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의 각도, 다시

균열 이후의 조용한 아침

by seoul

《립스틱의 각도, 다시》_ 균열 이후의 조용한 아침


제랄린의 앉은자리가 45도 소산나를 향해 기울었다.

사무실의 공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제랄린은 여전히 중심에 앉아 있었지만,
그 중심의 힘은 이미 균열을 품고 있었다.

소산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 침묵이 이제는 권력이 되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시선이 오갔다.
제랄린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파툴린의 발끝은 조급하게 바닥을 긁었다.

균열의 첫 신호, 파툴린.

늘 먼저 쏘고, 가장 늦게 후회했다.


PM13:05

점심시간 이후 숨도 돌리지 못한 채 회의는 시작되었다.

모두가 앉자마자 리허설을 마친 연기는 시작되었다.

“소산나, 어제 요청한 일 아직 안 하셨어요?”
공격의 시작은 언제나 파툴린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소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파툴린의 목을 조였다.
그녀는 소산나보다 앞서고 싶었고,
잘나 보이고 싶었다.

소산나는 파툴린을 한번 보고, 반대편 에타니를 쳐다보았다.

파툴린의 옆자리 에타니.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

'네, 안 했어요. 메일 오면 하라고... 해서'

옆에서 에타니가 급하게 말을 가로챘다.

'메일이 와서 요청한 거였어요.'

그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침묵, 그리고는

소산나가 해야할 일이 예정된 시간이 완료되지 않은 양 넘어갔다.

'그럼 어떻게?' 놀란 척 제랄린이 말끝을 흐린다.

일을 안 한 사람이 된 소산나.

파툴린이 상황을 정리하는 듯 파툴린 선에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무슨 전개인지, 어처구니없는 건 소산나 뿐이었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 정보, 누군가의 예정된 실수를 지켜보는 하이에나.

정확하지 않은 지시,

생략된 정보.

보고서 한 줄, 주소 라벨 하나.
사소한 오타가 칼날처럼 돌아와 소산나를 찔렀다.

제랄린의 시선이 차갑게 꽂혔다.
“그 부분, 확인했어요?”

모두의 타깃이 된 소산나. 더 이상의 협업의 의미는 없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신뢰가 잘려나갔다.

'회의 끝나는 대로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흔들림 없이, 나즈막이 말했다.

파툴린의 욕망은 언제나 타이밍을 모른다.

싸늘할 정도로 침착한 답변에 삐끗하는 파툴린의 선제공격.

그리고 빠르게 부상하는 그림자들.

꼬리를 내리고 있던 에타니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서류 완료되면, 제가 오후에 발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한 문장이었다.
공기의 온도가 열탕에서 냉탕으로 냉탕에서 열탕으로 바뀌었다.

그 말은 ‘이제 나도 판 위에 올라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스미리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의 결은 달라져 있었다.
비정규직, 투명인간이라 불리던 그녀의 자리가 이제는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감은 목소리보다 오래 남았다.

붕괴하는 환상의 콤비는 더 이상 핑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에게 던진 검열이 되려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제랄린의 지시는 엇박으로 튀었고,
파툴린의 보고는 늘 늦었다.
서로를 의심하며 던진 말들이
벽을 맞고 그대로 돌아왔다.

폴라, 에타니, 스미리, 록시 —
모두가 그 장면을 봤다.
소산나에게 향하던 공격이
이제 제랄린과 파툴린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

위엄도, 신뢰도 사라졌다.
그들의 권력은 무게를 잃은 풍선처럼 공중에 떴다.

새로운 타깃 소산나는 알았다.

권력은 무너질 때, 항상 새로운 희생양을 찾는다는 걸.

그 화살이 이번엔 폴라를 향했다.
입술색을 잃은 그녀는 조심스러움만이 남았다.

“야, 그건 네 선에서 정리할 문제가 아니야?”
“… 그냥 혹시 몰라서요.”

폴라의 이름대신, '야'로 불려져 버렸다.
“그 말, 요즘 너무 자주 들리네요.”

제랄린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파툴린은 옆에서 조용히 맞장구쳤다.
같이 무너졌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밟아야 살아남는 사람들.

폴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대체자의 자리에 서 있다는 걸.


소산나의 메모, 폴라는 소산나를 바라봤다.

눈을 마주친 채,

책상 위 메모지를 가리키며 무슨 뜻이냐고 소리 없이 물었다.

그녀는 메모를 폴라의 책 밑에 밀어 넣고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엔 너야, 마음 단단히 먹어'

폴라는 메모를 내려다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떨렸다. 잃어버린 색이 돌아올 리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사무실은 다시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라,
다음 폭풍의 전조였다.

소산나는 생각했다.
균열은 언제나 작은 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틈을 먼저 본 사람이,
결국 판을 움직인다.

이제는 방어가 아니라, 재구성의 시간이었다.

커서가 깜박였다.


“그걸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


빠른 사람을 미워하는 조직은
결국, 속도를 잃은 사람마저 쏜다.

다시, 각도의 끝에서 총구는 폴라를 향했다.

그리고 공기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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