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일 없었던 듯이
《오늘도 살아냈다》_아무일 없었던 듯이
오늘 하루도 끝났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비참하게도, 그러나 기특하게도. 아침마다 모든 게 전쟁이었다.
나는 아침을 싫어한다. 어릴 적 부터 모두들 분주한데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함께하는 일요일 아침. 늦게까지 잠든 나를 아무도 깨우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기 바빴고, 늘 덩그러니 남겨졌었다. 그 무력감이 지금까지 이어지는지, 아침 활동이 너무 싫고 힘들다. 아이를 깨우고, 밥을 차려주고, 등원 준비를 하며 겨우겨우 시간을 맞춘다. 등원길 5분, 교차로에 서 있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루의 시작은 늘 바쁘고, 하루의 끝은 늘 고단하다. 그러나 나는 살아냈다.
파트타임 일터에서는 또다시 보이지 않는 평가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내가 한 시간 일하는 동안 누군가는 한숨 자고, 누군가는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도 신뢰를 얻는다. 나는 오타 하나로 지적을 받는다.
화도 나고, 뭔 대수냐고 고치라면 고치지 싶지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감기기운 탓일까... 애써 참아 봤다. 그게 내 위치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 지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일했다. 하루 다섯 시간을 채우고 돌아왔다. 그 다섯 시간은 한 달 고정급 140만 원으로 환산된다. 누군가에게는 우습게 들릴 금액이겠지만, 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줄이다. 오늘도 그 줄에 매달려 버텼다.
돌아오는 길. 답답한 신호대기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피곤했다. 그러나 피곤하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아이를 픽업해야 했다. 아이가 나를 기다린다. 아이는 내 삶의 유일한 확신이자, 유일한 증거다. 아이를 안아주며 생각한다. ‘그래, 오늘도 살아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잠시라도 대화를 나눈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은 어땠어?” 나는 잠시 멈춘다.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너무 무겁다. “괜찮았어.” 아이는 웃는다. 나는 아이의 웃음을 보며 나도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함이 숨어 있다.
밤이 되면 나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글을 써야 한다. 브런치 연재. 일주일에 네 번, 나는 독자와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요즘 나의 도파민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살아난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아이와 나의 시간을 기록하고, 나의 고통을 문장으로 정리한다. 누군가가 읽어주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겨주면 나는 더 이상 투명한 존재가 아니다.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닿아 있다.
그러나 SNS는 잔인하다. 천 명의 팔로워 중 단 세 명이 반응한다. 세 개의 좋아요. 그것으로 하루를 버티기도 한다. 허무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세 개의 손길이 나를 지탱한다.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냈다.
희망이나 기대는 없을 것 같은 날들에 운명처럼 눈에 띈 뜻 밖에 채용 공고.
기약없는 길에 나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만 했던 목표. 대학 교수 채용. 서류 마감이 임박한 시간에 누른 업로드 버튼.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논문요약, 자기소개,수상, 경력증명서, 출간이력, 디자인의장등록증, 수료증. 준비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마감 시간 2분 전, 제출 버튼을 눌렀다. 아직도 손끝이 떨린다. 마치 운명과 손을 맞잡은 순간 같았다. 잊고 있던 길, 그러나 내 삶이 여전히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확인했다. 나는 준비돼 있었다. 제출 그것만으로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지만 어떠한 결과에도 만족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겸손이 아니라 쉽지않을 경쟁이라는것 쯤은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묻는다. “요즘은 어때?”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들의 질문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없으니까. 그 질문은 확인이다. 내가 여전히 피폐한지, 내가 여전히 그들보다 못한지 확인하기 위한 의례다.
그들의 시선은 내 삶을 주식처럼 평가한다. 수입, 직업, 집값, 부모의 배경, 아이의 성적. 그것들로 나를 매긴다. 나는 피곤하다. 오늘 하루도 그런 거래소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한 저녁의 대화, 글을 쓰며 맞은 새벽의 고요, 내 손끝에서 흘러나온 문장들. 그것이 내가 살아냈다는 증거였다. 그 증거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좋아요 몇 개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만의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살아냈다.
이 말에는 자조와 자부가 동시에 있다.
비루하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고단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는 초라하지만, 나의 기록 속에서는 충분하다.
나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해보자 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졌길 바라면서, 나는 받아들인다.
다만 소망이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운 하루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