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이가 말했다.
“좋은 건가?”
“좋은 거지!!”
“좋은 건지 모르겠어, 이상해.”
“걱정돼?”
“아니… 좋아.”
고민 끝에 아이는 그제야 안도한 기쁨을 조금 내비쳤다.
엄마가 평소보다 일찍 데리러 온 시간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일하는 시간, 그리고 자신이 늘 마지막 하교자가 된다는 사실을.
싫었지만, 크게 불평하지는 못했다.
“엄마, 난 왜 항상 늦게 가?”
“엄마가 일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서 빨리 온 거야.
전보다 20분이나 더 일찍 왔어.”
아이에게는 20분이 의미 없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더 조바심이 났고, 더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이에게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주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사실 아이의 투정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삶 자체가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언제 안정될지 모르는 미래를 그냥 지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서둘러야 했고, 서두르지 못하면 스스로를 윽박질렀다. 그 반복이었다.
고민 끝에 방향을 바꿨다.
남의 일에서 나의 일로, 해야 하는 일에서 할 수 있는 일로.
그러자 아이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일찍 데리러 와줄 수 있어?”
“그럼. 그렇게 할게.”
일과 양육 중 어느 하나도 완벽히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구슬펐다.
하지만 해야 하는 쪽이든, 할 수 있는 쪽이든 노력과 희생의 양은 같고 결과만 다르다는 결론에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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