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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혁 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by 성찬

허혁 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밑줄 쫙 그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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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빨강, 노랑, 파랑으로 기사의 감정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든 감정노동자의 가슴에 명찰 대신 '감정표시등'을 달아주는 상상을 해본다.

전주 시내버스기사가 하루 열여덟 시간 운행 후 스트레스 수치를 잰다면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작은 포유류였을 때 막다른 길에서 아나콘다를 만난 스트레스 수치와 맞먹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기사 생활 몇 년 새 확 늙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 혀를 차던 모습이 눈에 아리다.


▷'자유'는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시내버스를 '자유'라고 선택했지만 어림없었다. 생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역경을 딛고 끝내는 시내버스를 통해 삶의 진정한 자유를 얻으리라!


▷어느 곳에서든 爭은 빠르고 仁은 더디다. 막살기는 쉽고 착하게 살기는 어렵다. "우회전은 어느 때고 할 수 있지만 좌회전은 신호 떨어져야 갈 수 있다."


▷버스는 한번 문 닫으면 돌이키기 어렵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팔짱 끼고 자신을 부리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생각이나 눈으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몸으로 그 기대를 실현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밥이나 먹자! 다섯 마디 외는 모두 미혹이듯, 버스에서는 간다, 안 간다, 딱 두 마디만 진실이다. 쓸데없는 소리가 쓸데 있는 소리보다 많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본다.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했을 것이다.


▷고매한 인격은 고독한 수행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얻어진다.


▷의식주와 맞먹는 이동권을 교통약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고루 누릴 수 있어야 하는 마지막 교통수단이 버스일 것이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해결해줘야 할 문제를 기사들이 '민원받이'도 아니고 언제까지 승객들의 온갖 불평불만을 다 듣고 다니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다.


▷버스를 몰다 보면 어느새 화에 사로잡혀 있고 한번 화에 사로잡히면 사람 자체가 싫어진다. 인사하는 것도 싫도 미소 짓는 것도 싫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를 들쑥날쑥한 인간의 품성에 기대어 해결해보려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버스운전 경험이 없는 시민모니터단이 무엇을 알겠는가! 승객에게 일일이 인사하거나 할머니 보따리를 받아주거나 신호를 잘 지키거나 등의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것들만 보일 텐데, 시내버스운전이 기사의 실존과 맞물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 같으면 하루 세 번 이상 혼자 사무실 청소 다 하고 수시로 민원인들 상대해가며 생명을 담보한 주 업무는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언제나 친절할 수 있겠는가!


▷정신분석가인 카를 융은 그러나 결코 인정하기 싫은 나의 본모습이 나를 참된 자기에게로 이끄는 안내자라고 했다.



서평.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살아서 그럴까. 생각의 힘과 생각의 깊이가 다른 버스기사다.

전국 10만 여명의 버스기사들이 공감할 내용이 수두룩하다. 반면 승객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없다. 그저 그런 얘기일 뿐.

좁혀지기 힘든 간극을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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