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줄타기
《선 위에 서다.》_줄타기
웃음은 언제나 각도가 있다. 어떤 웃음은 환영이고, 어떤 웃음은 방패이며,
또 어떤 웃음은 공격이 된다.
소산나는 출근과 동시에 미소를 걸었다. 그 미소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회의실에서 둘러앉아 시선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
복도에서 불편한 마주침에도 예의상 인사를 건네야 한다.
커피머신 앞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루틴처럼 커피를 내린다.
웃음은 가장 값싼 장식품처럼 소비됐다.
제랄린은 요즘 묘하게 조용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메신저에선 파툴린과 시그널을 주고받는다.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소산나는 알았다.
제랄린이 자신의 SNS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거기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쓰레드가 있었고,
“녹음하세요”라는 댓글도 달려 있었다.
그 이후로 제랄린은 말을 줄였다.
혹시 녹음될까 봐.
웃음은 줄었지만, 눈빛은 더 날카로워졌다.
사무실 공기는 가끔 공연장 같았다.
에타니는 과장된 웃음을 던졌고,
폴라는 상황에 맞춘 미소로 눈치를 챘다.
파툴린과 스미리는 억지웃음으로 동조했고,
록시는 가끔 웃지 않는 것으로 반항했다.
그러나 그 무대의 중심엔 언제나 소산나가 있었다.
웃음을 강요받는 대상,
그리고 웃음 하나로 서열이 흔들리는 사람.
“소산나 씨, 왜 웃지 않아요?”
회의 도중 파툴린의 말에 순간 시선이 쏠렸다.
소산나는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차갑게 각도를 틀어
칼날처럼 빛났다.
그 순간 파툴린은 말을 멈췄다.
웃음이 방패가 아니라 반격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제랄린은 여전히 모니터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산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웃음의 각도는 내가 정해.
네가 두려워하는 건 내 녹음이 아니라,
내가 웃음을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거겠지.”
줄 위에 선다는 건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균형을 잡으면 박수가 쏟아지지만,
한 발 삐끗하면 추락은 순식간이다.
록시는 한발 물러나 무대 가장자리에 있었다. 병풍처럼 서 있다가도, 가끔은 스포트라이트를 욕망했다.
소산나를 넘어서고, 제랄린의 그림자 밑까지 뉴 라이징 스타로 등극하겠다는 꿈.
한때는 그 선 위에 서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줄은 생각보다 얇았고, 그 위에 올라설 만큼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소산나와의 작은 해프닝이 그녀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날선 농담, 우위를 둔 언쟁,
그러나 그 순간부터 불운과 시선은 모두 록시에게 몰렸다.
회사 근처로 이사 온 건 더 큰 함정이었다.
“가까우니까 더 일찍 와라.”
“집이 가깝잖아, 늦을 이유 없지.”
빅이슈를 좇듯, 스스로 옮겨온 주소는 결국 불필요한 희생으로 돌아왔다.
이삿짐을 싸고, 풀고, 다시 싸고. 삶의 무게는 곧 일의 피로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발을 삐끗한 모양이다. 쩔뚝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록시.
소산나는 잠시 놀랐으나, 일부러 묻지 않았다. 사무실은 이미 록시의 발목을 대신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파툴린과의 대화에서 록시는 퇴근 후 들른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발을 삐끗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마가 끼었네, 마가, 터가 안 좋은가 보내..." 록시에게 운이 연달아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단순한 사고였지만, 그녀의 앞길은 이상하리만큼 계속 막혔다.
서류는 틀렸고, 보고는 늦었고, 작은 실수들은 더 크게 확대됐다.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아니면 줄 위에 선 순간부터 예정된 추락이었을까.
제랄린은 여전히 여왕벌처럼 웃었고, 파툴린은 권력의 호구처럼 뒤를 따랐다.
폴라는 색을 잃은 입술로 자리를 지켰고, 스미리는 무의미한 고개 끄덕임으로 하루를 버텼다.
에타니는 여전히 벽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록시는 줄에서 떨어졌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은 채.
소산나는 그 모습을 묘하게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립스틱의 각도는 웃음도, 권력도 바꿔놓지만, 줄 위에 서는 순간은 언제나 단 하나야.
버티거나, 떨어지거나.”
소산나는 지난 밤 일이 생각이 났다. 그날도 여전히 씩씩대며 돌아온 날이었다.
맥주 한잔 마시면서 화를 누르던 날이 었다.
여왕벌 제랄린, 충신 파툴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부채질 하던 록시.
"와, 진짜 짜증나네...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지?"
"록시, 록시, 이 록시를... "
소산나는 하얀 종이에 록시의 이름을 쓰고 잘게 찢었다. 변기에 흘려보내며 씩 웃었다.
그것은 분노의 발작이 아니라, 자신만의 은밀한 의식이었다.
록시 그녀는 부채질하던 바람에 휘말려 결국 자기 불을 키웠다.
권력의 열기에 몸을 던진 대가는 발목을 삐끗한 작은 사고처럼, 일상의 균열로 찾아왔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 록시는 은근히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신기하게도 들어맞은 것이었을까.
소산나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행동에 무섭다 느껴졌다.
서슬퍼런 파툴린과 록시는 닮아 있었다.
권력을 욕망하는 방식도, 웃음의 각도를 계산하는 습관도.
차이가 있다면 파툴린은 여전히 판 위에 있고,
록시는 판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추락한 록시는
자신이 예전의 파툴린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은근히 소산나에게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며,
자신이 아직 판 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소산나의 회심의 미소는 제잘린의 자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미소는 제랄린의 눈빛을 서슬퍼렇게 얼어붙었다.
사무실은 잠시 고요했지만, 그 침묵은 오래 가지 않을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