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 긁히는 바게트 대신, 부드러운 치아바타를 택하라.
가끔은 멀어지는 게, 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한 발 물러서는 일은
패배가 아니라 생존일 때가 있다.
오늘은 그걸 새삼 실감했다.
점심시간, 오랜만에 연락 온 지인이 있었다.
“언니, 요즘 잘 지내요?”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온 말 한마디.
“언니는 여전하네요. 그런 게 좀 피곤하죠.”
그 말이 내 안쪽 어딘가를 긁어냈다.
괜히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은 이미 쩍 갈라졌다.
피곤하다고, 여전하다고,
그 단어들이 무심하게 던져졌지만 묘하게 무게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바로 되받아쳤을 거다.
‘그래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는 게 장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여전한 게 뭐 어때서.’
사람 사이의 거리에는
보이지 않는 ‘기대선’이 있다.
그 선을 조금만 넘으면 부담이 되고,
조금만 뒤로 물러서면 무심해진다.
예전의 나는 늘 맞춰주려 했다.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내 시간을 쪼개고 마음을 다 썼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의례적인 안부나, 부담스러운 기대뿐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 선을 지키려 한다.
먼저 연락이 와도,
“다음에 봐요.”
“요즘은 좀 바빠서.”
부드럽게 거리를 둔다.
딱, 내가 숨 쉴 만큼만.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흐르는 불빛들을 보며 생각했다.
가까웠던 사람 중엔 이제 이름조차 꺼내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가겠지.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면
입천장이 긁히는 듯한 묘한 감정이 올라오지만,
이제는 그 감정조차 부드럽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됐다.
모든 인연은 소모된다.
그 소모가 자연스러운 이별이 되면 좋겠지만,
때론 부딪히고 찢기며 사라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다음번엔 조금 더 부드럽게 멀어지자.’
집에 돌아오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친구랑 싸웠어?”
“응, 아니. 그냥… 거리를 조금 뒀어.”
“거리가 뭐야?”
“음, 너무 가까우면 다칠 때가 있거든.”
“아~ 그래서 엄마가 부드럽게 멀어졌구나.”
그 단어 — ‘부드럽게’ —
오늘 하루를 정리해주는 문장이었다.
입천장 긁히는 인연 대신, 부드러운 거리두기를 택하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죄가 아니다.
때로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고,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다.
� “멀어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부드럽게 거리를 두는 건,
여전히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지막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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