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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Oct 19. 2021

[해피버스데이] 제1장 4.버스 기사들의 속마음

버스의 가치는 정시성에 있다.

버스의 가치는 정시성에 있다.

걸어오는 승객도 중요하지만,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시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덕을 쌓자.

필자는 버스 운행을 시작하며 항상 되뇌는 말이, ‘덕을 쌓자’라는 것과 ‘인생은 부메랑과 같다’라는 격언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플로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부메랑 게임과 같다. 당신의 생각과 행동과 말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당신에게 돌아온다.”


선한 행동 하나에 선한 결과 하나가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모두 자신을 향해 있다고 여러 인문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버스 기사를 시작하면서 온갖 사람들의 행위를 보며, 욕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지킬 앤드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자가 되어가는 자신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러나 운전대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의 내 표정은 온화한 아기의 그것과 닮아있죠. 정말 그들에게 욕설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화를 삭이며 뇌파를 진정시킵니다. 그런 후 다짐하죠.


“그래, 덕을 쌓자. 참자. 이럴수록 웃자. 저런 사람에게 호의를 보이면 오히려 나에게 덕이 돌아오지 않겠는가”라고.

승객의 90% 이상은 상식적입니다. 단 10%의 비상식적인 승객들로 인해 버스 기사를 비롯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소위 감정 노동자들의 비애와 버스 사고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개념, 무질서, 무대포 정신을 가진 자가 너무 많다는 걸 버스를 시작하며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그 10%에 속해 있지는 않나요?


▶우리도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싶다.

“왜 저 버스는 저렇게 운전하지?”, “난폭 운전을 일삼는 버스들이 문제”라고 항변하는 승객이나 언론의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버스 기사들은 그러한 뉴스나 반응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지요. 

“우리도 그렇게 운전하고 싶지 않다”라고.


고속버스나 시내버스 등 거의 모든 버스는 ‘시간’에 얽매여 운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 시내버스는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아직 빡빡한 배차 시간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버스는 더할 나위 없지요.


시간이 촉박한 것은 곧 기사의 휴식 시간과 직결됩니다. 서행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서행하면 여러 면에서 편안하고 안전해집니다. 그러나 휴식 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식사하고 싶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라 조금은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 운행과 기사의 휴식 시간을 맞바꾸게 되는 상황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승객의 안전과 기사의 휴식은 반비례합니다. 즉 기사는 자신의 휴식 시간을 희생하여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버스 기사들은 생각합니다. 천천히 운전하며 느긋하게 승객을 맞이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싶다고.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노인들의 승차도 매우 많아지고, 휴대폰이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 현실입니다.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버스 기사들은 받아들입니다. 


다만, 이러한 버스 기사의 속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천천히 가고 싶지만, ‘승객의 안전’과 ‘안전 운행’이라는 구호가 ‘반비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운행 패턴을 이해해줬으면 하죠. 승객을 운송하는 것이 버스의 기본 임무인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버스의 숙명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승객들도 이러한 버스의 생리를 이해하여 조금만 더 집중하여 승하차하면 다른 승객을 포함하여 버스 기사에게도 큰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낳게 되죠.


필자도 버스 새내기 때 내리는 승객에게까지 인사를 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안녕히 가세요.” 등등.


▶정류장에서 5초의 여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버스 기사 직종은 큰 범주로 보면 ‘서비스업’에 속합니다. 친절한 눈빛과 상냥한 말씨, 공손한 태도는 서비스업에 속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 대부분의 버스 기사는 그렇게 운행하며 승객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몇몇 몰상식한 승객들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한 신호등을 놓쳐 차간 거리가 멀어지면 버스 기사는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노인 몇 분이 승차합니다. 느긋하게 승차하여 버스 카드를 찾고 태그하여 앉는 데까지 대략 30초 이상 소요됩니다. 심지어는 1분 이상 걸릴 때도 있죠. 실제 필자의 경우, 한 정류장에서 노인 8명이 탑승하시는 데 5분 걸린 적도 있습니다. “그럼 노인들은 타지 말란 것이냐?”라고 할 수 있지만, 노인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논점은 승객들의 승차 시간을 고려하여 배차 시간 및 휴식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노인들이 버스 주요 고객이므로 더욱 참작해야 합니다.


이제 버스 기사는 마음이 급해집니다.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기 때문이죠. 한 정류장에서 30초, 1분이 매우 적은 시간쯤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한 노선의 정류장 숫자가 왕복 100개라 할 때 이런 상황이 10% 정도만 발생해도 10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연착되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시내버스 배차 간격은 대략 5~8분입니다. 왕복 운행 뒤 버스 기사에게 주어지는 쉬는 시간은 15~20분에 불과하죠.


“좀 늦게 가면 어떻냐?”라고 반문하는 승객도 있을 텐데요. 매일 할당받은 배차 시간표에 따라 버스 기사는 탕수(노선 1회 왕복)를 채워야 합니다. 탕수가 깎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차가 막혀도, 사고가 나도, 고장이 나도 탕수를 채워야 합니다. 주로 보험사에서 이야기하는 천재지변으로 차량 운행이 불가능할 때만 탕수가 삭제됩니다. 그러기에 버스 기사들은 운행 시간이 늦어지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죠. 빨리돌아와 밥도 먹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식의 질문이 던져지는 셈입니다. 휴식을 취해야 안전하게 운행할 텐데 말이죠.


얼마 전 TV 뉴스에서 차 문틈에 끼여 뒷바퀴에 깔린 20대 여성의 사망 사고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문이 닫힌 후 승객의 하차 확인을 하지 않은 기사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그 뉴스의 핵심은 ‘왜 기사들은 차 문을 빨리 닫고 출발할 수밖에 없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류장에서 5초의 여유를 두면 서로가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제시했는데요. 여기서 간과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버스 1개 노선의 정류장이 왕복 100개라고 할 때, 정류장마다 5초의 여유를 둔다면 총 500초, 이는 약 8분이 넘는 시간이 됩니다. 어떤 노선은 정류장이 200개가 넘으며, 왕복 5~6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운행 시간이 2시간일 때 휴식 시간은 15분이 주어지게 됩니다. 4시간이 넘으면 30분이지요. 보통 정류장이 100여 개일 때 운행 시간은 3시간 안팎이 되므로, 15분 휴식 시간이 주어지게 되는데요. 여기서 8분(정류장 200개일 경우 16분. 휴식 시간 30분 중 16분 삭제)이 날아간다는 것은 위법을 떠나 기사에게 너무 잔인합니다. 잠깐 앉아 있을 시간도 없는 것이죠. 기사는 그 시간에 밥도 먹어야 하지만, 충전(주유)도 해야 합니다. 승객의 안전과 기사의 휴식은 반비례한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정류장에 승객을 태우고 문 닫고 출발하려는 버스를 휴대폰 보다가 뒤늦게 발견한 청년(주로 청년이기에)이 손을 흔들면 버스를 세우고 다시 출발하는 데 몇 초 걸릴까요? 몇 초 걸리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승객을 탑승시키고 출발하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급정거로 인해 버스 내 승객의 전도 사고 위험이 발생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해당 손님으로 인해 통과해야 할 파란색 신호등(주행 신호)을 놓쳤고, 그 신호등 간격이 3분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 시간만큼 식사 시간 및 휴식 시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승객의 작은 부주의가 실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도 생길 수 있습니다. “5초의 여유를 모든 버스가 통용하면 다 같이 천천히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이니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막차 출발 시각이 정해져 있고, 하루 운행 대수와 운행 횟수도 정해져 있죠. 서울시에서 버스 배차를 관리하기 때문에 이를 느슨하게 늘리면 가능하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배차 시간과 운행 시간을 현실적으로 적용해야 급하지 않고 느긋하며 상냥한 버스 기사를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승객은 정류장에 혼자 서 있을까? 

지방의 외딴 도로에 특히 많은 현상입니다. 가로등도 없는 곳에 어느 승객이 나 홀로 서서 휴대폰 불빛을 버스 기사에게 쏩니다. 나 여기 있다고, 태워달라고.


반면 도심에서도 간혹 홀로 정류장을 지키는 승객이 있습니다. 주위 가로등 불빛이 대낮처럼 밝아 굳이 불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릴 필요가 없어 휴대폰에 빠져 있죠.


필자는 생각해 봤습니다. 승객들이 홀로 정류장에 서 있는 이유를. 또한, 버스에 승차한 승객이 홀로 내리는 정류장의 정체를. 서울 시내버스보다는 경기도 시내버스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홀로 내리거나 홀로 서 있거나. 


필자의 결론은 ‘정류장 수가 많다’라는 것입니다. 버스 중앙 차로가 계획되어 설치되고 재편된 서울 시내버스의 정류장보다는 경기도 정류장들이 심각합니다. 어떤 정류장의 간격은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존재합니다. 


버스 기어를 4단에 넣기도 전에 도착하죠. 이런 정류장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승객 없는 빈 정류장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다 승객이 1명씩 존재하는 이른바 ‘나홀로 정류장’인데요. 신도시를 계획하여 만든 곳은 다소 덜합니다. 과거부터 존재했던 구도심들의 정류장은 실로 촘촘합니다.


이는 민원의 결과라 합니다. 우리 집 앞에도 정류장을 만들어달라고 민원을 넣는 것이죠. 특정 개인이 지속해서 요구하면 지자체는 두 손 듭니다. 신호등도 마찬가지죠. 신호 체계를 아무리 조절한다고 해도 그러한 구간을 지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버스의 출발과 멈춤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대다수 버스 기사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저상 오토매틱 버스는 예외. 서울시는 2025년까지 서울의 모든 버스를 저상 오토매틱 버스로 교체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얼마 전에도 수동 기어 신차를 출고했으니까요. 차령이 10년[기존 9년. 2020.9.1.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개정]인 것을 고려하면 요원해 보입니다.)


버스 정류장이 많으면 승객들이 편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 이기주의로 KTX에 역사를 많이 짓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고속 급행열차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우리들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심야에 가로등도 없는 정류장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홀로 서 있는 여학생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경기도는 정류장을 통폐합해야 합니다. 승객의 동선과 정류장 간 거리를 파악해 과감히 폐쇄해야 합니다. 심야에 가로등 불빛도 없고 정류장 표시도 없는 곳에 서 있는 승객은 초보 버스 기사에게 공포의 대상입니다. 


▶와서 좀 타라.

정류장에 버스들이 줄줄이 정차합니다. 승객은 자신의 버스가 왔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휴대폰을 봅니다. 바로 앞의 버스를 포함해 세 번째쯤에 도착했군요. 그런데 그 승객은 가만히 서 있습니다. 날씨가 추웠다면 움직여서 버스 앞으로 내달렸을까요?


줄줄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해도 그 승객은 요지부동입니다. 버스 기사는 유리창 밖으로 승차할 승객이 있는지 살피며 서행합니다. 그 승객 앞을 지나칠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죠. 버스 기사는 생각합니다. ‘아~ 다 태웠구나’라며 정류장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때야 그 승객은 움직입니다. 사이드 미러를 보지 않았다면 버스 기사는 그 정류장을 그대로 벗어났을 겁니다. 버스 중앙 차로에서 특히 많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단언컨대, 이런 승객은 버스 기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 중 하나입니다. 비호감이죠. 그러고는 민원 신고를 합니다. 무정차 통과했다고.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버스 기사는 속으로 욕설을 합니다. 심지어 겉으로 혼잣말처럼 욕설을 내뱉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들릴 듯 말 듯하게, 다소 비겁한 톤으로 말이죠.


“와서 좀 타라. 응?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차를 두세 번 멈추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이게 우리 일이긴 하지만 서로 도우면 좋잖아.”


과거 버스가 귀했던 시절에 그 버스를 놓치면 수십 분을 또 기다려야 했던 경험이 있기에 중년 이상의 승객들은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버스 앞까지 걸어오거나 뛰어옵니다.


▶무단 횡단하지 마. 안 태울 거야.

버스 중앙 차로에서는 대체로 사고 발생률이 낮습니다. 일반 차량과 분리돼 운행하기 때문에 서로 간 마찰이 일어날 수 없죠. 버스 내 사고만 없다면 대체로 편안한 주행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버스 중앙 차로에서도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바로 무단 횡단자들 때문입니다. 무단 횡단자들은 횡단보도가 빨간불임에도 좌우 비어있는 도로를 확인한 후 뛰어갑니다. 그렇게 뛰어가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자신이 탈 버스라고 매우 적극적인 몸짓을 보냅니다. 그런데 버스는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갑니다. 이때 달려온 승객은 민원을 넣습니다. 대체 왜 안 태우냐고.


버스 기사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묵시적 관행이 ‘무단 횡단자 승차 거부’입니다. 무단 횡단으로 인한 사망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여럿 경험한 기사들은 더욱 그렇죠.(법령에 의하면 무단 횡단자라도 태우는 게 맞음. 도로교통법은 위반 사항이지만,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상으로는 적법임)


서울시 버스 중앙 차로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출근 시간대에 도로가 꽉 막힌 상태에서 버스 중앙 차로 정류장에 버스가 속속 도착합니다. 횡단보도는 빨간불이고 일반 도로는 차들로 빼곡하여 정차된 승용차들 사이를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하나만 건너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반대편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 하기에 이 승객은 버스 중앙 차로를 건너야 했던 것이죠.


버스는 정류장을 통과하여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갑자기 꽉 막힌 차들 사이에서 이 승객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해 그대로 밟고 지나간 사고.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무단 횡단은 이면 도로에서 더욱 빈번히 일어납니다. 인생을 살면서 무단 횡단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좌우를 좀 더 유심히 살피고 재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기본일 텐데, 느긋하게 움직이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차량의 움직임에 당황하게 됩니다. 특히 야간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실제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버스 기사들은 운행 중 무단 횡단자를 만나면 그 짧은 시간에 급정거와 무단 횡단자 충돌 중 고민하게 됩니다. 급정거하면 버스 내 전도 사고의 위험이 있고, 그대로 무단 횡단자와 충돌하면 최하 중상 이상일 것이 뻔한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고 말이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게 돼 있습니다.


실제 이런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경기도 시내버스 기사 한 명은 버스 내 전도 사고가 발생하여 해고 처리됐습니다. 무단 횡단자를 충돌해도 안 되고, 전도 사고를 일으켜도 안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만원 버스 안에서 일종의 사명감이 든다.

버스 기사를 하면서 왠지 모를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이 드는 순간은 승객이 꽉 차 있을 때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삶의 전쟁터로 나가는 출근길과 안락하고 편안한 집으로의 귀갓길을 책임지고 이동시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그것입니다.


낮이나 심야 시간의 경우 룰루랄라 드라이브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나, 역시 버스의 기본 개념처럼 많은 승객을 한 번에 승차시키고 이동할 때, 진정한 버스 기사로 거듭나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무더운 여름밤과 추운 겨울 새벽녘의 버스 운행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전쟁터에서 지친 병사들을 편안한 침대에 눕게 하듯이.


외부의 거친 날씨를 피해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안락한 버스 내부의 냉기와 온기를 번갈아 맞아가며 승차하는 승객의 표정을 보면 “이 직업을 잘 택했구나”라는 보람이 느껴집니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양심적인 운전자들이 훨씬 많구나.

편도 3차로 도로의 교차로에 좌회전 차로와 직진 차로, 그리고 직진과 우회전 겸용 차로가 있다고 할 때, 가운데 차로에 승용차들이 빼곡히 줄지어 정차해 있는 광경을 종종 목격합니다. 좌측과 우측 차로는 텅 비워둔 채.


좌회전 차로는 그렇다 해도 우회전 차로를 그대로 비워두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일부 운전자들이 우회전 차로를 막아 버스나 화물차를 막아서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고 가운데 차로에 100~200m를 길게 서 있는 것을 보면 버스 기사로서는 흐뭇합니다. 사실 우회전 겸용 차로에 서 있어도 위반 사항도 아니고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우회전 차량을 위한 것인지, 버스를 위해 남겨놓은 것인진 모르겠으나 매우 훌륭한(?) 운전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한때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양심 냉장고’를 걸고 차선을 지킨 운전자에게 선물로 제공한 적이 있는데, 이런 운전자들을 위해 일일이 문을 열어 상품권이라도 줄줄이 나눠주는 TV 예능프로그램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허황한 꿈’을 꾸기도 합니다.


▶버스의 최고 가치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하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버스 요금은 환승 서비스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대중교통의 천국이라 할 만합니다. 서울시 시내버스 요금은 성인 1,200원(카드)입니다. 1,200원을 지급하고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혜택이 아닐까 합니다.(단, 거리 비례제 시행) 


그렇다면 버스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저렴한 비용으로 승객의 ‘이동권’을 충족시켜주는 것일까? 버스의 신속 정확한 ‘정시성’에 있을까?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았겠지만, 앞으로 대중교통의 방향을 결정하려면 한 번쯤 생각해봐도 좋을 법한 이슈라 생각합니다.


필자는 ‘정시성(定時性. 시간이나 시기 따위가 일정한 특성)’에 있다고 봅니다. 저렴한 비용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 생각합니다. 시내버스든, 고속버스든 모든 버스가 정시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서로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합니다. 


버스 중앙 차로가 생긴 것도, 서울시민의 약속 시각을 지켜주겠다는 서울시장의 대중교통 공약도 모두 ‘정시성’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것들입니다. 서울시를 비롯해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매년 수백억 원을 버스 회사에 지원하는 것도 모두 버스의 정시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시민들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지하철은 승객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문을 열고 1~2분 후 무조건 닫습니다. 정시성 때문입니다. 일단 문이 닫히면 그대로 출발합니다. 승객을 다시 태우고자 멈춰서지 않습니다. 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과 달리 기사를 볼 수 있기에 기사의 재량으로 승객을 기다려 주거나, 문을 다시 열 뿐이죠.


원칙대로라면 저 멀리서 걸어오는 승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걸어오는 승객도 중요하겠지만,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시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버스의 ‘정시성’을 해치는 일부 승객들의 행위는 기사들의 반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고, 버스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버스의 정시성은 버스 간격을 의미합니다. 간격이 벌어지면 기사나 승객, 서로 피곤해집니다.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승객의 몰상식하고 버스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도로에서 일반 차량 운전자들의 몰상식한 운전 습관 등은 모두 버스의 정시성을 해치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또한, 고령화 시대에 맞춰 노인 승객들의 급증으로 인한 승차 시간을 고려하여 배차 간격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정시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스의 정시성은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부디 모두의 인식이 전환되어 기사와 승객 모두가 만족하는 버스 문화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IP. 버스 차령 계산

차령을 9년에 맞춘 이유에 대해 분석해 봤다. 1일 시내버스 평균 운행 거리가 약 300km 안팎이다. 연 10만km 정도 운행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100만km를 넘지 않으려면 약 차령을 약 9년 정도로 하면 딱 들어맞는다. 다만,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정부는 차령을 1년 더 연장했다.

300km×365일=109,500km×9년=985,5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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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me/FHYJiGjR



作 성찬. 2층 버스 사이에 깃든 석양빛이 아름다워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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