 줄 몰랐다. 일부 기사들은 버스를 두고 자조섞인 말로 '쓰레기차'라 부를 정도다. 남에게 피해가 가든말든 자기 갈 길만 가는 '좀비'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속으로 그렇게 부른다. 



승객들은 자신이 그렇게 불리우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쓰레기'가 됐는 지도 모른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인 양, 무심한 얼굴로 버스에 승차할 뿐이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인성'이 덜익은 사람들 천지다.



이 직업을 하기 전에는 이런 비상식적인 것들이 '토픽'에나 오르는 일인 줄 알았다. 


어림잡아 30%지 더 될 수도 있다. 매일 승하차 승객 인원의 비율을 따져보면 대략 그렇다는 이야기다.


▷하차하자마자 뒷바퀴에 자신의 발을 끼워놓고 팔짱기고 기다리는 여자(TV 뉴스 보도)

▷버스 기사가 정차 후 일어나라고 2회 안내했음에도 기어이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일어서 발목 골절 후 기사에게 치료비 보상 요구하는 승객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음에도, 출퇴근 시간이라 붐비는 버스를 보면서도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승객 

▷휴대폰을 보며 승차하다 발을 헛딛여 시간 보내는 승객 

▷휴대폰을 보다가 정류장 놓칠 찰나 뒷문 닫힐 때 내린다고 일어서서 나오는 승객

▷하차벨 누르지 않고 서 있다가 왜 안 세워주냐고 소리치는 승객 

▷성인이면서 미안한 말 없이 1천원 지불하는 승객 

▷버스 안에서 손톱깍는 승객 

▷버스 안에서 고구마 혹은 밤 까먹고 껍질 그대로 바닥에 버리는 승객

▷버스 안에 종이, 비닐 조각 등 쓰레기를 의자 사이에 끼워놓는 승객

▷버스 정류장에서 노상방뇨하는 여자 

▷마스크 내리고 잠자는 승객

▷버스에 거스름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1만원 내는 승객

▷캐리어 3개 끌며 승차하는 승객

▷버스가 출발해서 속력을 내는데, 도로로 뛰어오면서 앞을 가로막는 승객

▷버스에서 내려 무단횡단하다 25톤 덤프트럭 바퀴에 역과돼 즉사한 승객


하루에도 이런 승객을 몇 번이고 보니, 우리나라 인구의 30%는 이런 인간들이라고 보면 맞다. (위 예시에서 승객은 쓰레기와 동의어임) 그렇다고 이런 승객을 볼 때마다 이야기를 한다는 건 에너지 소모 극대화다. 


일부 동료 기사들은 40~50%까지 올리기도 하지만 그건 무리다. 만약 그렇다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아이들이 이미 배웠다는데 문제가 있다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버스 기사들은 질서를 해치다 사망하는 망인에게는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는다. 흡사 도로 위 상황들을 전쟁터처럼 여긴다.


그런데 대다수 이런 쓰레기들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보다 못할 때만 매우 완화된 어조로 언급할 뿐이다. 묵언수행을 제대로 실천하는 셈이다.


버스 기사는 '스님의 인생'과 같다고 일전에 언급한 바 있는데, 딱 그 말이 맞다. 묵언수행 뿐만 아니라, 식사는 거의 채식이다보니 '절밥'에 가깝다. 홀로 앉아서 운행을 하다보니 늘어나는 건 뱃살과 인내심이다. 아마도 버스 기사들은 모두 불교에 귀의해도 큰 탈 없이 적응 하리라.




■지하철 문틈에 끼면 기관사에게 보상을 요구하나?


자주는 아니지만, 버스 앞뒷문에 끼어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승객을 종종 본다. 그들은 자신의 팔이, 혹은 다리가 아프다며 돈을 요구한다. 버스 보험으로 처리해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사고 기록이 남아 훗날 버스 기사는 불이익을 받게되어 30~50만원으로 합의할 때가 많다.


그런데 알고보면 나이롱에 보험사기가 대다수다. 최근 한문철 변호사로 인해 '즉결심판'이 유행하여 '무죄'가 속속 나오긴 하지만, 일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변변한 CCTV 없던 시절에는 더했다.


버스는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이다. 공영제와 준공영제의 차이긴 하지만, 국가 기반 시설로 인정되어 관리받고 있는 플랫폼이다. 그렇다면 사고 시, 누구에게 책음을 묻는 게 맞는 것인가? 버스 기사가 가해자임이 명백한 경우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쓰레기를 만났을 때 얘기다. 누가 봐도 공연히 문이 닫히는 찰나에 일부러 손이나 발을 밀어넣어 발생하는 사고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 한 번 해보자.


만원 지하철 문틈에 가방이 끼었거나 팔이 끼었다고 기관사에게 보상을 요구한 적 있는가? 지하철이 출발하려고 문을 닫았는데, 자신이 안 탔는데 왜 문을 닫았냐며 따져본 적 있는가? 



이쯤되면 쓰레기는 시간도둑과 동의어가 된다. 시간 뿐만 아니라 여럿을 훔쳤다. 서울 시내버스는 서울 지하철과 동급으로 맞다. 정시성을 지켜야 하며, 선량한 시민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버스에서만 그러는 것인가? 만만한가? 버스 기사가?




■도로 위 택시, 자가용, 1톤 트럭들. '버스는 도로의 수비수다'


이런 승객들만 있으면 그래도 그나마 살 만 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도로 위의 '살벌한 쓰레기'들이다. 이 또한 자신만을 알며 자신의 차가 최우선이라는 인식 때문에 홀로 탄 자신의 자가용 승용차가 50명은 족히 태운 버스보다 우선이다. 앞서가야 직성이 풀린다. 양보는 없다.


무조건적으로 버스에 양보하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버스는 양보로 먹고 산다. 양보 없이 직진이 거의 힘들다고 보면 옳다. 버스전용차로가 없는 차도 하위 차로에 불법주차가 없다면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버스는 도로의 수비수다. 공격포인트를 올릴 재간이 없다. 매번 공격을 막을 뿐이다. 어쩌다 '오버트래핑'을 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 따라오는 것은 '사고 포인트'다. 그래서 항상 수비수, 골키퍼의 마음으로 운행한다.



누군가의 양보로 인해 버스 승객은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됨을 좀 알았으면 한다.


본인 경험과 주변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로 위에서 교통 질서를 가장 안 지키는 1순위는 단연 '택시'다. 몇 해 전 택시가 파업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파업에 찬성했는가. 제발 도로위에 나오지 말라고. 파업 좀 길게 하라고.


그들의 삶이 힘듦은 누차 강조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모두가 평등권 보장되는 도로 위에서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의 삶이 팍팍하니 좀 봐주십사 한다면 깜박이등이라고 켜야 한다. 고맙다는 의미의 비상등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택시는 깜박이등(방향 지시등)이 없다. 깜박이등을 켜고 차로 변경을 하는 택시를 만난다면 그 날은 행운의 날이다. 그런 택시를 만나는 날을 손에 꼽는다.


택배 트럭들의 하위 차로 점거는 '생활고'라 생각하여 이해한다. 그런데 휴대폰 만지작 대며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서행하며 움찔움찔대는 것은 도대체 뭔가. 정차해서 보던가.


왜 룸미러나 좌우 사이드미러로 뒤를 보지 않는 것인가. 자신 때문에 뒤에 얼마나 많은 차들이 서행하는 지 보란 말이다. 


깜박이등 잘켜고, 사이드미러로 뒤만 잘 살펴도 교통 사고 절반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에서는 깜박이등으로 대화해야 한다. 창 문 열고 일일이 소리치며 다닐 수 없다. 손가락이 부러졌어도 깜박이등은 필수다. 왜 켜지 않는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KBS 다큐멘터리 <키스 더 유니버스> 시리즈를 보면서 인간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이런 쓰레기들을 만날 때 다시금 '사찰의 생활'을 간접 경험해 본다.





■쓰레기를 보면서 다짐한다. '쓰레기가 되지 말자.'


#사례1. 얼마 전 택배 기사가 제대로 배송을 했음에도 수취하지 않았다고 신고한 후, 상품 금액을 환불받은 쓰레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택배 기사는 해당 아파트 단지 1,000여 가구를 모두 뒤지는 '헛수고'를 감내해야 했고, 결국 그 소비자를 고소했다.


#사례2. 천안 민원실. 여권 발급이 잘못됐다며 공무원을 폭행한 50대 쓰레기.


캐디에 골프채를 휘두른 정치인, 택시 기사를 폭행한 고위 관료자, 아동 학대하는 부모들, 동물학대하는 동물카페, 목줄하지 않은 도사견에 물린 시민과 반려견에 미안한 마음없다는 견주, 백화점 판매사원 무릎 꿇리며 싸대기 날리는 사모님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쓰레기들 천지인 세상.


나는 길거리의 수 많은 쓰레기들을 보면서 다짐한다. 쓰레기는 되지 말자. 버스 하기 전에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게 됨을 오히려 감사하자. 


세상에는 옳고 상식적이고 인성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없음을 
뒤늦게 나마 경험하게 해주어 감사하자.



내가 계속 기자 생활을 하고, 회사 생활을 했다면,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기껏해야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내 어깨를 부딪히고도 눈인사 없이 그냥 쌩까고 지나가는 사람 정도 만났겠지. 이렇게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한 종류의 인간은 아마 TV 뉴스 속에서만 봤을 듯 하다.


요즘에야 유튜브 등 동영상 서비스가 많아 '쓰레기 홍보'를 자동으로 여러 곳에서 해주지만 그 전에는 모르고 살았다.


요즘 읽고 있는 <오십에 읽는 논어>를 보면서 진짜 옛말 하나가 생각났다.


"공자도 서울에서 운전하면 욕한다."라는.


곧 크리스마스다.


그래도 70%의 인성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에. 그들 때문에 미소짓고, 감동받고, 사랑하게 됨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조용히 기도해 본다.



https://naver.me/FHYJiG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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