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업계의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흔히 얘기하듯이, ‘어용 노조’로 불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버스가 공공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준공영제’ 이전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한편으론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고 지하철도 없던 시절, 파일럿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버스 기사의 입지는 꽤 높았다고 합니다. 안내양과 조수를 거느리고 승객을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것에서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죠. 승용차 운전면허도 귀했던 시절, 육중한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노조의 활동이란 것은 꿈도 못 꿨던 시절이었을 테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동조합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산별노조(동일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을 말함) 정책에 따라 현재의 이름으로 결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민주화되기 이전에 한국노총은 어용 노조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1997년까지 외국에는 찾아볼 수 없는 노동조합법상 복수노조 설립 금지에 관한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죠. 정부의 통제 하에 있던 시기라 제대로 된 노동 운동을 못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민주적 노조 활동의 염원은 오래 이어져 오다 1990년 2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탄생하여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1997년 노동 관계법 개정에 따라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폐지되면서 전노협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이름을 바꿔 합법 단체로 승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합법화 1999년 11월 23일) 현재는 규모에 있어 한국노총을 누르고 대한민국 제1노총으로 성장했습니다.
짧게나마 역사를 살펴봤을 때, 버스 업계에 복수노조가 허용된 것도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20여 년밖에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버스 업계에 노조는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입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일부 서울시 시내버스 회사에 민주노총이 결성돼 세를 불려가고 있습니다.
준공영제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버스 노조가
거의 회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어 노동조합이라기보다는
회사의 한 부서쯤으로 여기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버스 기사의 애로 사항과 건의 사항, 불편 사항을 비롯하여 회사에 손실을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의견을 제시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버스 회사의 행정(인사, 재무, 총무 등) 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버스 기사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또 기사들은 조합의 문을 두드려 질문을 던지지도 않죠. 소탐대실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큰 이유겠지만, 하루하루 노동의 강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순응자의 삶’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누군가 나서서 앞장서면 나도 따라나서겠다”라고 말하지만, 그 ‘누군가’가 없는 것이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먹고사는 일이 급선무인 것도 한 이유입니다. 가장 정의로울 때가 학창 시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가슴에 와닿는 순간입니다. 소모품처럼 낡아가는 버스 기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는 그래서 더 대단해 보입니다.
이렇듯 빡빡한 삶에 기름칠 해주는 곳이 바로 노조입니다. 이런 노동 강도를 생각하여 더욱 나은 삶으로의 전환을 꿈꾸게 만드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이념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노동 운동의 기본 개념이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매년 임금 협상 결과만 노조의 활동 영역으로 포장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버스 업계에 민주노총의 진입은 꽤 환영받을 만합니다. 50여 년간 만연된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진 못해도 서서히 바꿔 가는 것이 눈에 보이거든요.
버스 노조비는 전 노조원(버스 기사) 월급의 2% 수준입니다. 급여가 300만 원이라 할 때 매달 6만 원씩 전 사원에게서 공제하죠. 기사가 200명만 되어도 월 12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모입니다.
이 금액의 사용분은 투명하게 공개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버스 기사들끼리는 이를 두고 수군거릴 수밖에 없죠. 경력이 많든 적든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습니다.
필자도 용기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저 이런 상황과 현실을 설명할 뿐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환경이 변하길 기대할 뿐, 저에게도 별다른 특효약은 없어 보입니다.
“민주 투사들이 회사엔 눈엣가시일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영웅이여.”
한 선배 기사님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노조는 왜 존재하는가? 노동조합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로 되어 있습니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지 않고 사업주가 주체가 된 노동조합. 과연 설득력과 주체성이 존재할까요? 무분규를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출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버스라는 작은 사회의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직선제로 선출합니다.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테고 필자가 노조 간부가 된 적이 없어 그들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노조의 올
바른 활동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1) 조합원 보호 및 대변인 역할 수행
조합원을 보호하며 대변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노조의 가장 중요한 활동 영역입니다. 노조는 조합원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야 할 존재입니다. 부당한 회사의 압력에 맞서 튼튼한 방패막이 될 유일한 존재이니까요.
노조가 무조건 회사와 대치하는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공정과 상생, 합리와 실용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노조의 설립 취지를 가슴에 항상 새겨야 합니다.
2) 노조위원장 직선제
현재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뽑습니다. 직접선거제(직선제)를 통해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대표임을 망각하면 안 됩니다.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 노동조합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권위 의식 타파
국회의원이 국민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조합원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조합원 위에 존재하며 그들에게 지시와 강요를 하는 것은 회사의 한 부서라 스스로 인정하는 꼴입니다.
사회적 약자인 조합원 특징을 빌미 삼아 노조가 회사 위에 군림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4) 사고 대처
조합원의 가장 깊은 시름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이때가 바로 노조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거나 오히려 사고자 징계를 앞장서서 독려한다면, 조합비는 왜 내야 하는지에 대해 조합원은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각한 사고 상황일 경우에는 기사가 징계 규칙에 따라 처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노조가 방패막이 되어야 합니다.
5) 조합원 임금 및 수당 지급 감사 역할
조합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임금 협상과 누락된 수당 확인, 각종 복지 혜택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실습비 누락은 없는지, 임금 인상 협상안은 제대로 준비해서 타결 지을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회사에서 제시하는 협상안에 사인만 한다면 노조는 직무유기 하는 셈입니다.
6) 가짜 정보에 대한 대처
인터넷의 발달은 버스 업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각종 SNS를 통해 국가에서 시행하는 법안이나 교통 문화 등을 열심히 공유하는 동료 기사에게 정보를 얻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가짜 뉴스를 가끔 퍼뜨리는 예도 있습니다. 가짜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진짜 정보’도 별로 없습니다. 버스 업계가 참으로 정보에 취약한 업종 중 하나입니다. 인터넷 검색이 쉽지 않은 선배 기사들도 많거든요. 이 책을 집필하게 된 큰 취지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노조는 이러한 가짜 정보를 감시하고 필터링하여 항상 최신 정보를 조합원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회사는 돈 벌어다 주는 기사를 위해 뭔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하는데, 오히려 노조가 기득권의 맛에 빠져 기사의 고충을 외면하는 행태가 자행돼서는 안 됩니다. 일부 회사들의 노조 행태를 보면 과연 노조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버스 기사 지원자들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이런 사회적 약자는 버스 회사에 입사하면서 ‘슈퍼 을’이 됩니다. 신입 버스 기사의 처지는 대체로 빈약합니다. 준공영제를 제외하고 버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일부 제외) 면면을 살펴보면 사업이 망해서 왔거나, 취업이 안 되고,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 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화려한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 그들의 인생은 바닥을 친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에 반대 목소리를 낼 처지가 아니죠.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런 약자들이 무슨 분규를 하겠습니까.”
일부 회사들은 수십 년간 노조 파업이 없는 무분규 회사라 자랑합니다. 질문과 대답은 간단명료합니다. 분규를 안 하니 분규가 일어날 일이 없는 것이죠. 수십 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시끄러운 일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분규가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준공영제 버스 회사 노조는 결이 다릅니다. 훨씬 낫죠. 장기 근무자들이 많아 그동안 안정된 입지를 확보했기에 조금씩 목소리를 높일 수 있죠. 그런 환경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기도 하지만 차차 노동자의 아픔을 현실에 적셔내기 시작합니다.
※분규를 옹호하거나 권유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엄두를 못 내는 버스 기사가 많은 현실을 설명하는 것일 뿐,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