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作 <나는 버스를 탄다>
밑줄 쫙 그은 것들~!
▷진상은 어디에나 있다. 얼마를 내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받든, 자기가 돈을 냈으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무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상, 진짜 상대하기 싫은 사람. 진상은 사람을 가린다. 아무한테나 무턱대고 덤비는 진상은 많지 않다.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감히 고객에게 화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 힘없는 착한 사람을 만나면 진상은 무적이 된다.
▷전에 있던 사장님은 조금 그랬어. 고추장아찌, 깻잎, 이런 풀때기만 나오고 3년 동안 고기 구경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야. 생선 딱 한 번 나왔었어. 고등어 한 토막.
▷서울은 모순적이다. 사람은 모두 똑같다고, 평등하다고,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소리치는, 대학교수의 인문학 강의와, 연예인들의 수상 소감과, 시민들의 길거리 시위가 어딜 가나 가득한데도, 서울의 중심인 이곳 종로에선 다이아몬드를 뒤에 두고도 노숙자가 그냥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계속 지나다녔다. 누구를 동정하거나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버스 기사가 되었다.
▷사람은 늘 이동한다. 어딘가를 가야 하고 갔으면 돌아와야 한다. 나는 그들을 위한 일을 한다. 그들을 위해 내 직업이 존재한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는, 가야 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버스 기사는 철학적 질문을 안고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그것을 철학으로 여기는 사람이 없어 언제나 고요하게 존재한다.
▷차도 바뀌고 기사도 바뀌고 승객만 그대로인데 승객은 모른다. 버스가 늘 똑같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승객들은 버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사고를 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사고는 무조건 나게 되어 있다. 다만 무사히 비껴갈 수 있는 사고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 조심하고 한 번 더 확인하고 언제나 긴장해야 한다.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버스 기사라는 직업은 유독 왕년에 잘나갔던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번듯한 회사원이었고 누구는 번듯한 사장님이었다. 그렇게 번듯했던 사람들이 무참하게 실패한 후 갈 곳이 없이 이곳으로 온다. 그나마 운전을 할 줄 알아서 버스 기사가 된다. 다들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비참한 일이 아니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다들 이대로는 끝낼 수 없는 인생이라서, 뭐라도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 상황이라서 운전대를 잡는다. 감사한 마음으로 유니폼을 입고 넥타이를 맨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렇게 했고 이젠 내가 그렇게 됐다.
▷껌 씹지 마라. 싸가지 없다. 문 좀 빨리 열어라, 그거 때문에 지각했다. 사거리에서 초록불로 바뀌고 나서 바로 출발하지 마라, 3초 세고 출발해라. 목소리 좀 작게 해라. 목소리 좀 크게 해라. 기사가 승객들을 조용히 안 시켜서 버스가 너무 시끄럽다. 버스가 너무 조용해서 답답하니 뭐라도 좀 틀어라. 승객이 자리에 다 앉은 후에 출발해라. 선글라스 쓰지 마라.
-민원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