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없는 입술

지워진 입술

by seoul

《색 없는 입술》


입술에 색이 사라질 때,
그것은 단순히 화장이 지워진 게 아니다.
존재의 선명함이 흐려지는 순간이다.

폴라는 ‘재입사자’라는 타이틀을 들고 돌아왔다.
다시 같은 직급, 그러나 이전 커리어의 권위를 등에 업은 경력자.
마치 월드 피스를 외치는 비둘기처럼,
삭막한 권력의 장으로 곧장 날아들었다.

시작은 좋았다.
그녀의 생기, 활기,
“나는 다시 시작한다”는 눈빛.
무채색으로 흐르던 사무실 공기는
순간, 폴라의 존재로 흔들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곳은 누구의 활기도 오래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폴라의 입술은 서서히 빛을 잃었다.
생기 대신 피로, 활기 대신 형광등 아래의 무표정.
권력의 장치는 그녀의 색을 지워내며
그녀를 점점 투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재입사 전, 소산나와 폴라는
단순히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파툴린의 초대로
케이크가 놓인 작은 자리에 함께 모였다.

에타니, 록시, 스미리, 그리고 소산나.
모두가 억지 웃음을 나누며 케이크를 씹었다.
달콤해야 할 맛은
긴장된 공기 속에서 종이처럼 무미건조했다.

파툴린과 폴라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
록시가 불쑥 소산나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소산나,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하지 마세요.”

순간, 공기가 갈라졌다.
소산나는 고개를 돌려,
폴라와 파툴린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대답은 없었다.
침묵은 곧 동조였고,
권력의 무대에서는 언제나 모호함이 우위를 차지했다.

폴라는 여전히 미소 짓는다.
그러나 그 미소는 더 이상 생기를 띠지 못한다.
색 없는 입술로,
그녀는 권력의 질서 속에 천천히 맞춰져 간다.

소산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곳에선 누구도 예외가 아니야.
립스틱 하나의 각도, 색 하나의 유무가
모두의 위치를 결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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