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 대신, 적당히 넘김으로

입천장 긁히는 바게트 대신, 부드러운 치아바타를 택하라

by seoul

“입천장 긁히는 괘씸죄 대신, 부드러운 적당히로 그냥 넘김을 택하라”


하— 오늘은 아들내미의 하반기 발표회 날이었다.
초등학생이라 그런지 행사가 참 많다.
참관 수업, 발표회, 운동회, 체험학습까지.
아이의 성장 과정을 챙긴다는 건, 기쁨이자 체력전이다.

서둘러 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도착해 좋은 자리를 잡았다.
3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입천장이 긁히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우리 아이 순서가 앞쪽이라 버틸 만했다.

강당이 싸늘했다.

그래서 아침에 두툼한 겉옷을 챙겨 입혀 보냈는데,
그 선택이 기특했다.

아이의 발표회용 옷도 신경 써서 챙겼다.
“엄마, 이 옷 입고 발표해야 돼 알지?.”
그렇게 외식 후 함께 산 옷을 챙기던 기억이 스쳐갔다.

드디어 무대 위에 아이가 섰다.
방과 후 줄넘기반에서 배운 기술로 음악에 맞춰 줄을 넘었다.
서툴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1학년들의 엇박, 삐걱거림, 실수까지 귀여웠다.
이런 불완전함이야말로 삶의 가장 순수한 리듬 아닐까.

뒤이어 장구 공연이 이어졌다.
“상모야 돌아가~” 흥겨운 리듬에 맞춰 장구채를 흔드는 아이의 손.
아빠가 젊은 시절 악단에서 장구를 쳤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 장면을 담은 흑백사진을 늘 지갑에 넣고 다니던 내 모습이 겹쳤다.
“외할아버지도 장구 진짜 잘 치셨어.”
그 말을 기억했던 걸까.
“엄마, 이번엔 꼭 와야 돼.”
그래, 오늘은 꼭 가야 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움직였다.

아이의 장구 소리가 강당에 울릴 때,
내 마음속 어딘가도 덩실덩실 따라 쳤다.
그렇게 나의 미션은 완수됐다.
작은 무대 위의 아이는,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발표회가 끝난 뒤,
나는 친구의 아이 공연 영상도 찍어 메신저로 보내며
서로의 수고를 나눴다.
짧지만 훈훈한 인간관계의 온도.
그게 오늘의 작은 위로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래, 이제 나의 일로 돌아가자.’
공모전 마감이 코앞이었다.
주말에 여유롭게 하려던 계획은
다음 일거리들 때문에 무너졌다.

“왜 일은 쉬어도 생기냐.”
불평을 삼키며 작업을 시작했다.
의외로 손은 잘 풀렸다.
칼라 톤이 살짝 애매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딱, 적당히 괜찮았다.

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길.
비보호 좌회전 구간, 파란불이 떠 있었지만 앞차는 꼼짝도 안 했다.
참다가 클락션을 눌렀다.
그 순간, 돌아온 건…
가운데 손가락 하나.

“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호 대기 동안, 나는 그 손가락을 마주 보며
마음속에서 수십 가지 생각이 오갔다.
‘찍어둘까? 신고할까? 그래, 괘씸죄야 이건.’
하지만 그때,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요즘 엄마는 운전할 때 화가 많아.”
그래, 맞다.
나도 그랬다.
불편한 세상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다시 나를 덮쳤을 뿐이다.

결국, 신고는 하지 않았다.
괘씸하지만 적당히 넘겼다.
세상엔 괘씸함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그건 그 괘씸함이 내 안에 오래 머무는 것이다.

오늘의 결론은 간단하다.


입천장 긁히는 괘씸죄 대신, 부드러운 적당히로 그냥 넘김을 택하라.


세상은 불합리하고, 사람은 종종 무례하지만
그럼에도 부드럽게 사는 건 나를 위한 예의다.


“괘씸함을 품으면 세상도 나를 닮아간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부드럽게 적당히를 선택하자.”


#아이의발표회 #괘씸죄의철학 #부드러운적당히 #치아바타시리즈

이전 23화입천창 긁히는 후유증 대신...극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