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라온 외동딸이 행복한 거라 믿고 싶다.
막상 표를 끊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백수로 지내면서 생활 소음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안함, 사랑받는 만큼 나를 짓누르는 엄마의 관심과 집착, 마냥 쉴 수는 없으니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압박감. 머리로 생각만 하고 있던 도피 방안들 중 하나였던 '혼자 여행'이 선택된 건 불시였다.
자취를 시작한 건 25살. 지금 내가 서른 살이니 올해로써 햇수로만 6년째. 단 하루라도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초반에는 내가 잠귀가 어두워 알람을 못 듣고 회사에 지각을 할까 봐 아침마다 엄마가 전화를 해주는 일부터였다. 엄마는 그 일이 본인의 수많은 엄마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퍽 즐거워했다. 몇 번은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던 나를 아슬아슬한 시간에 모닝콜로 깨워주더니 자신에게 고마워하라 했다. 그렇게 아침에 통화 한 번, 퇴근할 때는 야근이 잦은 직업을 가진 나의 불규칙한 퇴근 시간을 궁금해하는 엄마를 위해 한 번. 그렇게 평일에는 하루 최소 2번의 통화를 마치 업무처럼 이어 나갔다.
물론, 나라고 마냥 싫었던 건 아니다. 너무 과한 관심과 속박이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자라온 나는 이 또한 부모님의 사랑이라 생각했고 어렸을 적부터 대부분의 행동과 생각을 엄마와 아빠의 손바닥 안에서 결정해 왔기에 솔직히 말하면 당연하고 편안했다. 회사 생활하면서 밤늦게까지 회식을 하거나 소모임을 다닐 때는 엄마와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연락 문제와 행실 문제로 엄마가 눈물까지 보이는 걸 보고 결국 내가 항복했었다. (쓰다 보니 무슨 연애담 같네.. 참나)
문제는 퇴사를 하면서 발생했다. 대학조차 취업계를 내면서 졸업 전부터 바로 회사 생활을 하며 지칠 대로 지쳐서 질러버린 퇴사였기에 정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삶, 한심하고 게으르게 보내고 싶었던 나날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엄마는 20년 넘게 다니던 운동을 잠시 쉬게 된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 아홉 시에 나가 강습을 듣고 같이 다니는 아주머니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오후 4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하루들을 살던 엄마인데, 하필이면 서로의 집에서 머무르는 긴 시간이 이렇게 겹쳐 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퇴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엄마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대화 내용도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언제 일어났냐, 오늘은 뭘 할 거냐, 운동은 안 하냐, 공부는 안 하냐. 나는 매일 하는 일이 없이 쉬고 있으니 대화거리도 없고 할 말도 없었다. 이 와중에 다그치는 질문들이라니.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가던 와중에 폭발해 버린 것이다.
너무 전화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엄마. 그래서 전화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그날은 내가 오후에 먼저 전화를 했다. 그런데 하는 첫마디가 "아이고, 목소리 한 번 듣기 참 힘드네." (참고로 이 전날도 통화를 했었다.) 모든 가족들의 싸움이 그렇겠지만 한 번 참고 넘어가거나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한마디가 나에겐 넘치기 일보 직전이던 스트레스에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는 내가 예민하게 받아치자, 왜 이렇게 퉁명스럽냐며 웃자고 한 농담이었다, 이런 농담 하나 이해 못 하냐. 라며 또 나에게 화살 세례였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내 나이 서른 살. 처음으로 혼자 국내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게 된다.