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각, 잡탕찌개같은 버스 안의 사람들 면면을 보면서 드는 생각 하나. 누군가 좋아하는 고기도 들어있고, 싫어하는 채소들도 들어있는 그런 찌개같은 곳. 김이 솔솔 나고 맛도 좋지만, 누구나 다 맛있어 하는 재료가 아닌, 그래서 '잡'이란 단어를 넣어야 알맞은 찌개.
버스 기사 연봉이 '파업' 이슈와 맞물려 언론 여기저기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봉 6000만원이니 7000만원이니 하는 이야기에 몇몇의 사람들은 솔깃할 지도 모른다. 은행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가면 '고소득자' 운운하면서 은행원의 눈빛이 달라짐을 느낀 건 몇 해 전 일이다.(본인은 이미 연봉 7000만원 가능하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엄청 조용해진 휴대폰 메세지의 80%는 광고 문자들이다. 이 중 대출과 관련된 문자도 꽤 된다. 그러면서 상위 15% 안에 드는 고소득자라며 엉덩이 토닥토닥해주는 몸짓으로 유혹한다. 싸게 돈 빌려준다고.
버스 기사가 고소득자인가보다. 연봉 6000만원을 넘었으니 그럴 지도 모르겠다. 20여년 전 기자 생활 시작할 때 중소 언론사의 수습 기자 연봉과 지금 그들의 연봉은 비슷하다. 메이저 신문사, 방송사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비교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어찌 이럴까.
연봉에 혹했다면 버스 기사 하면 된다. 그런데 버스 기사의 연봉에는 이것을 거의 포기해야만 한다는 점, 명심해야 되겠다.
버스 기사의 연봉은 '관계 포기의 값'이다. 다만 매일 시달렸던 '전화 지옥'에서 꺼내줌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숱한 관계 지옥에서, 전화 지옥에서, 문자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얻는 자유로움과 공허함은 함께 올 것이고, 편안함과 고독함도 함께 올 것이다. 가정적인 아버지상과 매말라가는 친구 관계도 동시에 찾아들 것이다. 감수해야 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버스 기사의 '시간'때문에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겪어봐야 안다. 관계가 자동으로 소원해질 확률이 높다.
그래도 버스 기사 직업이란 <이혼숙려캠프>에 나오는 ***들과 비교하면 '성자'에 가깝다. 깨끗한 직업이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운행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묵언수행'(도를 닦는다는 의미)이 대부분이기에 거의 '성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닌 이들도 있지만.
버스기사는 정말 깨끗한 직업이라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밟지 않고 누군가를 시기 질투하지 않는 정말 평등한 업무를 행하는 직업이다. 30년 근무한 고참이나 1년 근무한 신참이나 급여가 거의 비슷할 수도 있다.
독고다이로 일해서 모래알처럼 잘 뭉쳐지진 않아도 경조사에 자신의 마음을 힘껏 표현하는 사람들. 30년 이상 버스 기사에 종사한 형님들은 일반 회사의 강력한 스트레스 어택을 경험하지 않아 버스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불쌍하면서도 대견한 사람들이다.
...
지난 5월 28일 서울시내버스 파업이 잠정 유보됐다. 부산버스조합은 파업을 강행해 타결을 맛봤다. 호불호가 갈리는 결과물을 놓고 본인은 이를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보다 먼저 지난해 4월 파업에 동참해 고개 숙이며 글을 썼던 본인이었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고개부터 숙이련다.
죄송합니다. 오는 6월 11일 경(잠정) 파업할 수 있습니다.
서울, 인천, 경기도(경기도는 이미 6월 11일 파업하기로 공표)가 동시다발로 파업해야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들의 '관계 포기 값' 인상을 놓고 대대적인 싸움을 할 테지만.
이렇게 연봉이 높은데 왜 버스 기사 지원자는 항상 부족할까. '호모 사피엔스'에 기반한 인간의 본능인 '관계'를 포기할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닐까. '관계의 값어치'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부디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과 이동 권리에 타격이 없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