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직업 인터뷰]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을 만나다
이강훈씨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명으로, 다양한 작풍으로 출판사 에디터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올해로 13년째 일러스트의 세계에 몸 담고 있는 그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열외인종잔혹사』, 『괴물의 탄생』, 『고령화 가족』 등 100여권의 책 표지를 그렸습니다. 잡지, 광고 등 다양한 매체에도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도 쓰는데요, 지은 책으로는 『도쿄 펄프픽션』과 『나의 지중해식 인사』, 일러스트집 『반칙의 제국』 등이 있습니다. 최근엔 페이스북에 매일 올리는 '데일리 드로잉'으로 ‘일 외의 그림그리기’에도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을까요.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요. 일러스트레이터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았습니다.
이강훈 : 주로 책, 잡지 등의 에디토리얼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하고 있어요. 광고 등 다른 매체의 일도 가끔 하고요. 대개 단행본의 표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많이 하고, 가끔 책 안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는 작업도 합니다. 현재 주간지 <한겨레21>에 십수년 째 삽화를 그리고 있고, <빅이슈>라는 잡지에 ‘서울을 그림’ 연재도 하고 있죠.
우리나라에서 일러스트 시장이 가장 큰 곳은 아무래도 출판 시장이에요. 그 중에서도 어린이 영역의 책들, 그림책이나 학습지 등에 수요가 많아요.
이강훈 : 이건 따로 자격증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라 좀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많이 그리는 게 중요하겠죠. 보통 거의 미대를 나온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저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요즘은 서양화, 동양화 전공자들도 많이 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대학에서 일레스트레이션과를 개설해 비중있게 가르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시각디자인과에서 부분적인 파트로 다루든가 하는 식이죠.
요즘은 체계적으로 집중해서 가르치는 일러스트 전문학교가 많이 생기는 추세에요. 그런 데를 통해서 데뷔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 같고요.
데뷔는, 스스로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본인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보여주면서 뚫는 게 방법인데, 직접 다니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자기 사이트를 만들고, SNS 등에서 자기 작업을 오픈하기도 하는 등의 방법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걸 통해서 기회가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강훈 : 우연히 하게 됐어요. 처음엔 전혀 생각이 없었죠. 당시 친구들이 무가지 잡지를 만들고 있었는데, 거기 그림 그려달라는 부탁이 왔어요. 저는 미대를 다녔고, 어릴 때부터 그림은 줄곧 그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겠다고 했죠. 그렇게 그 잡지에 처음 일러스트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된 거예요. 그렇게 연이 닿아서 처음에 하게 된 것이 <씨네21>, <한겨레21> 잡지였어요. 거기서 조그마한 꼭지의 삽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이강훈 : 심플합니다. 저는 주로 오전에 작업을 많이 해요. 아침엔 보통 직장인과 비슷하게 7시 전후로 일어나서, 오전 중에 일을 해요. 프리랜서는 제약이 따로 없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힘들어져요. 규칙적으로 하지 않으면 체력적으로도 일을 오래 할 수 없고, 마감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지죠. 프리랜서는 어느 정도 다들 그렇겠지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후에는 내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일 말고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갖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놀거나 그런 식이죠.
출판사 쪽 직원과 직접 만나는 경우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에요. 대부분의 소통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하는 편이고요. 그래서 굳이 여기서 여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한국에 있지만 외국에서 의뢰가 와도 충분히 가능하고, 반대일 경우도 가능하죠.
이강훈 : 사실 각자 사용하는 도구도 방법도 천차만별이에요. 저는 주로 종이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많이들 사용하는 게 포토샵, 페인터,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인데, 그걸 위해 굳이 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특별히 어디서 배운 적은 없어요. 필요하니까 혼자 공부하다가 익힌 거예요. 이것 저것 하나씩 열어서 만져보면서, 어떤 게 나에게 필요하고 잘 맞는지 찾는 거죠. 어차피 물감, 연필 등 도구를 쓰는 거랑 똑같은 거니까요. 같은 도구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쓸 수 있고요. 요즘은 의뢰 업체에서도 대부분 데이터로 그림을 받으려고 하니까, 과정 상으로 봐도 컴퓨터로 하는 게 편하죠. 원화로 작업하면 수정할 때도 일이 커지고, 시간, 비용이 추가적으로 드니까요.
이강훈 :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림 그리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겠죠. 파인 아트는 사실 이 그림이 돈이 될지 안 될 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거고, 성공하면 부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일러스트레이션은 클라이언트가 있는 일이고 상업적 목적이 있는 작업이니까, 그리는 만큼 수입이 되는, 어떻게 보면 정직한 프로세스라고 생각해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죠. 크게 대박 나긴 힘드니까(웃음).
이강훈 : 일로서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릴 수 없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그림을, 때로 나의 의지에 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그럴 때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편이죠.
또 우리나라는 판이 작아서, 쏠림 현상이 심해요. 몇몇 검증된 사람들한테만 일이 몰리는 거죠. 출판계가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최대한 모험을 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이 직업의 가장 큰 문제죠. 안정적으로 수입이 보장되기 쉽지 않다는 것. 다른 방법은 없는 거 같아요. 꾸준히 그려서,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보여주는 수밖에요. ‘아, 이런 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인식을 갖게끔 스스로 증명을 하는 거죠.
저는 특정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이런 식으로도, 저런 식으로도 그려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것 말고도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그걸 그림으로 잘 풀어내는 사람…. 내가 무엇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찾고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강훈 : 형태는 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종이책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마 매체는 많이 변화하겠지만, 확실한 건 이미지는 더 많이 소비 될 것이라는 점이에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 이미지에 대한 수요는 많이 늘어났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콘텐츠 자체를 만드는 자립형 생산자가 될 수도 있고,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어린 친구들이 작업하는 걸 보면, 우리 때처럼 시장이 한정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파인 아트와 일러스트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파인 아트에 가까운 전시도 많이 하고요. 각종 브랜드에서 그림을 우리 제품과 콜라보레이션해 적용하고 싶다는 요청도 많이 옵니다. 당장 수입 면에서 안정화되는 추세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루트로 작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이강훈 : 제일 중요한 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그게 즐거운 친구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많이 그려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 다음엔, 혼자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클라이언트 나아가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작업이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 마음대로 그리는 그림으로는 직업적인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할 수 없어요. 계속 자신을 유지하되 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인지해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할 듯해요. 모든 경험을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좋은 게 책이나 영화 등이겠죠. 혼자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요. 잡다한 생각들을 하면서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에너지를 얻게 되죠.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문화적인 경험들을 많이 하면,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사고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있어요. 저는 잡다한 데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이 직업에 어울릴 것 같아요. 너무 외골수 같은 성격보다는 좀 산만 하더라도 이것저것 기웃기웃하는 친구들이요.
또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SNS나 텀블러 등 온라인 매체들을 많이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최근엔 고등학생인데 이미 그림으로 인기 얻는 친구들도 많아요. 매체들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거죠. 사람들이 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도 알 수 있고, 더 좋은 건, 단순히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거죠. 그건 우연찮게 일로도 연결이 되곤 해요. 그런 기회는 누구한테나 가능한 거라서, 온라인 매체를 어릴 때부터 잘 활용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해요.
[출처] 서울교육나침반
https://blog.naver.com/seouledu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