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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Feb 10. 2022

내가 버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부제:사무직보다 좋은 점

부제 : 사무직보다 좋은 점

내가 버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부제:사무직보다 좋은 점)



나는 태생적으로 역마살이 낀 것 같다.

사회 생활을 하며 가만히 앉아 일하는 것이 익숙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여행(특히 캠핑)을 취미로 삼는 것을 보면 그렇다.


오랜 직장 생활을 거치고 나이들어 사업 실패 하니 대한민국에서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은 가족의 환한 웃음. 결혼을 늦게해 아이가 아직 어린 것도 동기부여가 됐다.


영사기에 비춰진 모습처럼 매일 밤 그렇게 머릿 속을 파고든 그 영상은 '못할 것이 뭐 있나' 싶은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여름 공사판에서 눈물 한 모금 꾸역 삼키며 인생의 자신감을 심어준 것도 그것이었다.



버스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두 가지다.

가족, 그리고 역마살.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야간 드라이브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허황된(?) 기대감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결혼 전 '새탈(새벽탈출)'이라는 명목으로 팔당과 양평, 한강 등 야간 드라이브를 꽤 즐겼다. 음악을 친구삼아 교통 체증없는 도로를 달리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버스를 하며 가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중장년층 취업난'이라는 뉴스를 보면 이젠 꽤 지리멸렬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나름 배웠고, 나름 이력이 화려했던 바, 나를 채용해주지 않는 기업에 잠깐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것처럼 만족스럽다. (그렇다고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는 하지 않음. 젊을 때 시작하기엔 후회가 남을 수 있음.)


버스기사라는 직업은 고달픈 직업이 맞다.
'진상승객'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은 백화점 판매원이 '진상고객' 앞에서 무릎꿇고 사과했지만 따귀 맞았던 그 장면이 생각날 정도다.



그러나, 어느 직업이 고달프지 않더란 말이냐.

실제 겪어본 바, 정신 노동에 지친 화이트컬러들의 고단함은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오너에 좌지우지되는 회사 비전과 생활, 사내 분위기 등 변수가 너무 많아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인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버스 기사 생활은 참으로 깔끔하다.

<해피버스데이>에도 언급했지만, 버스 기사 생활은 '무사고'만 잘 유지한다면,

세상 편한 직업이다. 그렇다고 무사고를 염려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기계적으로 운전하면 절대로 사고 날 일 없다.

'기계적'이란 말에 '자율 주행'과 '개 돼지'를 연상할 수도 있겠으나,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자율 주행 버스는 30년 내로 레벨5 버스가 나올까 의문이고,

'개돼지'로 사는 것은 사무직이라고 다르겠는가.

태생적으로 독고다이 스타일이라면 딱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업무 공간을 보장한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만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상 모든 일은 '노가다'라고 생각한다.

단순 반복 작업이 개돼지들의 주요 업무인 셈이다.

회사의 브레인 몇몇을 빼고는 대다수 사람들은 '노가다'를 하는 셈이다.


정신 노동이나 육체 노동이나 다 똑같다. 반복이다. 반복적이지 않은 창조적 직업은 몇 안 된다고 본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면 금상첨화지만, 창조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리스크도 있는 법.


버스 기사는 정신과 육체 노동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크게 힘들지 않고, 큰 정신적 스트레스도 없다. 물에 술탄 듯? 뭐 그런 느낌. 찬 우유대신 렌지에 데운 약간 미지근한 우유를 마시는 느낌 같다.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지 않은 상황은 존재한다. 사무직에도 존재하듯이.


세상 모든 일은 노가다이며, 리스크 없는 직업은 없다라는 게
'지천명'을 가슴에 새기게 된 2022년에 깨달은 명제다.



버스 기사 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비행기조정사(파일럿)처럼 오랜 교육 기간을 두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다. (<해피버스데이> 버스 기사 되는 방법 참조)



<해피버스데이> 바로 가기

http://naver.me/FHYJiGjR




버스기사가 사무직보다 좋은 점 몇 가지를 언급해 보련다.

<해피버스데이>에 기술해 놓긴 했는데, 몇 가지 더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버스 기사가 사무직보다 좋은 점>

1.혼자 근무한다.

2.근무 시간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3.두뇌가 단순 명료해져 스트레스가 덜하다. 단, 승객의 스트레스 제외.(스트레스의 질이 다르다. 사무직이 높낮이가 분명한 산악 정글 탐험이라면, 운전직은 비교적 평탄한 초원 혹은 사막 탐험과 비슷한 느낌)

4.칼퇴근할 수 있다. 명확한 근로 시간 준수.

5.야근(추가 근무)이 없다.

6.식비가 들지 않는다. 근무복을 받는다.

7.정기 상여금(보너스)이 있다.

8.연말 성과급 등 목돈이 생길 방법은 없으나,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준의 급여는 된다.

9.라디오를 종일 들을 수 있다.

10.날씨 화창한 날, 사무실에 박혀 있기 싫은 날, 드라이브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11.매일 같은 노선을 운행하지만, 매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거리 풍경, 사람들의 옷차림 등 세상 구경을 한없이 할 수 있다.

12.개인 생활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개인 생활 쉽지 않음)

13.술을 줄일 수 있다.

14.몸 관리를 위해 반강제적 운동을 한다.


-<해피버스데이> 제4장 알아두면 쓸모 있는 버스 이야기 중에서-



...


여기에 추가하자면,


15.명상의 시간이 많다. 곰곰히 뭔가를 깨닫는 '진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6.세상에 정말 나쁜 인간들도 있고, 착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운전하다보면 실제 나를 제외하곤 모두 개**이긴 하지만, 정말 얍샵+얌체가 많아 놀라곤 한다.

17.월요병이 없다. 주말 근무로 인해.



...



당신은 과연 위의 리스트 중에 몇 번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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