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 긁히는 바게트 대신, 부드러운 치아바타를 택하라
좌측 해마는 최근의 일을,
우측 해마는 태어난 이후의 모든 일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나는,
기억의 필름이 군데군데 잘려나간 사람처럼 살고 있다.
“그때 말이야, 기억나?”
“내가? 우리가? …그랬나?”
대화의 흐름이 이쯤 되면 늘 나는 멍해진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떨어져 나간 장면처럼,
텅 빈 페이지만 남아있다.
예전엔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남들이 스쳐가는 일도, 나는 냄새와 공기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3년 여름을 기점으로 이전의 일부 기억이 지워져버렸다.
고통 때문일까, 피로 때문일까.
삶이 평탄하지 못했다.
그 흔들림이 결국 뇌의 어딘가를 찢어놓은 것 같았다.
고통의 기억은 이상하게 선명한데,
숨겨놓고 몰래 꺼내어 웃을만한 친구와 함께였던 기억들은 사라졌다.
오늘, 오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며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여기 우리 예전에 같이 갔던 카페 옆이야.”
“어? 우리가 거길 같이 갔었어?”
“야, 거기 뒤쪽 담배 피던 데 있잖아. 완전 뻑뻑 펴댔잖아.”
나는 웃었다.
“그래? 우리가 그랬어? 하하…”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통화를 끊고 나서,
이건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전시회에서
'우리 만나 적 있었잖아요.'
'아. 제가요? 아아, 이제 기억나네요.'
한참을 상황을 이야기 해주신 덕에 기억났다.
그런데 친구와의 기억은 지워진듯하다.
아마 우측 해마,
그 오랜 기억의 창고에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기억해내지 않아도 되는 기억이라면
지워져도 괜찮지 않을까?
입천장 긁히는 껄끄러운 기억보다는
그냥 부드럽게 잊어버리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 아이에게 물었다.
“져녁은 뭐 먹을 거야?”
“엄마가 먹이고 싶은 걸로 먹여줘.”
“그럼 어제 먹은 양념 돼지갈비 먹을까?'
'응, 나 그거 좋아, 진짜 맛있었어.”
어제 먹은 걸 또 먹으며,
나는 웃었다.
같은 맛인데, 이상하게 기억의 결은 다르다.
맛은 그대로인데, 마음은 조금 짜다.
씁쓸함은 감출수가 없다.
덜어진 기억에 고통만 고스란히 짙어졌다.
상처란 결국, 기억을 품은 감정의 잔상이니까.
받은 사람만 후유증을 남긴다.
오늘 만큼은 그냥 잊기로 했다.
“입천장 긁히는 기억 대신,
부드럽게 잊어버리는 연습을 하자.
기억이 사라져도, 오늘의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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