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

SNS 속처럼 나는 공허하다.

by seoul

《현실과 가상》_SNS 속처럼 나는 공허하다


나는 행복을 기록하지 않는다.
아이와 보낸 시간들을 기록한다.
행복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순간은 대체로 타인을 위한 전시일 뿐이니까. 내가 남기는 기록은 아이와 함께한 시간, 아이와 함께한 웃음, 아이와 함께한 나의 고단한 일상이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기록이었으나, 어느 순간 ‘아이와 나’가 됐다. 내 이름보다, 내 감정보다, 내 존재보다 아이의 웃음과 눈빛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이 곧 내 존재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팔로워들은 유령이었다. 숫자로는 천 명. 그러나 그 천 명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고통을 호소하고, 무식한 욕을 토해낼 때에만 그들은 나타났다.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내가 피를 흘리면 몰려드는 유령처럼. 그들의 눈빛은 위로가 아니라, 구경이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천 명의 팔로워 중 단 세 개의 ‘좋아요’.
의미 없는 숫자 놀음이라 여겼다. 그래서 나는 담담히 기록을 남겼다. 일종의 나의 기억 저장소였다. 내 일기장이자, 내 흑백 사진첩이자, 내 조용한 고백이었다. 그런데 그 저장소는 타인의 침해로 금세 무너졌다.

감추기에 바빴다. 척하기에 바빴다.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내 기록은 더 이상 기록이 아니었다. 틀키지 않기 위해,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포장된 이야기를 남겼다. ‘잘 지내요’, ‘괜찮아요’, ‘행복해요’.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사는 삶이 아니었다. 현실의 나는 초라했고, 분노했고, 공허했다. 기록 속의 나는 환상처럼 반짝였다.

SNS 속의 나는, 결국 가상에 불과했다.
현실의 나는, 공허했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기록을 남겼는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나를 위해서였을까. 처음에는 후자였다. 그러나 팔로워라는 숫자가 붙는 순간, 기록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며, 숨 쉬듯 남긴 순간들은 언제나 평가당했다. 좋아요 몇 개, 댓글 몇 줄. 그것들이 기록의 성패를 가르는 듯했다.

나는 천 명의 유령 속에서 세 개의 숨결만 얻었다.
그마저도 위로가 아니었다.
“힘내.”
“괜찮아질 거야.”
그러나 그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그들은 나의 삶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나의 공허를 메우지 못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SNS는 저장소가 아니라, 무대였다.
나는 무대 위에 서서 연기했다. 누군가의 박수를 갈망하며. 그러나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관객은 유령이었고, 그들은 박수 대신 손가락 하나로 ‘좋아요’를 눌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대는 공허했고, 나는 더욱 고립되었다.

나는 현실 속에서 피폐해졌지만, 가상 속에서는 웃고 있었다.
나는 현실에서 고통을 말했지만, 가상에서는 꾸며냈다.
가상은 현실을 감추는 포장지였다. 하지만 그 포장지는 점점 더 무거운 족쇄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장소를 닫았다.
숨겨야 했다.
타인의 시선이 닿는 순간, 나의 기록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척해야 했고, 무너지는데도 괜찮은 척해야 했다.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조차도 “좋아 보인다”라는 평가로 소비되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검열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현실과 가상은 교차하지 않는다.
현실의 나는 지치고, 공허하고, 분노한다.
가상의 나는 웃고, 꾸미고, 포장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갈라졌다.

그렇다고 기록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이와의 시간은 유일하게 진실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웃는 것도, 내가 울고 있는 것도, 아이와 함께 있는 그 순간만큼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행복을 전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와 나의 삶을 남기기 위해서.

SNS 속에서 나는 공허하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아이와 나는 살아 있다.
그것이 내가 붙잡은 마지막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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