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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Nov 16. 2021

[해피버스데이] 제1장 10.기사에게 고(告)함 2

버스 운전 안내서

10.버스 기사에게 고함 - 버스 운전 안내서 2

버스 전폭 = 도로의 좌측 차선 왼쪽 어깨에 맞추면 딱!



⑫ 버스의 폭은 내 왼쪽 어깨에 맞춰라.

버스의 전폭은 승용차나 소형 화물차보다 훨씬 넓습니다. 버스는 전폭이 2,490mm입니다. 중형 버스든, 대형 버스든, 저상버스든 모두 같죠.(현대, 대우 공통) 승용차, SUV 등이 보통 1,800~1,900mm 사이인 점을 고려하면 차이가 큽니다. 소형차만 운전하다가 대형 면허를 취득할 때 가장 고생하는 부분이 버스의 전폭에 감이 없다는 점입니다. 전장은 10m가 넘고 사이드 미러로도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아 베테랑 기사들도 후진할 때 ‘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운행하다 보면 전장은 피부에 와닿지 않고 전폭이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자가 고안해 낸 방법은 버스 운전석에서 봤을 때 ‘도로의 왼쪽 차선을 내 어깨에 맞추는 것’입니다. 이를 맞추면 아무리 좁은 중앙 차로에서나 요금소 등에서도 편안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진입할 때는 앞 유리의 정중앙(2개의 와이퍼 사이)을 우측 실선에 맞추면 대략 연석 간 50cm 거리를 맞춰 진입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경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입니다.


후진할 때는 달리 왕도가 없습니다. 후방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버스는 더 부담됩니다. 우측 사이드 미러로 뒷바퀴를 보기도 하고(우측이 더 잘 보임), 야간에는 브레이크 등의 밝기 정도에 따라 뒷 공간을 가늠하기도 하죠.(브레이크 등의 움직임에 따라 전장을 가늠할 수 있음) 자동 주차, 자율 주행 등 첨단 차량이 등장으로 시끌벅적한 21세기에 아직도 후방 카메라 없는 버스라니! 답답할 뿐입니다.


⑬ 눈길 운전엔 항상 리타더를 사용하라.

수십 년의 운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운전자들도 눈길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륜 구동 외제차가 강남 한복판 언덕을 오르지 못해 견인차를 불렀다는 얘기는 이제 흔할 정도입니다. 빗길 운전은 그다지 조언할 것이 없지만, 눈길은 다릅니다. 전륜 구동의 승용차가 아닌 후륜 구동 버스의 눈길 운전은 매우 위험합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 TV 뉴스에서 봤던 사고 영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함박눈이 내린 후 모든 길이 빙판으로 변한 아침에 사고 피해자 학생은 등교를 위해 버스 정류장 기둥 앞에 서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정류장 옆에 따뜻한 온실을 만들어놓지도 않았고 정류대도 없던 시절이었죠.


버스가 진입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정류장 바로 앞이 빙판이었던 것을 뒤늦게 간파한 버스 기사가 브레이크를 깊숙이 밟는 바람에 버스가 정류장 쪽으로 쭉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 폴대 앞에 서 있던 학생은 그대로 그 버스에 받혔고 기둥과 버스 사이에 끼어 사망하게 됩니다.


그것을 본 후 지금도 필자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무 앞이나 기둥 앞에 서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빙판은 겨울철 단골손님입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열선을 설치하는 지자체도 있다지만 극히 일부입니다. 염화칼슘이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염화칼슘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지자체 제설 작업도 중지합니다. 서울시 강남(강남구, 서초구 등) 지역은 폭설 시에도 염화칼슘 제설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관할 지자체에 자동차 부식 관련 민원이 폭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폭설이 내리면 이 지역은 그야말로 모든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합니다. 왕복 3시간 노선이 10시간이 된 적도 있습니다. 빙판은 그대로 버스 기사의 몫이 됩니다.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ABS나 엔진, 배기, 리타더 등 각종 브레이크 시스템을 동원해도 빙판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그나마 풋브레이크보다는 리타더 브레이크가 훨씬 이롭습니다. 버스 자체의 움직임을 둔하기 만들기에 풋브레이크는 최종 정지 시 살짝 눌러주면 됩니다. 빙판이어도 꽤 유익합니다.


눈길에는 서행밖에 답이 없습니다. 아주 멀리서부터 서행하는 것이죠. 도로 앞에 가까이 나와 있는 승객에게는 경적과 상향등으로 경고해야 합니다. 멀리 물러서라고.


⑭ 내 노선을 지나는 타 노선을 대략 파악하라.

근무 기간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만,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노선에서 타 회사 버스는 언제나 만나는 친구입니다. 그러한 타 노선을 알고 있으면 여러모로 편합니다.

내가 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뒤차의 우회전을 배려할 수 있고, 내가 급한 상황에선 타 노선버스가 앞에서 길을 내어줄 수도 있습니다. 차량 흐름과 절대 무관치 않은 센스입니다. 이런 센스를 장착함으로써 오고 가는 길에 손 인사로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도 있겠죠. 


뒤에서 계속 붙으며 신호를 보내는 뒤차에 ‘난 너의 노선 몰라. 뒤에 붙지 마.’ 이렇게 속으로만 생각하면 마음만 언짢습니다. 물론, 진짜 모르면 할 수 없지만, 그럴 때도 바쁘지 않다면 길을 내어주는 게 좋습니다. 뒤차는 앞차가 인턴인지 30년 베테랑 기사인지 알 길 없으니 애가 탈 뿐이니까요. 운행하다 보면 내가 바쁠 때도, 여유가 있을 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버스 운행의 기본입니다. 내가 바쁘지 않을 때는 뒤차의 노선 번호를 보고 이 지점에서 우회전하는지 좌회전하는지를 생각하여 길을 내어주는 게 서로에게 좋습니다. 갈 길 바쁜 뒤차가 뒤에서 졸졸 따라오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사고로 연결될 수 있기에 모두의 안전을 위한 배려는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⑮ 탕수가 깎이는 때가 있으니 눈치껏 서행하라.

필자는 몇 번 탕수 깎임(1회전 삭제. 주로 ‘까임’, ‘까짐’으로 호칭됨)을 겪어봤는데, 교통 체증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버스는 막차 출발 시각이 정해져 있습니다. 막차 순번은 막차 출발 시각과 자신의 휴식 시간을 고려하여 차고지에 들어와야 하는데, 차가 막히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버스 기사의 휴식 시간은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운용될 소지가 아닙니다. 2시간 이내 운행 시 15분, 4시간 이상 운행은 30분을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이런 관계로 길이 막혀 막차 혹은 막전차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때, 그 앞 순번이 막차의 바통을 이어받게 됩니다. 막차는 1탕을 감하여 바로 퇴근하게 되는 것이죠. 이때, 교통 체증이 심할 때 시간을 보며 탕수를 깎기 위해 줄줄이 서행하는 버스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눈치 없이 혼자 달리면 욕먹습니다. 간격을 보며 다들 서행하는 분위기라면 발맞춰 운행하는 것이 회사 생활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듯이 두루뭉술하게 사는 게 세상의 이치니까요.


탕수가 깎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일당에 지장을 전혀 주지 않는 관계로 ‘공짜 시간’이 생긴 느낌이거든요. 막차 순번부터 5대 이상 탕수가 깎이게 되면 삼삼오오 모여 늦은 저녁이라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회식은 엄두도 못 낼 버스 기사 생활의 특성상, 이런 기회로 한 잔 기울이는 것이죠. 물론 교통 체증이 아닐 때는 불가능하며, 교통 체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탕수 깎임을 위한 서행을 회사에서는 절대 금지하지만, 여러 대가 간격 맞춰 서행하면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서로 연락하지 않아도 단말기의 시간 간격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것이죠.


⑯ 경청하라.

버스 기사들은 홀로 근무합니다. 버스 운행 시간 내내 누구와 얘기할 수 없으니 침묵은 기사들의 생활신조처럼 여겨지고 있죠. 그러니 말하기 좋아하는 기사들은 틈만 나면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연신 떠듭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 자신의 이야기만 합니다. 2명이 대화를 하는데 혼자 떠드는 것처럼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일방통행만 합니다. 서로 계속 질문만 하는 웃긴 상황이 많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듣고 있겠으나 시간이 촉박하고 자신의 할 얘기가 너무 많아 그런 것이겠죠. 


자신의 사생활부터 운행 에피소드까지 쭉 털어놓습니다. 목소리도 대체로 큰 편이라 잠시 누워 쉬려면 꽤 곤욕스럽습니다. 이런 때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호의적이고, 친밀도가 높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로 입사한 신입 기사들에게 꽤 유용한 팁이라 할 만하죠. 


온종일 말을 못 해 안달 난 기사들은 때때로 블루투스 핸즈프리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곤 하는데, 이것이 ‘민원’의 원인일 수 있어 많이 자제합니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인 ‘경청’은 특히 버스 생활에 있어 꽤 중요한 개념이라 할 만합니다. 이야기만 잘 들어줘도 인간관계의 절반은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두 개인 이유겠죠.


⑰ 운행 시 후진은 절대 하지 말라.

차고지가 협소한 경우 주차를 위해 후진할 때가 있긴 하지만, 버스는 기본적으로 후진하지 않습니다. 육중한 몸체를 후진할 때 후방 카메라 없는 버스는 더욱 사고의 위험이 커 회사에서도 금지합니다. 


운행 중엔 더욱 하면 안 됩니다. 실제 어떤 기사는 버스 전용 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 앞 차선을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살짝 후진했는데 뒤에 승용차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정류장 유지 보수 업체 차량이었는데, 버스 전용 차로 주행 승인을 받아 여지없이 가해자가 됐다는 사고 후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버스 뒤에 승용차나 소형 화물차가 서 있으면 안 보입니다. 버스 전폭은 2,490mm입니다. 보통 승용차가 1,800mm 안팎이므로 70cm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후방 카메라가 있었다면 사고를 방지했겠지만, 미설치 버스였나 봅니다.


도로에서 타 차량이 버스를 보고 ‘후진하라’라는 신호를 보내도 꿈쩍하면 안 됩니다. 사고 나면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⑱ 정차 시 항상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라(Parking Brake).

대형 버스를 처음 배울 때 항상 들었던 말이 정차 시 일명 ‘사이드 브레이크(영문명: 파킹 브레이크.Parking Brake)’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일반 승용차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으면 감점 10점일 정도니까요. 버스의 중량은 10t이 넘기 때문에 정차 시 풋브레이크에서 살짝 발만 떼도 슬금슬금 미끄러집니다. 버스가 소리 없이 흘러내려 추돌 사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특히, 시내버스는 승객의 승하차 시 약간만 이동해 흔들려도 인사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인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사를 가장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사이드 브레이크입니다. CCTV로 사고 전후 상황을 확인할 때, 사이드 브레이크 여부에 따라 가해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이죠.


버스 정류장은 물론 신호등에 걸렸을 때도 습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웠다고 해서 풋브레이크에 발을 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에어가 빠지면 사이드 브레이크가 스스로 풀리기도 하니까요.


필자가 과거 종점(회차 지점)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후 밖으로 나와 휴식을 취하는데, 버스가 스스로 뒤로 밀려 매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뒷문을 열어놔서 다행히 빨리 뛰어올라 브레이크를 밟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정말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버스 뒤에 차량이 없어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대형 사고가 날 뻔했던 기억입니다. 


버스의 사이드 브레이크는 일반 승용차와 달리 압축 공기의 압력을 이용한 에어 브레이크 시스템이라 시동을 끄면 에어가 빠지게 됩니다. 이때 사이드 브레이크 에어도 빠져 스스로 잠김이 해제되는 것이죠. 정비사들도 언덕길 정차 시 수시로 확인하고 앞바퀴를 인도 쪽으로 돌려놓거나 받침목은 필수라고 조언합니다.


이렇듯 버스 기사에게 사이드 브레이크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유의 상징’이라 할 만하죠. 몸이 자유로워지고 사고에서 벗어나며 스트레스 지수도 낮춰줄 테니까요. 



TIP. 리타더 브레이크(Retarder)

대형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하는 대형 차량의 변속기에서 유압 기동장치를 사용해 제동력을 제공하는 브레이크다.과거에는 약 10t 이상 중량을 가진 상용차들이 주로 옵션으로 장착했는데, 최근 대형 상용차들의 연쇄 추돌 사고로 법률이 개정되어 2017년부터 10t 이상 영업용 대형 버스나 트럭에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됐다.

2017년 이후 출시된 시내버스에는 모두 장착돼 있다고 보면 된다. 경사진 내리막길에서 매우 유용하다. 테너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현대버스 리타더 브레이크 레버.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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