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편집자 정유민을 만나다
책은 어떤 과정으로 세상에 나올까요? 모든 책의 뒤에는 책의 기획부터, 책의 내용과 방향을 정하고, 필자를 섭외해 원고를 받고, 때로 원고를 다듬는 편집자들의 노고가 숨어있습니다.
출판편집자 정유민 씨는 이매진 출판사, 웅진주니어, 웅진지식하우스, 위즈덤하우스 등의 출판사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 출판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만든 책으로는 <문학의 광장> <동물들의 생존 게임>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리트윗의 자유를 허하라> <오늘,뺄셈> 등이 있습니다. 출판편집자에 대한 궁금증을 그녀를 통해 풀어보았습니다.
정유민 :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일이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책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하고 완성된 원고를 편집하면서 완결성을 가진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진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출판사나 책의 분야에 따라 역할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의 디렉팅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유민 : 저는 원래 다른 일을 하다가 출판편집자로 전직하게 된 경우예요. 인터넷 신문사에서 기자 일을 잠시 하다가 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홍보, 기획 일을 하던 중 출판편집자로 일하는 친구를 보며 책 만드는 일의 매력을 느껴 출판사 입사를 준비하게 됐지요. 처음에는 편집자가 어떤 직업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도 전혀 몰라서 많이 헤맸어요. 그러다가 출판인회의에서 운영하는 출판인력 양성 교육기관인 '서울북인스티튜트(SBI)'에서 출판 강의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지요. 그곳에서 선배 출판인들의 실무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책을 읽고 서점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잡지 기사 하나를 읽어도 저자와 책의 꼴을 생각했고, 혼자 기획안을 써보면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했고요.
물론 입사는 쉽지 않았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전직을 하려고 하니 또래 친구들은 3-4년차 경력을 가질 나이에 신입으로 입사해야 해서 나이 제한에 걸리기도 했고, 대부분의 출판사가 주로 경력자만을 선호했기 때문에 입사 지원의 기회조차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편집 보조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전 직장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소소한 편집 일들을 했어요. 다른 업종에 근무했지만 그 경험들이 편집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그런 노력들이 실제 출판업계에 발을 들이는 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유민 :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기 때문에 전부터 책에 대한 애정은 상당했어요. 남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막연하게 책이 좋아서 대학 시절 매일 중앙도서관을 드나들었어요. 서가에 꽂힌 책들 사이를 거닐면서 제목들을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죠.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잔뜩 빌려와 제목과 표지, 목차, 서문만을 보고 반납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책이라는 물성이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작가가 원고를 쓰면 그냥 바로 인쇄되어서 책이 나오는 줄 알았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전문 인력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훗날 한 권의 책이 나오려면 기획부터 편집, 디자인, 홍보까지 상당히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편집자라는 직업이 제겐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처럼 근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정유민 :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어요. 회사에 다닐 때의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편집자의 일과는 때론 굉장히 정적이고 지루하기도 하고 때론 굉장히 역동적이고 부산스럽기도 하지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교정지를 보면서 교정교열을 하느라 8시간의 근무시간을 꽉 채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각종 편집회의, 기획회의, 마케팅회의 등 회의로 가득한 날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저자 미팅, 외부 행사 진행 등으로 바깥을 돌기도 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편집자의 일이라는 게 거의 전 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딱 정해진 한 가지 일을 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편집자가 처리해야 할 잡무는 회사에 따라 그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주로 한 프로젝트, 즉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일정을 중심으로 일과가 돌아가지만 한 사람의 편집자가 한 권의 책만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매일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하지요.
정유민 : 근무시간은 보통의 회사들처럼 9시 출근, 6시 퇴근으로 정해져 있지만 마감이 있거나 업무량이 많은 날에는 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 특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주5일 중 3일 이상은 야근을 했던 것 같은데요^^; 그만큼 업무량은 보통 이상으로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특별히 복장 제한을 하지 않아요. 지나치게 편안한 홈패션(?)이 아닌 이상, 복장에 대해 규제하는 곳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저자 미팅 등 외부 일정이 있을 때는 알아서 깔끔하게 입고 오지요.
대기업처럼 크고 쾌적한 오피스 건물을 상상하면서 출판사에 들어서면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말했듯이 출판사는 대개 소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서 사무실이 크지 않고,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안락한 분위기의 사무공간을 조성한 공간도 많아요. 최근에는 많은 출판사들이 파주출판도시로 이전했는데 그곳의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인지라 사무 환경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하지만 주변에 병원이나 약국, 관공서, 우체국 등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데다 교통도 썩 좋지 않아서 원성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정유민 : 종종 중고등학생 분들이 제게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다며 어떤 전공을 해야 하냐고 물어올 때가 있어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편집자가 되기에 적합한 전공은 없습니다. 물론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이 업계에서 많이 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녜요.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독서이력은 갖춰야겠지만 반드시 글을 잘 쓰거나 문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학을 전공해 과학 책 전문 편집자가 될 수도 있고, 역사를 전공해 역사 책 전문 편집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교정교열 등 실무에 필요한 기술은 대학에서 익히기에는 한계가 있고 추후 별도의 교육 기관이나 실무를 통해서 충분히 습득할 수 있지만 대학에서의 전문적인 전공은 자신만의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편집자에게 기획력이 더 크게 요구되고 있는 추세이니 신문이나 잡지 등을 꼼꼼하게 읽으며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흐름을 읽는 훈련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정유민 : 출판사에 다닌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TV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후남이가 난로 앞에 앉아 손을 호호 불며 열심히 원고를 보는 장면을 상상한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책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과 소통하는 일입니다. 편집자가 많은 영역을 넘나들며 진행한다는 것은 그 많은 영역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한다는 뜻이지요. 저자, 마케터, 디자이너, 독자, 서점MD 등 편집자가 만나고 협력해야 할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그들과 호흡을 잘 맞춰서 일이 문제없이 매끄럽게 진행될 때, 그래서 결과물이 모두를 만족시켰을 때, 그리고 그들과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정을 유지하게 됐을 때 '인생 헛살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요.
힘든 점은 마찬가지로 '사람'입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이들과 협력하며 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충돌하고 어긋나고 틀어지는 일도 생기는데, 그런 문제적 순간들을 매끄럽게 잘 헤쳐 나가야 하는 일은 굉장한 스트레스예요. 특히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저자와 소통이 힘들 때는 정말 진이 다 빠지죠.^^
정유민 : 네, 사회 변화에 따라 엄청나게 변화하고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직업이죠. 물론 저는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 믿고 있지만^^ 워낙 매체 변화에 민감한 업이라서 최근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기기가 등장하면 순식간에 종이책 독자를 뺏기게 되니 종종 휘-청할 때가 많아요. 전자책 환경도 좋아졌고,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저자가 스스로 전자책을 출판할 수 있는 셀프퍼블리싱도 가능해진 시대이기도 하니 종이책에 대한 전망은 나날이 어두워지고 있는 건 사실예요. 책 말고도 즐길 게 너무 많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디바이스가 등장하고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어도 결코 책을 대체할 만한 매체는 없다고 생각해요. 형태는 조금 달라질지 몰라도 분명 텍스트가 줄 수 있는 정제된 정보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 매체가 종이냐 웹페이지냐 모바일페이지냐 하는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 '책'이라는 기본형은 변치 않을 것이니 아직은 이 업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정유민 : 드라마에 등장하는 김현주나 의 수애(각각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과 <천일의 약속>에서 출판편집자 역할로 출연했음)처럼 멋지기만 한 직업은 아니에요. 책만 열심히 읽는다고 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요. 요구되는 능력은 많지만 연봉이 대단히 높지도 않아요. 오히려 박봉이죠. 업무량도 상당하답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선호되는 직업도 아닐 거예요. 무대 뒤의 스태프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는 외로운 직업일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하고 싶다면, 왜 이 일이 하고 싶은지에 대해 많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정유민 : 책을 좀 더 읽고 싶어요. 중학교 때부터 갑자기 책을 덜 읽게 되었는데 그게 꽤 후회가 되더라고요. 특히 고전의 경우 그럴 때 좀 많이 읽어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고 후회할 때가 많아요. 직업을 가진 이후에 읽는 책은 순수한 독자로서 읽히지가 않으니 오히려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출처] 서울교육나침반
https://blog.naver.com/seouledu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