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 페이지 넘는 볼륨이라 세계대백과사전쯤으로 여겨도 문제 없다.
▷대체로 제국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민족에게서 많은 것을 흡수하여 혼성 문명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문화는 로마적인 만큼이나 그리스적이었다.
▷역사를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 깔끔하게 나누고 모든 제국은 나쁜 편에 속한다고 분류하고픈 유혹이 들기는 한다. 어쨌든 거의 모든 제국은 유혈사태 위에 세워졌고 압제와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한 것이 아닌가.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서구인들은 2천 년 동안 일신교의 세뇌를 받은 탓에 다신교를 무지하고 유치한 우상숭배로 보게 되었다. 이것은 부당한 고정관념이다. 다신교의 내부 논리를 이해하려면, 수많은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탱하는 중심 사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과 의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수호신과 황제의 신성에 경의를 표할 것을 기대했다. 이는 정치적 충성심의 선언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격렬하게 거부하고 화해를 위한 모든 시도를 거절하는 데까지 나아가자, 로마인들은 정치적 전복을 꾀하는 세력이라고 보아 박해로 대응했다. 이런 박해조차 주저주저하는 식이었다.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16~ 17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전쟁은 특히 악명 높다.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일신교는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에서 나타났다. 파라오 아케나텐은 이전까지 이집트 만신전에서 그저 그런 위치를 차지하던 아텐신이 사실은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 권력이라고 선언했다. 아케나텐은 아텐 숭배를 국교로 삼았고 다른 모든 신에 대한 숭배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그의 종교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일신론자들이 악의 문제에 쩔쩔매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신교’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 사상 일부는 사실 그 기원이나 정신이 이신교적이다.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이 강력한 악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 악마로 부르는 것이 그런 존재다.
▷만일 종교를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다. 상대성이론이 종교가 아닌 것은(적어도 아직까지는) 이것을 기초로 한 인간의 가치와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축구가 종교가 아닌 것은 그 규칙이 초인적인 칙령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불교, 공산주의는 모두 종교다. 모두가 초인적 신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초인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라. 불교의 자연법칙과 마르크시즘의 역사법칙은 초인적이다. 인간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몇몇 진지한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불멸은 아니다. 사고를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외상을 당하지 않는 한 생명이 무한히 연장될 수 있다) 전망한다.
▷1507년, 이런 주장을 확고하게 믿은 존경받는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최신판 세계지도를 출간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한 선단이 착륙했던 곳을 별개의 대륙으로 표시한 최초의 지도였다. 대륙을 그려 넣은 발트제뮐러는 이름을 부여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잘못 알고 있던 터라, 이 대륙에 아메리고를 기리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라고.
▷인류의 경제는 근현대 기간 내내 어찌해서든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왔는데, 이것은 오로지 과학자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발견이나 장치를 들고 나온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 내연기관, 유전자 복제 양 같은 것을. 은행과 정부는 돈을 찍어내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모든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시장 같은 것은 원래 없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은 미래에 대한 믿음인데, 이 자원은 도둑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 속임수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할 경찰, 법원, 교도소를 설립하고 지원함으로써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정치체제가 할 일이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지만, 불과 2세기 만에 우리는 소외된 개인이 되었다.
▷현대의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1789년(프랑스 혁명), 1848년(유럽의 연쇄적 민주화 혁명), 혹은 1917년(러시아 혁명)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요즘은 심지어 30세밖에 되지 않은 사람도 십대를 향해 “내가 어렸을 때는 세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사는 전에 없던 수준의 폭력과 공포의 시기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수준의 평화와 평온의 시기였다.
▷2000년에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31만 명, 폭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이와 별도로 52만 명이었다. 개별 희생자는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파괴된 세계이고, 파탄 난 가정이며, 친구와 친척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상처다.
하지만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이 83만 명은 2000년의 총 사망자 5,600만 명에서 1.5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그해에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26만 명(총 사망자의 2.25퍼센트),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81만 5천 명(1.45퍼센트)이었다.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있었던 적은 예전에는 없었다. 1871년에서 1914년 사이 유럽에서 전쟁은 받아들일 수 있는 필연이었고, 전쟁에 대한 예상이 군대와 정치인, 시민 모두의 사고방식을 지배했다.
▷그들에 따르면, 진화의 결과 우리의 마음과 신체는 수렵채집인의 삶에 맞도록 주조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에 농업으로, 그다음에 산업으로 이행한 탓에,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타고난 성향과 본능을 모두 표현할 수 없으므로 가장 깊은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이다. 도시 중산층의 안락한 삶을 이루는 어떤 것도 매머드 사냥에 성공한 수렵채집인 무리가 경험한 흥분의 도가니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근접할 수 없다.
▷결혼한 사람들이 독신인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화학적으로 우울한 경향이 있는 여성은 남편과 함께 지낸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카너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갖는 시각에서 역설처럼 보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을 예로 들면, 즐거운 순간과 지겨운 순간을 평가하게 한 결과 양육은 상대적으로 불쾌한 일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이후 몇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