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용돈이나 한번 벌어볼까?
몇 해 전 경기도 모처의 찜질방에서 동료 기사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코로나 발생 전 휴일에 찜질방에 드러누워 있다가 우연히 들었다고 합니다. 중년 여성, 할머니들이 찜질방에 삼삼오오 모여 버스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한 여성의 말이 가관이었답니다.
“내가 아는 영희(가명)네 말이야. 버스에서 넘어졌는데 합의금으로 30만 원 받았대. 별로 아프지도 않고 걸을 수 있었는데 아프다고 했더니 기사가 합의금을 먼저 줬다고 그러네.”
“어머 어머, 진짜? 그럼 나도 해봐야겠네.”
“그러게. 용돈 필요할 때 하면 좋겠네.”
“많이 안 다쳤대? 안 다치고 돈 받는 방법은 없나?”
이 말이 사실일까요? 참 어이없지만 이런 승객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교육하는 사고 처리 수칙(안내서)은 저 이야기 속의 사고 처리 과정과 전혀 다릅니다. 사고에 대한 안내서는 회사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략 비슷합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기사)가 피해자(승객)에게 무조건 합의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가해와 피해를 판단하기에 앞서 도의적으로 기사는 승객에게 ‘괜찮냐’는 인사를 합니다. ‘죄송하다’라는 표현은 지양합니다. 사고 책임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시내버스에서 발생한 전도 사고(차내 넘어짐)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사는 승객에게 부상 경중에 따라 행동합니다. 경상이면 ‘괜찮냐’는 인사를 합니다. (‘중상’이면 구급차 호출)
2. 부상 정도에 따라 병원에 방문하여 자비 치료 후 ‘영수증’을 꼭 지참하라고 통보합니다.
3. 기사는 승객에게 CCTV 확인 후 가해 여부를 판단하여 치료비 지급을 결정하겠다고 통보합니다.
4. 추후 가해 여부 및 치료 정도에 따라 보험금 및 합의금, 기사 처벌을 결정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고 처리 과정은 매우 간단합니다. 다만,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기사들은 매우 당황하여 자신이 매우 잘못한 것으로 인정하여 회사에 알리지 않고 합의금을 지급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처리 방법입니다.
또한, 몇몇 회사 안전부(사고 담당)에서는 이를 빌미로 보험 사기꾼에게 오히려 돈을 요구하는데 이런 악습은 사라져야 할 뿐 아니라, 범죄 행위에 해당하여 조심해야 합니다.
신입 기사들은 자신의 경력에 사고 이력이 남는 것이 두려워 개인 합의로 끝내는 예도 있긴 합니다. 운전 경력 이력은 회사 이직 시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사고 경력’이 모두 기록되어 인사고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인 합의를 하는 예도 있습니다.
이를 악용하여 일부 승객들은 기사에게 ‘경찰서에 가지 않아도 된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니 합의금을 내놔라’라는 말을 내세워 기사를 협박(?)하기도 하죠.
또한, 경찰도 전후 사정 확인 전에 버스 전도 사고는 기사 잘못으로 잠정 결론을 내버려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보험 사기꾼들이 더욱 활개를 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경찰을 자신의 편으로 잘못 인식하고 기사를 협박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회사에서 보험료율 인상을 염려하여 개인 합의를 유도하는 때도 있습니다. 제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닙니다만, 자신의 이력에 경중을 따져 판단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 버스 업체들은 버스 내에 경고 문구를 부착해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승객이 이동 중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제목처럼 전도 사고의 비중은 중년 여성 혹은 할머니들이 90% 이상입니다. 동료 기사들의 경험도 모두 비슷합니다. 얼마나 그들의 사고율이 높으면 버스 기사용 사고 예방 안내서에 ‘중년 여성과 할머니를 특히 조심하라’라는 문구가 등장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들의 사고율이 높을까요?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여성 승객의 비율이 높습니다.
전문 리서치 회사의 전문적 통계 수치는 존재하지 않지만, 필자가 하루 날을 잡아 직접 조사해 봤습니다. 경기도 시내버스는 1일 승객 수 675명 중 여성 승객이 483명(72%), 서울시 시내버스는 1일 승객 수 774명 중 여성 승객이 526명(68%)으로 집계됐습니다.
비록 필자가 각각 하루 동안 집계한 결과이긴 하지만 여성 승객의 비율이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동료 기사들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남성 비율이 다소 높긴 하지만, 새벽 첫차를 비롯해 낮 시간대 승객 대부분은 여성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남성의 자가 승용차 보유 비율이 더 높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병원, 문화 센터 등 낮 시간대 여성들의 버스 이용이 훨씬 많다는 점에서 사고 비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물리적으로 신체가 약합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뼈의 강도가 약해져 저상버스가 아닌 경우 계단 오르기에도 벅찹니다. 벌써 이때 에너지의 절반을 소모합니다. 카드를 빼고 태그하고 자리에 앉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버스는 정류장에 오래 정차할 수 없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버스의 정시성과 기사의 휴식 시간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정류장 장시간 정차를 법으로 금지해 놓고 있습니다.(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6조 3항)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급출발하게 되면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그들은 넘어지게 됩니다. 서행 출발이면 괜찮을 수도 있는데, 급출발이 문제입니다. 넘어진 승객이 골절상이라도 입게 되면 최소 치료비가 수백만 원 이상입니다. 이는 기사의 밥줄이 달린 문제라 그들과 빨리 합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셋째, 교통질서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행동들이 많습니다.
필자의 경험상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서는 승객의 90%는 노인들입니다. 대체로 50대 이상이죠. 10~20대 젊은 청년들은 오히려 일어서지 않습니다. 휴대폰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가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 그때 일어섭니다. 사실 정석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때때로 기사가 배차 시간에 쫓길 땐 그런 청년들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버스 내 올바른 행동입니다. 정류장에 멈춰 문이 열릴 때 일어서는 것.
필자가 수백 번을 이야기하고 경고해도 어르신들은 듣지 않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지팡이를 짚은 분, 다리에 깁스를 한 분, 절뚝거리는 분 등도 모두 일어섭니다. 심지어 파킨슨병으로 의심될 만한 마비 환자도 일어섭니다. “하차하여 뛰어갈 분만 일어서라”라는 필자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사고율이 높아 버스 업체에서는 경고 문구를 붙이기도 합니다만, 소 귀에 경 읽기입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70~80년대 반듯한 정류장 하나 없던 시절에 버스 타기는 그야말로 전쟁이었죠. 미리 일어나지 않으면 버스 문을 닫고 떠나버리기 일쑤였으니, 지금에서도 그런 습관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위에 언급한 어르신들은 대개 승차하자마자 하차 태그를 합니다. 이는 명백히 부정 승차(승차 요금의 30배 배상)에 해당하지만, 보통 기사들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또 휴식 시간이 날아가니까요. 하지만 내릴 때 이미 하차 태그한 것을 잊고 다시 태그를 하거나, 뒷문으로 내린 후 다시 팔을 뻗어 태그하는 행위, 그것이 바로 사고의 전초전입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무질서한 행동들로 사고를 유발하곤 합니다. 앞에 가는 버스에 환승을 해야 하기에 빨리 가달라든가, 하차 벨을 누르지 않고 갑자기 세워달라든가, 보행 신호등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버스 중앙 차로에 버스가 도착한 것을 보고 무단 횡단을 하는 등 무질서하고 몰상식한 승객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 대다수는 중년 여성 혹은 할머니들입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여성 가족부에서 이의를 제기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서울시 혹은 경기도 시내버스 아무 노선이나 하루 12시간 버스를 타고 기사와 동행해 보면 알게 됩니다. 어떤 승객이 뭔가 몰상식한 행동을 한다 싶어 쳐다보면 대개 ‘중장년 여성’입니다.
실제 버스 중앙 차로에 무단 횡단하다가 즉사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납니다. 교통질서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합니다.
넷째, 기사들의 부주의한 운행입니다.
어르신들만 피해를 보진 않습니다. 젊은 청년들도 급출발과 급제동에는 속수무책입니다. 자리가 많음에도 자신의 근력을 믿고 좌석에 앉지 않으면 최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실제 몇 해 전 기사의 급제동으로 인해 버스 좌석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쳐 사망한 젊은 여성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사고 처리가 매우 힘듭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기사는 기사대로 큰 해를 입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안전을 지킨다는 간단한 명제를 쉽게 잊고 행동하기에 그런 결과들이 쏟아집니다.
버스 외부 사고도 잦습니다. 정류장 연석과 간격을 50cm로 맞추지 않아(공간이 넓어)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뒷문으로 지나가면 사고 발생 확률이 확 높아집니다. 승객이 하차하다가 부딪히는 것이죠. 기사가 조금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급출발, 급제동에 항상 주의해야 하고, 거울 보기를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사고는 발생합니다.
할머니들의 역습이 시작됐습니다.
아니, 할머니들의 사고가 점점 잦아질 것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고령화 속도가 가장 높은 대한민국. 나날이 노인 인구가 늘어 2030년경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0%가 노인이라고 합니다. 노인의 기준 나이를 몇 세로 특정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물리적으로 신체가 약해지는 나이는 모두 노인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버스 정류장에는 많은 승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찜질방에서 만난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보험 사기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기사도 억울하고 승객도 억울한 상황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깔끔한 사고 처리 과정 안내서가 존재해야 합니다. 연일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버스 사고의 대다수가 전도 사고인 점을 비춰볼 때, 뭔가 잘못을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태동기인 1960년대 도로와 지금의 도로, 그때의 교통 문화는 지금과 비교하면 현격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계도와 홍보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생각은 멈춰있는 것 같습니다. 환경은 변했는데, 교통 의식 수준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70~80년대 만원 버스를 기억하고 막무가내식 이기심으로 승하차하는 승객들의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합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는 대한민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낮추고 원활하고 편안한 대중교통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누구나 인정하고 인식된 그런 안내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홍보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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