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 몸은 나를 배반한다.
《소비되는 몸》_결국 몸은 나를 배반한다.
나는 해고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절대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앞에 서서 말했다.
“그만 나오세요.”
그 순간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답을 듣지 않아도 알았기 때문이다. 규범과 규칙은 언제나 나를 겨냥해 왔다. 이 회사에서, 이 사회에서, 나는 늘 심판받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가방을 휘둘러 그녀를 때렸다. 내 손이 아닌,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자제력을 잃은 내 몸은, 내 정신보다 앞서 분노를 표출했다. 그 행위는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굴욕이었다. 폭력에 대한 나의 반란이 결국 또 하나의 폭력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내 정신은 자제하라 명령했지만, 내 몸은 그 명령을 배반했다.
나는 알았다. 내 몸은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 내 몸은 결국 나를 배반한다.
하루하루는 소비였다.
보고서 하나, 오타 하나, 봉투 하나. 그 사소한 것들에 내가 쏟아낸 에너지는 끝내 ‘검열당한 흔적’으로 남았다. 규범은 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악의 도구였고, 권력자의 심판대였다. 나는 매일 가면무도회에 끌려다니는 실험체였다.
그러나 내 몸은 더 잔인했다.
반복되는 통제, 반복되는 모욕, 반복되는 수치심. 그것들은 기록으로만 남지 않았다. 내 몸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피로는 뱃살로, 분노는 혈압으로, 절망은 혈당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의사는 말했다. “대사증후군 초기입니다.”
나는 웃었다. 내 몸이 결국 사회의 검열을 대신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규범과 권력이 나를 압박하던 그 폭력은, 내 몸속에서 또 다른 폭력으로 되살아났다. 내 몸이 나를 벌하고 있었다.
나는 엄지발가락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적이 있다. 정시 퇴근을 위해 인터넷 전원을 발로 꺼버렸다. 순간, 전화가 끊기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작은 해방감이 나를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곧 오타찾기 게임을 만들어냈다. 놀이로 포장된 폭력이자, 회사판 오징어게임이었다.
그 모든 장면은 내 정신을 잠식했고, 내 몸은 그것을 기억했다. 과식과 폭식, 무기력과 피로, 억눌린 분노는 결국 대사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내 몸은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통제에 맞선 반란 대신, 내 몸은 나를 무너뜨렸다.
몸은 결국 소비된다. 회사는 내 노동을 소비했고, 권력자는 내 자존심을 소비했다. 남은 것은 고장 난 몸뿐이었다. 사회는 언제나 말한다.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관리란 무엇인가. 무너진 몸은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검열과 모욕, 반복되는 수치와 폭력이 만든 결과였다.
나는 깨달았다.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사회의 규범과 권력, 집단의 위계와 폭력이 몸을 잠식한다. 결국 몸은 나를 배반한다. 내 정신이 아무리 기록을 통해 저항해도, 몸은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제야 글로 남길 수 있다.
내가 본 해고의 꿈은 단순한 불안의 반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현실 속에서 매일 조금씩 집행되고 있던 해고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타 하나, 지적 한마디, 공개적인 모욕. 그것들이 쌓여 결국 내 몸을 해고했다.
몸은 나를 배신했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을 증언했다.
내가 겪은 통제, 내가 받은 폭력, 내가 삼킨 분노.
그 모든 것이 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보고서를 쓴다.
실험체의 기록으로, 배신당한 몸의 일기로.
그리고 언젠가, 내 몸이 나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와 손을 잡아줄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