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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리스타 Jul 31. 2024

브래지어를 안 차는 게 어때서요?

브라질 겉핥기 보고서 2 - 한국의 사회 문제에 답하다

한국에서 '노브라 논란'은 심심하면 화두에 오른다. 대표적으로 가수 화사 씨의 공항패션 논란이 있었다. 인천공항을 입국하며 흰색 티셔츠 안에 속옷을 착용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해당 키워드를 구글링하면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노브라 논란은 화사 씨만 겪은 게 아니다. 故 설리 씨부터 이효리 씨까지 모두 노브라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에서는 노브라가 큰 논란이다.


'화사 공항패션 논란'을 검색한 구글 뉴스의 첫 페이지.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


브라질에 오기 전, 작년 7월에 한 달 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미국 역시 북반구에 위치하기에 7월이면 여름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무척 덥다. 뉴어크(Newark) 국제공항에 내렸는데 순간 눈을 의심했다. 브래지어를 입은 여성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니플패치(젖꼭지 가리개)를 붙인 여성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그마저도 붙이지 않았다. 붙였다한들, 상의가 몸에 달라붙고 재질 또한 얇았기에 실루엣이 모두 드러났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한국에서는 길거리에 한 명만 보이더라도 큰 문제가 될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미국에서 여름에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다. 한국인이거나 일본인이거나.


이미 미국에서 경험했으니 브라질도 마찬가지겠거니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는 역시였다. 브라질에 입국한 건 2월 11일, 남반구인 브라질은 여름이었다. 매일 기온이 30도 이상이었다. 땅이 엄청나게 넓은 나라인만큼 건물 간 거리가 멀어 길에 있는 시간이 길다. 한 마디로 장난아니게 덥다. 그러니 어쩌면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당장 더워 죽겠는데 그깟 노출이 무슨 상관인가? 물론 나 역시 당황스럽긴 했다.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가 흰색 달라붙는 상의에 속옷을 입지 않아서 눈을 이리저리 피했다. 하지만 벌써 5개월 째 살고 있는 지금, 그깟 속옷 여부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어차피 모두가 그렇게 다니기에 이미 적응했을 뿐더러, 그것을 문란하다고 문제 삼는 시선 자체가 이상하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페미니즘의 영역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다. 그렇게까지 사상적인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리고 감히 논할 정도로 페미니즘에 대해 많이 공부하지 않았다.) 여성에게는 속옷을 입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 문제는 남성의 자유와도 이어진다. 어렴풋이 기억하자면 내가 중학생 시절이었을 거다. 대략 2010년대 중반인데, 남성용 니플패치 광고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올리브영 등 길거리 드럭스토어에 남성용 니플패치 매대가 생긴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여름에 남성이 흰티를 입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기에. 매년 새로운 니플패치가 시장에 나온다는 것 자체로 우리 사회에서 '젖꼭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좋게 보면 모두가 모범을 따르겠다는 거지만, 해외에 체류 중인 지금의 관점에서는 조금 지나치지 않나 싶다. 정말로 적응한다면 아무 일도 아니다. 덥고 불편한데 그깟 노출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저 체면치레일 뿐이다.  


화두를 돌려서, 한 가지 더


비교적 최근 소식이다. SRT 열차 내에서 기차 등받이를 둘러싼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앞자리 남성이 의자를 뒤로 최대한 젖히자, 뒷자리 여성이 불편하다며 의자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곧 두 사람의 의견 충돌은 욕설과 비방으로 이어졌고, 의자를 젖힐 권리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영상과 녹취록을 보면 남성의 편을 들기는 어렵다. 먼저 욕설을 시작했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뜻을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주장했기에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내가 제기하는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왜 좌석의 등받이를 '최대한 젖히면' 문제가 되는가? 사실 처음부터 그 정도까지 내릴 수 있도록 제작된 물건이다. 그러니까 '내 돈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남성 입장에서 의자를 젖히는 행위는 '공중 도덕'에 벗어날 정도로 잘못된 행위는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뒷자리 여성이 불편함을 느꼈을 뿐. 이 사건을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 바라보면 답은 쉽지 않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도덕 판단을 내릴 때 '옳다' 혹은 '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하지만 만약 남성이 등받이를 45도만 내렸다면? 도덕 판단의 기준을 한 단위씩 움직이다보면 결론이 쉽게 떨어지지 않음을 곧 깨닫는다. 그런데 이 사건이 논란까지 될 일이었을까? 이 역시 문제 삼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고? 브라질이 그렇다.

'기차 등받이 논란'을 검색한 구글 뉴스 첫 페이지. 앞선 '화사 공항패션 논란'과 마찬가지로 온갖 미디어가 본 사건을 보도했다.


다같이 편하게 갑시다


브라질은 버스 교통이 발달한 나라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여객용 철도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다. 지리적 여건 때문에 해안을 접하는 히우(Rio), 상파울루(São Paulo) 같은 대도시들을 연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체로 고속 버스를 이용한다. 고속 버스는 크게 네 종류가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일반석(Convencional)와 우등석(Executivo)이 가까운 도시를 연결한다. 보통 우등석부터는 버스 내 화장실이 존재하고, 정수기가 설치된다. 그것을 제외하면 일반석과 우등석은 큰 차이가 없다.


한국에 없는 버스로는 반침대형(Semi-Leito)과 침대형(Leito)이 있다. 반침대형부터 의자가 더욱 푹신해지고 발을 올릴 거치대가 붙는다. 침대형은 반침대형을 보다 독립적인 형태로 분리하고 젖힐 수 있는 의자 범위를 더 늘린 것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면 아예 침대(Cama)가 등장한다. 당연히 버스 내 화장실과 정수기가 존재한다. 이 버스들은 일반적으로 중장거리 여행에 사용되지만, 반침대형은 종종 2-3시간 거리의 단거리에도 자주 운용된다.


(좌) 일반석 Convencional (우) 우등석 Executivo
좌로부터 (1) 반침대형 Letio (2) 침대형(Leito) (3) 침대 Cama


다양한 버스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해 다양한 버스 서비스가 이용된다는 뜻이다. 브라질에서 버스를 타고 20시간 정도 이동하는 건 예삿일이다. 비행기보다 저렴하고 서비스도 잘 갖춰져 있으니 지루함만 달래면 꽤 탈만 하다. 자, 여기서 한국과 브라질의 차이가 발생한다. 브라질에서 의자를 최대치로 젖히는 건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왜냐면 모두가 그렇게 타니까. 2시간을 이동하든 20시간을 이동하든 버스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일단 버스에 탑승하면 모두가 등받이를 뒤로 최대한 젖힌다. 젖히지 않는 건 자유지만, 의자를 젖힌 앞 사람 때문에 공간이 좁아졌다고 탓할 수 없다. 이곳에서 통하는 버스 예절은 '다같이 편하게 가자'니까. 그러니까 'SRT 의자 등받이 논란'은 애초에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소한 일로 다툼하는 한국의 일상이 참 우스우면서 안타깝다.


브라질의 일반적인 버스 이용 모습. 홍보를 위한 사진이지만, 현실에서는 더 편하게 탄다. 신발도 벗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해외에 살다보면 종종 이해할 수 없는 'K-논란'이 들려온다. 연예인의 노브라 논란과 기차 좌석 등받이 논란 등 해외에서는 논란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사소한 일들이 구설수에 오른다. 종종 이런 비판을 하는 내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반론이 들어온다. 생각만 달리 하면 쉽게 개선되는 일들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고 사회구조적, 도덕적 문제로 변질된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게 여성인권과 페미니즘의 문제까지 확대될 필요가 없다. 물론 중요한 쟁점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히는 게 사회적 염치의 문제로 불거질 필요도 없다. 그냥 '그럴 수 있구나'라고 단순히 받아들이면 된다. 혹시 몰라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O que você acha sobre a mulher sem sutiã?)"
"왜? 브라질에서는 완전 일상적이지. (Por quê? É super normal no Brasil.)"
"그치, 문제 없잖아? 한국에서는 불가능하거든. (É sem problema né? Na Coreia, é impossível.)
"왜? (Por quê?)"


한국 여성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남성이 흰색 티셔츠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기차와 버스에서 '눈치 보는 도덕'이 아니라 '존중하는 도덕'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문란과 염치,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우리가 문제 삼는 많은 것들이 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치 보는 사회보다 눈치 볼 필요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다같이 편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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