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만들어야 했던’ 프로젝트

– 실적 왜곡 및 비용 선집행 사례

by 서울회계사

전국 지점 리뉴얼 프로젝트와 성과 압박

oo사는 전국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중견 규모의 유통·서비스 기업으로, 노후 매장을 체험형 컨셉의 신규 매장으로 전환하는 전사 리뉴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본사 주도로 여러 지역 조직이 동시에 참여하며, 프로젝트 성과는 리뉴얼 완료 매장 수, 시범 매장 오픈 실적, 고객 체류시간 증가율 등 정량 지표로 관리된다. 이 수치는 임원 평가와 각 지역 본부 KPI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이며, 프로젝트 리더는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실적을 취합해 경영진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번 분기 리뉴얼 숫자 못 맞추면 프로젝트 자체가 실패로 찍힌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계획 대비 실제 리뉴얼 진행 속도가 더뎌질수록 실무자들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보고하면 바로 책임론이 나온다”는 부담을 느낀다. 성과 지표 달성 여부가 개인 평가와 조직 성과에 직결되는 구조는, 진행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기보다 ‘좋게 보이도록’ 표현하고 싶게 만드는 압박으로 작동한다.


실적을 ‘예정 수치’로 바꿔 보고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허가 지연과 공사업체 수급 문제로 매장 리뉴얼 일정이 크게 밀리고 있었지만, 프로젝트 리더는 CEO 보고 자료에 ‘리뉴얼 완료’ 또는 ‘오픈 준비 완료’로 표기된 매장 수를 계획 수치에 가깝게 반영했다. 실제로는 공사가 진행 중인 매장이 적지 않았음에도, 보고서에는 마치 일정이 정상적으로 이행되고 있는 것처럼 기재되었다.


내부 회의에서는 “어차피 몇 주 안에 오픈할 매장들이잖아. 지금은 예정 숫자로 보고하자”, “사실대로 올리면 본사에서 바로 문제 삼을 거다”는 말이 오갔다. 실적을 왜곡한 행위는 ‘거짓 보고’라기보다 ‘일정 조정’ 정도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KPI와 실적 왜곡의 연결고리

왜곡된 리뉴얼 완료 수치는 단순한 진행 현황 보고를 넘어, 프로젝트 리더와 지역 본부장의 성과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KPI 달성 여부에 따라 인사 평가, 성과급, 차기 대형 프로젝트 배정이 달라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실적을 낮게 보고할 유인은 거의 없었다.


“이번 분기만 넘기면 다음 분기에는 만회할 수 있다”, “지금 숫자만 맞추자”는 인식이 퍼지면서, 실적 왜곡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선택지처럼 받아들여졌다. KPI가 관리 도구를 넘어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용을 성과로 착각한 선집행

한편 일부 지역 조직은 매장 리뉴얼 공사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연말 예산 소진과 성과 확보를 이유로 인테리어 공사비와 집기 구매비를 선집행했다. 계약 조건상 공정 완료 이후 지급되어야 할 비용이었지만, 연말이 되자 “어차피 집행할 돈인데, 올해 예산으로 털고 가자”는 논리로 비용을 먼저 지급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실무자들은 “공사는 아직이지만, 준비는 다 해 놨잖아”라며 비용 집행을 정당화했다. 비용 집행 자체를 ‘일을 했다는 증거’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실제 리뉴얼 성과와 비용 집행 사이의 구분이 점점 흐려졌다.


메신저 대화에 드러난 조직의 분위기

프로젝트 리더와 지역 본부장 간 메신저 대화에는 “지금부터는 따지기보다 쓰는 데 집중하자”, “이번 분기 예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소진해야 한다”는 표현이 오갔다. 예산을 다 쓰는 것 자체가 성과처럼 인식되는 분위기 속에서, 비용 집행의 적정성이나 실제 리뉴얼 완료 여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에는 그냥 밀어붙이자”, “다음 분기에는 숫자 맞출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이 반복되면서, 비용 집행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이루어졌고, 내부에서는 이를 ‘현실적인 선택’ 정도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사후 점검에서 드러난 괴리

본사 기획·관리 부서가 프로젝트 실적과 비용 집행 내역을 교차 점검하는 과정에서, 보고된 리뉴얼 완료 매장 수와 실제 현장 공사 완료 현황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공사 완료 확인서, 현장 사진, 오픈 일정 등을 하나씩 대조해 보자, 보고서 상 ‘완료’로 표시된 매장 중 일부는 실제로는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내부 테스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비용 역시 공정률과 무관하게 선지급된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고, 일부는 증빙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채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말이라 급하게 처리했다”는 해명이 뒤따랐지만, 관리 부서의 시선에서는 명백한 통제 실패로 보였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엇갈린 인식

프로젝트 리더는 “현장의 실제 진행 상황을 감안한 합리적 판단이었다”고 주장했고, 일부 지역 본부장은 “본사도 어느 정도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기획·관리 부서는 “사실과 다른 보고는 명백한 문제”라며 책임을 물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누구도 명확히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조직 문화였다. 실적을 낮게 보고하는 것은 ‘눈치 없는 행동’이 되고, 예산을 적극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후 조치와 통제 강화

회사는 실적 왜곡과 비용 선집행에 대해 내부 징계와 함께 전국 매장 리뉴얼 프로젝트 관리 체계를 전면 재점검했다. 리뉴얼 완료 여부를 판단할 때 현장 사진, 공정 완료 확인서, 오픈 승인서 등 객관적 증빙을 필수로 첨부하도록 제도를 개선했고, 비용 집행 시 공정률 연동 지급과 사전 승인 절차를 강화했다.


또한 KPI 산정 방식도 조정해, 단순 완료 수치가 아니라 실제 오픈 여부와 고객 이용 개시 여부를 함께 반영하도록 기준을 변경했다. “이제는 숫자만 맞추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열었는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조직 전반에 공유되었다.


이 사례가 남긴 교훈

이 사례는 ‘리뉴얼 완료 수’라는 성과 지표가 과도한 압박으로 작동할 경우, 보고의 진실성과 비용 집행의 적정성이 쉽게 훼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조금 앞당겨 보고한 것’과 ‘조금 빨리 집행한 비용’이었지만, 그 반복은 조직 전체의 기준을 흐려 놓았다.


“이번 분기만 넘기자”는 생각이 반복되는 순간, 조직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성과 압박과 느슨한 통제가 결합될 때 발생하는 구조적 위험이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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