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 긁히는 바게트 대신, 부드러운 치아바타를 택하라
극복한 줄 알았다.
상처를 접고 꿰맨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또 다른 구멍이 뚫렸다.
사는 일이 왜 이리도 끈질기게 나를 시험하는지, 오늘도 묻는다.
아이의 작은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
“사는 건 살수록 어려워.”
한마디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살면 살수록 복잡해지고, 다시 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유난히 꼬였다.
치과에서의 오진으로 의치가 손상됐다.
“새 보철을 해야겠다”는 억지 말 앞에서
내 거절은 ‘모른 척’으로 둔갑했고, 분위기는 싸해졌다.
의사는 멈췄고, 나도 멈췄다.
의료과실이라는 말이 이렇게 허탈하게 내려앉을 줄은 몰랐다.
몸이 피로로 무너졌고, 마음은 더 아팠다.
아이도 하루가 피곤했는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잠들었다.
나는 그 작고 따뜻한 숨을 보며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한가’ 묻는다.
전화 한 통, 엄마의 목소리.
“별일 없냐”는 평범한 안부가 오늘처럼 아프게 닿을 때가 있다.
말하기 싫었다. 말하면 더 아파질 것 같았다.
돈 얘기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내게 ‘한 번 건들면 돈이 깨질까 걱정하냐’고 푸시했을 때,
나는 화를 내지 못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상황과 통증과 그 괜한 걸 건드리는 태도였다.
그들의 무심함이, 그들의 방치가 나를 더 갉아먹었다.
“내가 변호사였으면 달랐을까.”
화가 나서 떠오르는 상상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몸살이 나버렸다. 지친 아이와 저녁잠이 들어버렸다.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도통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이의 참관수업을 보고 와서야 조금 숨이 돌았다.
나를 챙겨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비릿하게 가슴을 찌른다.
저녁, 아이와 외식.
나를 챙겨주고 싶을 때 아이와 외식을 한다.
직접 만든 음식이 아닌, 다른이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직접 만든 음식보다 맛있지는 않지만 그 편의에 감사하다.
나는 넓은 의자에 기대 그릇을 바라보며 속을 비웠다.
뭔가를 발로 차버리고 싶고, 문을 닫아버리고 싶고, 세상을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그럼에도 아이한테는 '맞아, 사는건 살 수록 어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은 이상한거야.'라고 말했다.
그 아이가 작은 손으로 집에 가는 길 아트박스로 이끌었다.
잠깐 덜 거칠어졌다. '그래 귀엽고 예쁜것들 보고 가자' 했다.
한참을 둘러보더니, 갖고싶은 물건이 하나, 둘 생겼는지,
'엄마, 갖고 싶은게 생겼어~' 하고 바람을 잡는다.
무얼 갖고 싶은지 궁굼해서 한번 보자 했다.
그리고는, 아이의 협박—“안 사주면 드러눕겠다”—에 웃어버렸다.
그 장난스런 투정이 얼마나 순한 위로인지,
나는 그 장난감 랜덤박스를 집어들며 알게 되었다.
“그래 나한텐 다 돌던져도, 그래, 너만은 행복해라.”
하는 마음으로 장난감을 허락했다.
아이의 만족을 채워주는 것이 잠깐이나마 행복 하나를 샀다.
오늘의 결론은 씁쓸하다.
반복되는 후유증과 무능해져버리는 내 위치,
타인의 무례함은 여전히 나를 긁어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택해야 하는 태도는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움은 전략이다.
상처받은 날에도, 아이의 웃음 앞에서 부드러움을 택하는 건 약함이 아니다.
그건 남은 것들에 대한 기념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작은 의식이다.
입천장 긁히는 날엔 바게트처럼 날카로울 수 있지만,
나는 오늘도 치아바타를 골라야 한다.
억지 부드러움이라도 씹어 삼켜야, 내일을 조금 더 견딜 힘을 만들겠지.
“반복되는 고통은 세상의 일부일지 몰라도,
부드러움을 선택하는 건 억지라도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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