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 고흐를 이해해

by 써니장

오늘 문득 반 고흐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저릿해진다. 프랑스 남부의 햇살 좋은 작은 도시, 빛풍경이 좋다는 아르르와 생레미를 떠돌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짧지만 뜨겁게 타오른 한 더치 청년의 생이 자꾸 가슴을 누른다.

고흐에게는, 그가 태어나기 전 먼저 세상을 떠난 형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이름이었다니. 그 사실을 처음 알고 한참 동안 멍해졌다. 제정신인가? 부모가 먼저 떠난 아이의 이름을 다시 태어난 동생에게 주기까지의 심정을 생각해보려 했지만, 결국 마음속엔 고흐가 느꼈을 감정이 먼저 내려앉는다.
온전한 존재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 ‘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그는 어쩌면 평생 그 텅 빈 공간을 메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 존귀하다는 존엄성을 느꼈을까. 엄격했고 감정 표현이 적었던 부모 밑에서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떠올리다 보면 마음이 시린 느낌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세상 어딘가에 계속해서 “나를 사랑해달라”는 작은 신호를 계속 보내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했던 고흐, 고갱과 함께 지내던 아르르의 그 짧았던 시절, 서로에게 그림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붙잡으려 애쓰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고갱이 그곳을 떠나려 했을 때 그를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고흐의 마음—그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던 외로운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겠다.

그때 동생 테오가 먼저 결혼한다는 소식을 편지로 알려왔을 때 고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은 점점 무너져가는데, 가까운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안정된 삶을 갖는다는 현실. 살아생전 단 한 점만 팔렸다는 사실이 남긴 상처도, 환청에 시달리며 지새운 밤들도, 총을 자신에게 겨눴던 그 순간도…
모두 그가 얼마나 고독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사람들은 그를 ‘광인’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 순간조차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흔들리던 어느 날의 인간. 상처 많은 한 사람.

하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마음이 갈라져 있었는데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바라기. 그 노란빛 속에 복을 기원하는 마음, 빛을 향하는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꾸밈없는 진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 들판과 밤하늘, 사이프러스… 세상이 그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그는 색채로 채워넣었다.
그 지점에서 나는 매번 걸음을 멈춘다. 사람이 이렇게도 부서질 만큼 외로우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구나.

빛으로 말하고 싶었던 고흐는 죽고 나서야 세상에 닿았다. 테오마저 형을 따라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 뒤에 남겨진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아니었다면 고흐의 그림들은 아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시형의 삶을 세상에 다시 꺼내어 비추었으니, 그 마음이 참 고맙고 뭉클하다. 예술을 다시 살려낸 일도 남편의 가족들을 살리고 이건 그녀가 형을 끔찍하게 애겼던 남편을 위한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테니까.

이렇게 고흐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그를 유명한 화가로 보기보다 먼저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외롭고 상처받고 사랑을 갈구하던, 이해받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버텨낸 사람. 그 결핍을 끝내 예술로 견뎌낸 사람.

그래서 오늘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반 고흐를 이해한다고.
그의 그림 속에 스며 있는 슬픔과 온기, 외로움이 내 안의 작은 외로움과 겹쳐지는 순간이 분명히 느껴진다고. 2026년도 한달 반 정도 남았다.

오늘도 그의 해바라기 그림 앞에서 한참을 바로본다.
그 노란빛 속에서 고흐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꽃을 피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빨리 피고 빨리 지는 해바라기. 빛과 희망, 우정의 상징.
짧지만 뜨겁게 빛난 그의 생이 자꾸 마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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