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제랄린X파툴린=소산나

by seoul

《공식》_제랄린X파툴린=소산나


공식은 언제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만이 그 안에 갇힌다.

제랄린의 공식은 단순했다.


권력 = 아부 + 꼭두각시 - 역량


파툴린의 공식은 더 단순했다.

파툴린 = 아부 = 아부 = 아부


사무실은 마치 한 편의 방정식 같았다.
누가 중심에 놓이고, 누가 괄호 안에 묶이는지가 매일 달라지는 수식.
모두가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답은 오직 한 사람만 안다.
제랄린 — 이 회사의 실질적인 건물주의 딸,
법대 출신, ‘아빠의 딸’이라는 레이블이 붙은 여자.

그녀는 늘 자신이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력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에게만 관대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하는 이유가 ‘소유’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만큼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랄린은 ‘통제’를 선택했다.
질서로 보이는 통제, 예의로 포장된 폭력.
그녀의 말투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움은 서류보다 더 날카로웠다.

파툴린은 그런 제랄린을 동경했다.
처음엔 존경이었고, 곧 집착이 되었다.

제랄린의 옆자리에 앉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를 “2인자”라 불렀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불러주지 않았다.
그녀는 늘 말끝마다 “제가 대신 확인했어요”를 붙였다.
그 말에는 ‘내가 없으면 불안하죠?’라는 은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제랄린은 결코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투명한 벽이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밀려나는 거리,
마치 전류처럼 “닿을 수는 있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온도였다.

파툴린은 그 온도를 ‘승인의 신호’로 착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신저를 확인하며,
‘읽음’ 표시 하나에 숨을 고르곤 했다.
그녀의 하루는 제랄린의 반응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제랄린이 미소를 지으면, 파툴린의 하루는 성공이었다.
제랄린이 무표정하면, 그날은 실패였다.

그들의 공식은 늘 핑퐁처럼 오갔다.

“이건 제가 확인할게요.”
“좋아요, 파툴린 씨가 정리해주세요.”
“그럼 보고는 제 이름으로?”
“…네, 그렇게 하세요.”

핑—퐁—
명령과 복종이 오갔다.
하지만 그것은 협업이 아니라,
서로의 불안을 숨기기 위한 리듬이었다.

그들의 공식은 완벽했다.
다만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말,
아무 결과도 낳지 않는 ‘자기 복제의 언어’였다.
그들의 대화는 언제나 제자리였다.
마치 오래된 엘리베이터처럼,
버튼은 눌러지지만 층수는 바뀌지 않았다.

소산나는 그 공식의 바깥에 있었다.
그녀는 이들의 게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봤다.
둘 다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은 듯 보였지만,
사실은 서로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었다.

제랄린은 권력으로 불안을 감추고,
파툴린은 아부로 존재를 증명했다.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공식’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갉아먹는 독이었다.

파툴린은 가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아빠 있는데… 왜 저 사람만 인정받는 거야?”

질투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오래된 습관 같았다.

누군가의 승인에 목매는 버릇, 누군가의 눈빛을 기다리는 하루.

그녀는 제랄린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말투, 억양,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각도까지.

그렇게 닮아갈수록, 더 멀어졌다.

제랄린이 되는 게 아니라, 제랄린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드는 일이었으니까.

제랄린이 “좋아요”라고 말하면,
파툴린은 “좋아요, 좋아요”라고 반복했다.
그 반복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믿음으로 착각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제랄린의 그림자는 파툴린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말끝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할수록,
그 말은 스스로의 족쇄가 되어 팔목을 죄었다.

제랄린은 파툴린의 충성을 즐겼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해했다.
파툴린의 존재는 거울 같았다.
자신의 불안을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거울.

“파툴린 씨,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그 말은 ‘고맙다’가 아니라 ‘거슬린다’였다.
그러나 파툴린은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달려들었다.

‘이제 정말 믿어줄 거야.’

그녀는 제랄린의 곁을 지키는 걸 “의무”라 여겼다.

하지만 제랄린에게 파툴린은 “소음”이었다.

소산나는 그 둘의 관계를 멀찍이서 관찰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파툴린이 제랄린을 닮을수록,
제랄린은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된다는 걸.

그건 닮음이 아니라 위협이었다.
복제는 언제나 원본을 불안하게 만든다.

제랄린은 파툴린을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사라지길 바랐다.
그녀의 ‘공식’이 완벽하려면,
곱셈은 필요하지만 나눗셈은 불필요했다.
언제든 필요할 때만 불러 쓸 수 있는 ‘기능’.
그게 파툴린의 자리였다.

어느 날, 제랄린이 회의 중에 말했다.
“이건 제가 직접 검토할게요.”
그 말은 아무렇지 않게 들렸지만,
파툴린에게는 심장이 멎는 소리였다.

‘직접?’
그 한 단어에 모든 게 무너졌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펜촉이 종이를 긁었다.
잉크 자국이 번지듯,
그녀의 자존심도 번졌다.

회의가 끝난 뒤,
파툴린은 메신저 창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혹시… 제가 먼저 정리해놓을까요?”
보내지 못한 문장이 사라졌다.

그날 오후, 소산나는 커피를 내리며 생각했다.
이 사무실은 더 이상 구조가 아니다.
이건 공식을 잃은 미로다.

누구는 더하기만 하고,
누구는 나누기만 하며,
누구는 계산을 멈췄다.

그중 유일하게 결과값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툴린은 여전히 제랄린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제랄린은 여전히 불안을 품고 있었다.
둘의 공식은 그렇게 매일 반복됐다.


제랄린 = 권력 – 역량 + 아부 + 꼭두각시
파툴린 = 아부 × 3


소산나는 모니터 앞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공식이 아니라, 습관이야.”

그리고 그날 회의록 첫 줄에 이렇게 적었다.


공식이란, 깨지기 전까진 질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깨지고 나서야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퇴근 무렵, 창문 사이로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제랄린은 여전히 완벽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자리, 파툴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두 사람의 실루엣이 겹쳤다 흩어졌다.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상하가 아니라,
서로의 불안을 반사시키는 평면이었다.

소산나는 그 장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균열의 다음 공식이 완성되고 있었다.


“공식은 결국, 사람을 계산하기 위한 도구야.
하지만 사람은 숫자가 아니잖아.”


그녀는 조용히 립스틱을 꺼내 들었다.
색은 붉지 않았다.
대신 그 각도는, 정확했다.


제랄린은 회의가 끝난 뒤 거울 앞에 섰다.
투명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끝, 입꼬리를 올리는 각도,
그 모든 제스처가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투.
그 어조.
방금 전 파툴린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

순간, 제랄린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 자신의 언어를 흉내 내는 일은
인정을 넘어 ‘침범’이었다.
닮음은 애정의 표현이지만,
너무 닮으면 위협이 된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커피잔을 들었다.
찻잔의 표면에 파툴린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미세한 떨림, 억눌린 열망.

“그 애, 점점 나를 베껴.”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건 존경이 아니라, 모방이지.”

그날 오후, 제랄린은 파툴린을 불렀다.

“파툴린 씨, 오늘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제 그만 따라와’*라는 냉기가 담겨 있었다.

파툴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이미 무너진 믿음 위에 떠 있었다.
그녀는 몰랐다.
자신이 닮으려 했던 대상이
이제 자신을 지워버리려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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