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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Nov 16. 2021

[해피버스데이] 제1장 10.기사에게 고(告)함 3

버스 운전 안내서

10.버스 기사에게 고함 - 버스 운전 안내서 3

버스 전폭 = 도로의 좌측 차선 왼쪽 어깨에 맞추면 딱!




⑲ RPM을 보고 운전하라.(기어 4단 활용)

시내버스 기사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광역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시내버스는 고속으로 달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버스 자체 기어비도 매우 낮게 조정돼 있어 RPM을 올려봤자 2,000rpm을 넘지 않고, 시속 50km에 제한 속도가 걸려 있죠.(2021년 4월 17일 시행)


버스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선임들이 한결같이 했던 말은 “RPM을 보고 운전하라”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주로 2단 출발을 하는데, 1,000~1,200rpm 사이에서 변속하여 5단까지 변속합니다. 바퀴가 굴렀다 싶으면 3단을 넣고, 800~1,200rpm 정도에서 4단을 넣고 한참을 갑니다.


4단은 버스 운행 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수입니다. 시속 20km에서 40km(많게는 50km)까지 커버하는 기어 단수입니다. 4단만 놓고도 ‘오토매틱’ 버스처럼 운행할 수도 있는 셈이죠. 4단을 잘 활용하면 운전이 훨씬 편해집니다. 어쨌든 4단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속도계를 봅니다. 5단을 넣고 제한 속도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⑳ 신호 체계부터 외워라.

실습을 마치고 본선에 배차되어 실제 운행에 나선 기사들에게 또 하나 주문하는 것은 “신호 체계부터 외워라”라는 것입니다. 처음 배차를 받으면 저 많은 신호등을 어떻게 다 외우나 싶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색깔이 켜지는지, 좌회전이 먼저인지, 동시 신호인지, 횡단보도는 몇 초 만에 빨간색으로 바뀌는지 등 단기간에 파악하는 건 사실 쉽지 않습니다.


빠르면 1개월, 최대 3개월 정도면 파악되지만, 3개월 내 사고 발생이 많이 되는 것도 이러한 신호 체계를 몰라 신호 위반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어떤 이는 실습 때 동영상 촬영을 하여 외우기도 하지만 그리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차로가 많은 도로와 주요 정류장 정도만 먼저 외우길 추천합니다. 나머지 이면 도로나 좁은 도로의 신호등은 차츰 알아가는 게 좋습니다. 같은 장소를 하루에 몇 차례씩 지나가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신호등의 변경 패턴을 파악하면 운전을 더욱 매끄럽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줍니다. 조급하지 않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만, 예측 운전이 가능하기에 운전 외에 승객의 동태를 살피는 등 안전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운행 시간과 직결된 휴식 시간을 더욱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신호 위반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혜택이겠죠?





㉑ 교행 중 손 인사는 오른손으로 하라.

같은 회사, 같은 노선의 버스와 교행할 때 서로 손 인사를 하는 것을 자주 봤을 것입니다. 그 손 인사에 담긴 의미는 많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했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십시오.”, “별 탈 없이 잘 가고 있군요.”, “피곤해 보이지만 끝까지 힘내서 안전 운전하세요.” 등등.


이러한 손 인사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동병상련의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운행 중 자신의 회사 버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죠. 특히, 야간에 가로등도 없는 도로에서 저 멀리 나의 회사 버스 번호가 희미하게 보일 때면 더욱 반갑죠.


수동 기어로 출발하려는 찰나, 교행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손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요. 필자 개인적 의견으로는 성의 없어 보입니다. 마지못해 눈길을 주는 것 같습니다. 손목만 까딱이는 예도 있거든요. 애국가 제창할 때나, 거수경례도 모두 오른손을 가슴에 대듯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손이 바쁠 땐 머리를 살짝 숙여 인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차로가 많은 넓은 도로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근접하기 때문에 대화할 시간도 없는 버스 기사들에게 그 찰나의 순간이 ‘생존 신고’하는 것

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서로의 고행을 알기에 “오늘도 수고했어”의 의미를 담아 멋지게 손 인사를 건네는 동료 기사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㉒ 자신만의 취미(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라.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멍한 느낌이 듭니다. 운행 시작 후 6시간 정도가 넘어가면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인지 장기 근속자들은 기억력 감퇴를 자주 호소하는데요. 실제 어제 한 일도 기억 안 날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버스 기사는 앞차 뒤차의 간격을 더하기 빼기 등 연산을 해야 하므로 끊임없이 뇌를 움직이기는 합니다. 보통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머릿속에 길을 그려가며 운전한 사람의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 결과처럼 버스 기사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차량으로 같은 노선을 운행하다 보니 매너리즘에도 빠지기도 하고,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혀 맥없이 움직일 때도 많습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뇌 기능이 저하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뇌 활동이 활발한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동료와 해도 좋고 혼자 해도 좋습니다. 뇌를 움직일 만한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필자도 오랜 기간 뇌 활동이 활발한 직종에 근무했으나 버스 기사를 시작하며, 말수도 적어지고 뇌 활동도 느려져서 민첩하고 활동적이었던 성향이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뇌를 다시 깨우려고 했던 것도 있습니다. 아마 이런 점이 버스 기사들의 또 다른 고충이 아닐까 합니다.


㉓ 배려심 많은 선배가 되어라.

인간 사는 세상 어디나 다 똑같죠. 어떤 곳이든 비상식이 존재하며, 그들을 포섭한 세력이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남들이야 어찌 됐든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이기주의는 승객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듯합니다.


자신의 운전 실력을 뽐내며 앞차 뒤차와의 간격을 무시하며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이 꽤 많습니다. 사실 간격 조절의 핵심이 되는 신호등과 승객의 ‘운’은 그날그날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간격을 붙여 운행하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회사의 안전부에서도 눈여겨보는 주의 인물입니다.


앞차와 간격은 신호등 체계에 성실히 응하면, 자연스레 맞춰지는 행군과도 같습니다. 갑자기 천재지변이나 승객의 변화, 신호 체계의 이상 징후가 아니면 대체로 처음 시작한 배차 간격을 유지하게 되죠.


하지만 태생적으로 급한 성격의 기사들이 있습니다. 앞차와 떨어져 가는 것에 불안한 증세를 보이죠. 이들은 뒤차를 보지 않습니다. 뒤차의 간격을 맞추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뒤차가 신입 기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려심은 아예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누가 누구를 돌봐?’라는 심정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삶은 전쟁터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군 시절 훈련에서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이 없는 선임을 잘 따랐던 후임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러한 배려심은 배차 간격에서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휴무일 요청 등 다양한 형태로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제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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